윤탐 장편소설 『TRICK OR TRIP』 43화

3부 「가설과 증명」 ②

by 윤아무개

“네 사업 말아먹은 사람, N이야.”

셜록의 발언이 망치처럼 심장을 내리쳤다. 눈가가 신경질적으로 떨렸다.

“메시아 사건의 배후가 N이야? 만석이랑 그때부터 손잡고 있었던 거야?”

“그것도 가능성이 없진 않은데 확실하지 않아. 내가 말하려던 건……” 셜록이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검색해서 내밀었다. “이거야.”

작년에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내건 대기업 뉴스기사였다. 포마드가 벌였던 복수극. 투자자들이 빠지는 데 메시아 사건만큼이나 한몫했던 일이었다.

“이게 왜?”

“원래 그쪽 기업에서는 시험 삼아 단기 프로젝트로 내건 아이템이었어. 경쟁 상대였던 너희가 군말 없이 빠지면서 일이 더 수월해졌지. 올해 정식으로 사업 기획에 들어갔고 큰 성과를 냈어. 밑에 사진 봐.”

스크롤을 내렸다. 포마드를 비롯한 팀원들이 양복을 입고서 포즈를 취한 사진이 있었다. “어? 얘들이 왜……” 포마드 곁에 서 있던 사원들은 우리와 함께 사업을 했던 N의 후배들이었다.

“N이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사업 도중에 대기업에서 비슷한 일을 추진한다는 정보를 들었나 봐. 이미 구체적으로 그려 놓은 사업이니 돈이 될 만한 거래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N이 우리 사업을 팔았다고……?”

“그래. 물밑작업도 하고 거래까지 성사시켰어. 거래 조건 중 하나가 후배들을 프로젝트 팀에 계약직으로 넣는 거였고. 보다시피 일이 잘된 바람에 특채로 채용됐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욕도 나오지 않았다. 셜록이 말을 이었다.

“N의 아버지가 남긴 보험금에 사업을 거래한 돈을 얹어서 여행 자금을 마련한 거야. 만석이가 그걸 불리기 시작했고.” 셜록이 담배 한 개비를 건넸다. “따지고 보면 네가 쓴 돈의 일부는 원래 너의 지분이었지.”

담배를 건네받고 손 안에서 놀렸다. 그간 마주해온 N의 얼굴이 스쳤다. 어떠한 악의도 적의도 찾아볼 수 없는 얼굴. 내 사업을 망치고, 나를 궁지로 몰아넣고, 자신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도록 한, 그러나 그 모든 의도를 감춘 얼굴. 왜? 어째서?

“이 사람, N의 지인이야.” 손에 쥔 담배로 사진 속 포마드를 가리켰다. “N은 별로 호의적이지 않았었지만 대외적으로는 형 동생하며 지내는 사이 같았어.”

“그럼 그 사람한테 직접 정보를 들었나보네.”

“뭔가 이상해.”

나는 담뱃불을 붙이고 홀딩스 행사장에서의 일화를 셜록에게 들려주었다. 셜록이 볼 안쪽을 혀로 훑으며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이 인간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건 행사장 사건 직후라고 했어.”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담배꽁초를 껐다. “깽값으로 사업을 넘겼나?”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깽값 물어봤자 얼마나 된다고 사업을 넘겨?”

“그건 그렇지. 근데 우리한테 앙금 있는 사람 치고 거래 조건이 너무 후하지 않아? 막말로 대기업인데 까짓 거 우리쯤이야 밀어버리면 그만이잖아.”

셜록은 곰곰이 생각하며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만약에 앙금이 없었다면?”

“그 좀생이새끼가? 지 팔순잔치 때도 우리 씹고 다닐 인간이야.”

“아니.” 셜록이 담뱃재를 털고 테이블에 팔꿈치를 얹었다. “N이 놈이랑 거래를 한 시점이 행사 직후가 아니라 행사 전이었다면?”

“그럼 미쳤다고 N이 깽값을 선불로 놓고 줘팼겠어?”

“생각해 봐. 그 사건의 최대 피해자가 누구야? 만약 네가 그 인간을 패지 않았다면 대기업이랑 거래할 때 너도 그 팀에 들어갈 수 있었을 거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셜록이 말을 이었다.

“그냥 나만의 망상일 수도 있는데, 솔직히 대기업에서 그만한 직급에 있는 사람이 공식적인 행사에서 남을, 그것도 작은 사업체지만 대표라는 사람을 까내리겠어?”

“N이랑 짜고 나를 도발했다, 이거야?”

“N이 깽값을 선불로 내면서 확실하게 매듭까지 지은 거고.”

포마드 정도의 인성이라면 이유 없이 나를 까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셜록의 말 역시 일리 있게 들렸다.

“좆같네, 진짜.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내가 중얼거렸다.

“지금 우리 인생에 말이 되는 상황이 얼마나 있냐.”

셜록이 자조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양손으로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더 말해줄 건 없느냐고 묻자 셜록이 고개를 삐딱하게 들고서 못마땅하다는 듯 입을 뗐다.

“N이 벌인 일은 생각보다 훨씬 규모가 커. 네 대학동기 인쇄소를 인수했지? N은 노숙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그들의 신분을 사들였어. 인쇄소를 사무실로 개조해서 차명계좌를 개설하고, 대포폰을 만들고, 필요한 서류들을 위조했지. 만약 너한테 다 덮어씌울 작정이라면 네가 치러야 할 죗값은 가볍지 않을 거야. 내가 모르는 일들도 많을 테니까.”

