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에 대하여
10년 넘도록 3천 편 이상 연재된 소설의 유일한 독자였던 김독자는 연재가 끝나는 날, 작가에게 감사의 선물을 받는다.
작가가 보내 준 선물은 그가 쓴 소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 (멸살법)> txt 파일이었다. 선물을 받고 난 뒤 세상은 소설과 같은 세계로 바뀐다. 김독자는 소설의 모든 내용과 결말을 아는 유일한 독자로 그 막강한 정보를 가지고 생존을 위해 분투한다.
영화화된 인기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전독시)>의 대략적 줄거리다.
내 글에 내가 첫 독자가 되고 끝까지 읽어 줄 독자도 나라는 것.
가상과 실제가 겹치는 증강 세계를 경험하고 생존법을 터득하고 성장해 나간다는 부분에서 브런치 작가이자 독자는 <전독시>와 비슷한 세계관에 놓여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소 억지스럽지만)
글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작가인 동시에 독자인 우리는 소통이라는 새로운 서사를 창조해 내고 있으니까.
특히 댓글은 서로의 이야기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감정적 공감과 지적인 이해와 통찰, 유희를 안겨 준다.
초반에 내가 쓴 글은 요양병원에서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요양병원에 대한 분노,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한 죄책감이 가득한 한풀이 글이었다.
하루에 수백 개의 글이 올라오는 곳이라 특히 비주류인 내 글은 바로 휩쓸려 내려갔다. 첫날에 달린 라이킷은 한 자릿수에 구독, 댓글은 제로였다.
브런치에도 <멸살법>에 나오는 성좌들이 있다면 내 글에 이런 호오(好惡)를 표현했을 것이다.
[오(惡)의 브런치 성좌가 당신의 부족한 스킬에 즐거워합니다.]
[호(好)의 브런치 성좌가 당신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구독자를 후원합니다.]
<멸살법>에 성좌들이 나오는 대목이 내게 재미를 주는 포인트라서 인용해 봤다.
소설에서 성좌(배후성)는 신비로운 존재로 성운의 꼭대기에 앉아 모든 이야기를 관람하고 호오(好惡)를 표현하고 코인을 후원한다.
브런치에도 성좌 역할이 있다면 누굴까 라는 상상을 해본다.
내 글을 능동적, 수동적으로 읽어 주는 작가 또는 독자일까. 출판사 에디터나 브런치 운영자일까.
그중에 브런치 운영자가 차지하는 지분이 작지 않을 것이다. 브런치는 타 플랫폼에 비해 순수하게 글 쓸 수 있는 공간과 소통의 창을 마련해 준다. 콘텐츠를 잘 관리해 주지만, 직접적인 물질적 후원은 없다.
7월부터 멤버십 제도가 도입되었다. 자사의 영업이익을 추구하는 게 주목적이지만, 멤버십이 작가들에게 기회가 될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작가가 힘들게 쓴 글에 고정적인 수입이 들어오고, 깊고 풍요로운 내적 자원을 만들어 가는 순수한 글 쓰는 플랫폼이길 바라는 건 판타지일까.
나는 브런치에서 14개월 동안 생존하면서 호불호가 있는 글을 썼다. 내 구독자도 호오(好惡)가 뚜렷할 것이다.
내 취향 위주로 작가님들의 글을 구독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편향되었다.
그래서인지 가끔 은밀한 저격을 당하곤 한다. 기껏해야 구독 빼고, 차별적인 no 답글인데. 그게 은근히 아프다.
웹소설 유료 플랫폼에서 악플러를 만났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처음에는 댓글을 쓰는 게 겁나고 용기가 필요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트라우마와 낯가림이 생겼다.
작가와 친분이 생기거나 '글정'이란 게 들어야 편하게 댓글을 쓸 수 있었다.
애써 쓴 댓글이 무시당하면, 그렇게 위축될 수가 없다. 고작 댓글 하나에...
브런치에서 위기 때마다 나를 구해 준 건, 호오(好惡)가 상충하는 힘의 균형이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는 좋은 사람이라도 누구에게는 아닐 수 있고, 모두를 충족시킬 수 없다. 누구든 자유롭지 못하다.
나는 오(惡)가 뿜어대는 차가움보다 호(好)에만 집중했다. 이 또한 이분법으로 단순화할 사안이 아니지만.
작가는 글을 통해 진심으로 소통하고 생각을 나누고 싶어 한다. 브런치는 글쓰기의 상호작용 같은 그런 본질을 대체로 채워 준다.
소통 창인 댓글만 주의 깊게 봐도 잘 알 수 있다.
댓글은 작가의 또 다른 글이다. 하나 마나 한 댓글, 댓글만 보고 댓글을 요약한 느낌의 댓글, AI보다 못한 댓글은 댓글 숫자만 채우려는 댓글 방에서 가끔 발견한다.
한 줄이라도 양질의 좋은 댓글을 만나면, 그 작가의 진정한 소통 역량을 엿볼 수 있어 존경심마저 든다.
숫자로 이루어진 성적표가 아니라 글로 공감과 존중, 선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내가 쓴 댓글이 상대에게 내 정성과 진심이 닿지 않을 수 있다. 기분이 상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작가의 일이니까.
나의 한계를 끊임없이 확장하며 개선의 기회로 삼고, 스스로 다듬어 나간다.
초기에 썼던 뾰족한 내 댓글과 답글이 조금은 부드럽게 깎여 나갔기를 바란다.
나는 여전히 초짜나 저지르는 실수를 한다. 얼마 전, 응원하기 기능을 잘못 눌렀다.
응원하기 기능을 써본 적은 없지만, 웹과 다르게 앱에서 수수료가 크다는 말을 듣고 궁금해서 응원하기 기능을 켜고 들어가 보았다. 그러다 손이 미끄러져 결제 버튼에 닿아버렸다.
즉시 결제가 실행되었다. 이렇게나 쉽게?
문제는 작가 본인의 이름이 비공개 처리되지 않았다는 것.
응원금은 후원금 같은 거라서 수정, 삭제가 전혀 되지 않았다.
이 일로 KaKao 고객센터에 문의했다. 한 달 만에 이런 답변이 왔다.
응원 댓글을 남기는 시점에 비공개 여부를 결정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을 남긴 후 공개 여부 조정은 불가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작성자 본인의 글에 달린 응원 댓글은 직접 삭제하실 수 있으며 브런치 팀에서 임의로 조정은 불가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체감상 수수료 35% 떼가면서 취소나 삭제할 수 있는 기능을 만들어 주면 안 되나.
지난 글이지만, 유입 키워드 '관음죽꽃'을 검색해서 들어오는 조회수가 꾸준히 발생한다.
[오(惡)의 브런치 성좌가 당신의 응원금 자작극에 몹시 즐거워합니다.]
자작극이 아니라 실수라고...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아서 브런치북을 삭제하고 싶었다.
[호(好)의 브런치 성좌가 당신의 수치심을 글로 승화시켜 보기를 권합니다.]
감사하게도 호(好)로 응원해 주시는 분들, 글벗 작가님들이 남겨준 댓글이 소중해서 연재글을 지울 수 없었다. 수치심이 길어지더라도 참아보기로 했다.
삶에도 매 순간 호오(好惡)를 경험하지만, 글쓰기와 웃음으로 덮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