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유능하고 유혹적인 침범
나는 가끔 창작하는 일의 고통에서 도망치고 싶다.
그런 말을 하면, 누군가는 우스갯소리로 AI라면 착오 없이 일해 줄 것이니, 그런 조력자를 써보라는 끔찍한 대안을 제시한다.
AI가 완벽하지 않지만, 어떤 분야의 일이든 80% 정도 초고나 초안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의 명령에 따라 어떤 일이든 해내는, 머리는 엄청나게 똑똑한데, 경험이 없는 인턴처럼 내 능력에 따라 맞춤형으로 써먹기에 유용하다는 것이다.
AI는 유능하고 편리하다는 걸로 유혹한다. 함께하는 미래는 풍요롭고 나를 편하게 해 줄 것이라고.
인간 창작자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
AI는 인간 창작자처럼 내 작품 구려병, 글태기, 슬럼프가 없다. 여러 일을 수행하지만, 일의 고통이나 번아웃 스트레스가 없다. 도망칠 일도 없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에도 감정의 기복이 없다. 상대의 성향과 행동 패턴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분석해 낸다.
이 정도면, 내가 애써 노력하고 잘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다행히 AI는 한계가 있다. 디지털 속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프라인에서 섬세한 손이나 몸을 갖추지 못했다.
감각적이고 섬세한 기술, 기량 같은 ‘손맛’은 AI가 베낄 수 없는 물성이다.
언젠가는 물성까지 지닌 완벽한 AI 가 나오겠지만, 그 미래까지 상상하고 싶지 않다.
창작의 고통에 대해 생각해 본다.
공예 클래스를 하다 보면 이런 질문을 종종 받는다.
"재능이 없는데 잘할 수 있을까요?"
꾸준히 하다 보면, 재능을 발견하게 될 거라고 대답하며 속으로 찔린다. 손기술의 숙련자가 될 수는 있겠지만, 창의적인 재능이란 게 가르쳐서 될 일인가 싶어서.
"몇 센티로 잘라야 해요? 몇 퍼센트 비율로 섞어야 해요?"
가령, 꽃잎 한 장을 만들어도 자로 잰 듯 정확해야 하는 완벽주의자에게는 대충 감으로, 눈짐작 어림잡아서 자연스럽게 나오도록 해보라고 할 수 없다.
그랬다가 자신의 실력이 액면가 그대로 드러나게 해서는 안 되니까.
내가 가르치는 건, 다소 실용적인 예술이라 누구나 쉽게(강조)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이 부분을 충족시켜야 한다. (장사는 타락의 근원이란 말이 맞는 것 같다.)
수강생들은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잘된 결과물을 얻기를 원한다. 그런 심정을 잘 알기에 때론 모방하고 베끼는 수업을 병행해야 하는 이유다.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창작하라고 하면, 재능이 있거나, 뚜렷한 목적이 있다면 모를까.
대부분은 실력이 늘지 않아서. 그 과정이 즐겁지 않아서. 바로 보이는 성취감이 없어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금리의 맛’이라도 보게 되면 모를까.
나도 숙련자가 되기까지 창의력이 무엇인지, 모호한 개념으로 긴 과정을 걸어왔다.
예술은 불확실성이 소중한 가치라고 여겼다. 암묵적인 신비주의가 창작 영역이며 자신만의 독창성, 자부심, 도취적 우월감 등으로 어떻게든 예술가처럼 보여야 했을 것이다.
창작의 고통은 없앨 수 없고, 창의력은 노력해서 가질 수 있다고 말할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
창의력은 인간만이 가진 능력일까.
공예 지인 R은 의료계통에서 일을 했는데, 뒤늦게 공예로 학위를 받고, 제대로 배워보려고 다른 문화의 공예 장인들을 찾아가는 열심을 냈다.
R은 유수의 장인들에게 배워온 새로운 기법으로 고수익을 창출해 냈다. 어떤 공예는 오리지널 국가에서는 평생 업으로 삼는 분야지만, 국내에만 들어오면, 돈벌이 수단이 된다. R은 자신이 선점한 기법이 낡아지지 않게 위악적 독점에 온 힘을 쏟았다.
이런 R에게 한계가 자주 찾아왔다. 늘 새로운 자극제가 필요했다. 배움이 창작의 부족분을 채워 준다고 믿었다. 배움에도 중독성이 있다. 외부에서 새로운 자극을 받고 창작을 이어가는 충전제로 삼았다.
나는 가끔 이런 R이 학습형 AI와 다른 점이 무얼까, 생각한다.
학습하고 변형해서 베껴 내는 건 AI의 전문 분야가 아닌가.
순수한 창작은 뼈를 깎는 고통을 준다. 그런 고통을 아니까, 배움으로 도피하고 또 한계에 직면하면, 배움으로 돌파구를 찾는다. 배움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문제는 깊지 않은, 금방 고갈될 얕은 우물을 판다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나도 창작의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한 건 마찬가지다.
머지않은 미래에 AI가 창작의 영역을 침범하고 완전히 장악해 버린다면... 이미 AI가 인간의 창의력에 대한 모호함도 많이 깨트렸다.
인간 창작자와 AI의 차이를 비교 분석하고 싶진 않았다.
혼신의 힘을 바쳐 만든 창작품과 그걸 보고 베끼고 활용한 작품성은 같지 않다. 창작하는 일은 그 과정에서 얻는 것이 더 크다. 고통이 있지만, 즐거움을 주기 때문에 더 의미 있고 가치가 있다.
창의력이 무엇인지, 그 한계마저도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라 위로 삼고 싶다.
나는 필연적으로 악플을 마주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AI가 욕먹지 않는 소설 초고를 작성해 준다고 해도 침범을 허락하고 싶지 않다.
억울하게 욕먹는 한이 있더라도 나만의 방식으로 창작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작가이자 창작자인 작가님들
글쓰기든, 그림이든 창작하는 모든 일이 즐겁기만 바랍니다.
<오!오! 이얼즈 > 두 번째 연재북을 마무리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