“이런 씨발…….”

“도망쳐.”

“뭐?”

“N한테 따질 생각하지 말고 당장 사라져. N에게서 벗어나려면 그 방법뿐이야.”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그럼 금고에 갇혔을 때처럼 사람들 풀어서 샅샅이 뒤질 거야. 못 찾으면 곧장 모든 걸 덮어씌우겠지. ……N이 자신을 추적하도록 단서를 흘린다고 했지? 최근에 별다른 말 없었어?”

“관두라니까, 새꺄.”

나는 대꾸 없이 그를 바라봤다. 셜록이 미간을 찌푸리며 뜸을 들였다.

“씨발, 고집은. 며칠 전에 N이 사무실로 소포를 하나 보낸다고 했었어. 어제까진 안 왔었는데 오늘은 몰라.”

“내용물은 알아?”

“몰라.”

“경찰이 잠복하고 있지 않을까?”

“글쎄. 나는 못 가. 가려면 네가 직접 가야해.” 셜록은 친구에게 독이 든 잔을 건네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 듯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혹시 몰라서 일층 중국집으로 소포를 보내라고 했는데, 사장한테 전화해 줘? 네가 택배 받을래?”

“근데 너희들 보통 뽀리 통해서 물건 주고받지 않냐?”

“그러니까 이상하다는 거지. 뭔가 좀 허술한 게 혹시 너한테 말이 새나가도록 하려는 게 아닌가 싶어서. 반대로 정말 맡기려 보낸 거라면 N에게 중요한 물건일 거야. 맨손으로 싸우러가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냐?”

“전화해 봐. 도착했다면 내가 찾으러 갈게.”

셜록이 중국집 사장에게 전화를 했다. 이미 택배를 맡아두고 있다고 했다.

“알겠어, 내가 가볼게. 여긴 안전해? 너도 위험해질 수 있어.”

“괜찮아. 이제껏 내가 놈의 눈이었어. N도 당분간 쉽게 누군가를 찾진 못할 거야.”

“믿었던 눈이 사라지면 더 날뛰겠는데.”

“지가 먼저 잠수 탄 거니까 당분간은 괜찮을 거야. 그래도 조심해라. 상황 수습할 방법이 생각나면 다시 연락할게.”

“그래.” 나는 일어서며 악수를 청했다. 왠지 그래야할 것 같았다. 악수를 나눈 뒤 셜록이 홀을 지나 문의 잠금장치를 풀었다. 그는 문손잡이를 굳게 잡고서 내 쪽으로 돌아섰다.

“내가 늘 너보다 나았다는 말, 그거 진심이야.” 셜록이 웃었다. “사실이기도 하고. 근데 그게 씨발 사는 데 무슨 소용이 있겠냐.”

그의 말에는 적의가 없었다. 말없이 셜록을 바라보고 있자 녀석이 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조심해서 가라.”


택배회사와 세 블록 떨어진 곳에 택시를 세워 내렸다. 셜록이 알려준 골목길로 둘러갔다. 근처에 숨어 주위를 살폈으나 경찰이 잠복한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종종걸음으로 건물에 들어갔다. 중국집 앞에 소포가 놓여 있길 바랐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풍경 소리가 휑한 홀을 울리자 주방에서 앞치마를 두른 사장이 나왔다.

“소포 찾으러 왔는데요.”

그는 대꾸 없이 주방으로 돌아가서 손바닥만 한 상자와 식칼을 들고 나왔다. 가까운 식탁에 그것들을 내려놓고 내게 고갯짓으로 상자를 가리켰다. 나는 다가가서 소포를 들어 보았다. 가벼웠다. 식칼로 테이프를 잘라 상자를 열었다.

큰길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기차역으로 갔다. 역사 근처 전자제품 매장에서 휴대폰과 유에스비를 연결할 젠더를 샀다. 기차에 몸을 실었을 때는 늦은 밤이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아까 소포상자에서 꺼낸 유에스비를 만지작거렸다. 지금은 보고 싶지 않았다.

N이 종적을 감췄다면 갈 곳은 한 곳뿐이었다. 절벽 안 산장.

산 아래 모텔에서 하룻밤 묵었다. 내가 병원에서 탈출했다는 것을 진작 알았을 텐데 N에게서는 종일 별다른 연락이 없었다. 놈이 어떤 일을 꾸미고 있을지 감이 오지 않았다. 술 없는 밤. 지친 몸을 누이자 침대 밑으로 천천히, 끝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TV는 켜지 않았다. 성인채널에 맞춰져 있을 테고, 더 이상 그딴 데 주의를 뺏기고 싶지 않았다. 나 자신에게 더는 실망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겠느냐마는. 천장 테두리를 따라 설치된 보라색 조명. 휴지처럼 팔랑거리는 뜻 없는 생각들. 삶이 어쩌다 하루 이틀 단위로 완전히 조각나 버렸을까. 해변에서 양동이에 모래를 담아 성을 쌓던 아이처럼, 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지금까지의 삶을 손수 무너뜨려야 할지 몰랐다.

눈을 감고 한참을 누워 있었다. 설핏 선잠에 든 사이 N의 얼굴이 보였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얼굴이었고 무구한 표정이었으나, 본 적 있는지 의아할 정도로 생소한 얼굴이었다. 눈을 번쩍 떴다. 몸을 끌고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내일이면 모두 끝이다. N을 보는 일도 마지막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마음이 처연해졌다. 아랫입술을 깨물고 주머니에서 유에스비와 젠더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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