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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yu Jun 18. 2024

내가 죽으면... 너는 어찌 살래?

허약하게 태어나서 돌봄만 받던 나에게 늙고 병든 부모님 돌봄의 시간이 올 줄 몰랐다.

나이 쉰이 넘어도 나 밖에 모르는 철부지였다. 부모님은 늙어도 한결같은 모습으로 내 곁에 계실 줄 알았다.

제대로 된 딸 노릇에 익숙해지기 위한 연습조차 하지 못한 채 돌봄이라는 역할이 추가되었다.

'덕분'에 감사했다는 말보다 잦은 '탓'만 드리고 만 시간이었다.


내가 죽으면... 넌 어찌 살래?


코로나가 무섭게 확산되었던  2021년.

하던 일에서 강제로 쉬면서, 이전부터 조금씩 써 오던 장편 웹소설 초고를 마무리했다. 투고 분량을 만들어서 여러 출판사에 투고했다. 반려도 많이 받았지만, 내가 원하던 출판사와 운 좋게 첫 계약을 맺었다.  

그해 여름은 하루 종일 집 안에 틀어박혀서 글만 썼다. 부족한 글을 끝없이 뜯어고치는 고된 작업이었다.


완고를 넘겨야 할 시간이 촉박했던 그 무렵.

나는 아버지와 생활 반경이 비슷해지면서 부딪히는 일이 잦았다.

아버지와 오랜 시간 살면서 그해가 가장 많이 어긋났고 마음의 격동을 심하게 겪었다.

첫 계약작에 사활을 건 갱년기 딸과 노년기 우울증과 인지장애까지 겹친 아버지는 최악의 조합이 아니었을까.

아버지는 운신이 불편해지면서 바깥 활동을 전혀 하실 수 없었다. 90대 초고령이지만, 보행이 힘든 것 빼곤 대체로 건강한 편이었다. 그런 줄 알았다.   


내가 작업실로 쓰는 방과 연결된 앞 베란다에 아버지의 지정석이 있다. 아버지는 그곳에 앉아서 아파트 창밖을 내다보며 무료한 시간을 달랬다.

어느 날부턴가, 아버지는 두서없는 말과 행동으로 나를 미워하고 공격적으로 대했다. 평소에도 살가운 부녀 사이는 아니었지만, 대체로 무난한 편이었다. 40년 나이 차만큼이나 격의감도 없지 않았다. 

그 해 여름, 아버지는 하루가 다르게 다채로운 감정을 내보였다.

오늘은 무얼 가지고 트집을 잡을까 싶어 아버지와 베란다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바짝 긴장했다.

"내가 죽고, 네 엄마까지 없으면 넌, 어찌 살래?"

이전과 다르게 염려를 담고 있었다.

아버지는 홀로 늙어 갈 딸이 어찌 살 것인지, 걱정이 된 모양이었다.

나는 죽음을 논하는 아버지 말에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최근 들어 '내가 죽으면...'으로 시작하는 말을 자주 하셨는데, 마치 유언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너는 니 오라비한테 가서 사는 게 맞다."

아버지는 집안의 장자이자 외아들인, 오빠에게 나를 인수인계? 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연세 망백 (望百)을 넘긴 노인이라 시대가 변했는데도 여전히 호주제에 묶여 있었다


나는 분노에 차서 조선시대도 아니고, 그 무슨 소리냐고 버릇없이 대들고 방방 뛰었다.

세상의 편견과 맞서 싸우는 것보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비혼 딸을 독립적인 존재로 여기지 않는 아버지. 나를 평생 끼고 살 것처럼 구는 엄마 사이에서.

결혼 외에는 내 마음대로 어디서 살 선택권이 제한된 현실이 씁쓸했다.

다른 무엇보다 정신적, 경제적, 공간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자괴감이 더 컸다.

나 혼자 사는 것에 가장 큰 문제는 나 자신이었다.

지금 당장 50년 넘게 산 집과 가족에게서 분가하는 건, 그 시간만큼 뿌리를 내린 나무를 뽑아내는 용기가 필요했다.

건강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집 값, 생활비 일체를 감당할 수 있을지. 코로나 시기라 수입이 일정하지 않았다. 수년간 예치해 둔 아직은 쓰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안정된 미래와 익숙하고 편안한 공간을 우선시하는 나이 대가 되어 있었다.

부모님 도움을 받으며 사는 게 이득이라는 뻔한 결론이 났다.   

그럼에도 오춘기 아이가 되어 번은 넘게 나 혼자 살기를 꿈꾸곤 한다.


그날은 화가 나서 식사조차 거르자, 아버지가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한 손에는 내가 좋아하는 과일 몇 알을 챙겨 들고 내 방에 왔다. 더 나쁜 딸로 만들었다. 나를 식탁으로 유인하려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한 끼 굶으면 죽는 줄 아는 분이다. 가난하고 어려운 시대를 살아봐서인지 먹는 것에 유독 집착하셨다. 가족 누군가 굶는 걸 못 참았다. 다 같이 둘러앉아서 밥 먹는 것에 강제적이었다.

아버지가 정해 놓은 식사 시간이 있다. 아침 7시, 점심 12시. 저녁 6시.

내 몸 상태가 나빠지지 않았던 건, 반 강제적으로라도 제시간에 식사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삼시 세끼를 해대야 하는 엄마의 고충은 말할 수 없이 고단했다.

 

그 후, 아버지는 과거에 머문 것 같은 걱정, 분노의 감정에 잠식되었다.

노환으로 인한 인지장애로 여겼다. 뇌도 감정도 노화되는 건 당연한 거라고.

사는 게 낙이 없다며, 때론 서러운 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렸지만, 그 마음을 헤아려 드리지 못했다.

나는 괴롭힘에 가까운 아버지의 대화 방식에 멀찍이 물러나 있었다.


아버지의 시간이 빠르게 가고 있다는 것도, 이별의 시간이 갑자기 닥쳐올 줄 몰랐다.

아버지는 평소 앓던 뇌경색이 급작스레 나빠졌다. 손 쓸 시간도 없이 모든 기억을 잃었다.

다 잊어도 오랜 습관과 굳어진 질서는 끝까지 놓지 않을 것 같았는데,  밥 드실 시간뿐 아니라 먹는 방법조차 잊어버렸다.

그날, 내 거취에 대해 염려하며, 한 끼라도 굶지 않으려고 기다렸던 식사 시간은 마지막 당부의 말을 남겨야 했던, 가족과의 마지막 식사자리였다. 

내 일에 바빠서 화만 냈던, 후회, 죄책감은 시간이 지나도 벗어날 없을 것 같다.

 

죽음 외에 이런 이별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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