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이야기
밤새 잠 설친 데이지꽃이
새벽이슬 받아 말갛게 세수하고
멀리서 달려온 여명이 부엌 창을 두드릴 때
엄마의 움직임도 바빴다
넓게 펼친 김발에
풀 먹인 이불 홑청처럼 빳빳한 김을 깔고
흰 밥을 솜인양 얌전히 눌러 가며 펼쳐 놓으면
단무지, 계란, 어묵,
당근, 시금치, 박오가리가
길게 누워 기지개를 켰다
볕에 말려 뽀송한 목화솜 이불을
잠에서 깬 우리들이 누워 있는 채로
아버지가 돌돌 말아 주면
김밥 터지듯 터져 나오던 웃음소리
김밥은 피라미드가 되어 높이 쌓이고
피라미드 꼭대기엔 구름이 걸려 있었다
우리들의 마음은 목화솜 같은 구름 위를
훨훨 날아다니고 있었다
김밥을 자주 해 먹긴 하지만 오늘은 야외활동 하는 가족의 점심 도시락으로 김밥을 쌌다.
이 연재가 삶 속에 스치는 시인만큼 소재는 늘 생활 주변에 있다.
오늘은 김밥을 쌌으니 김밥을 시재로 써 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요즘은 김밥이 흔한 음식이지만 80년대, 초중고 시절에는 소풍 때나 먹어 볼 수 있는 별미였다.
늘 구비되어 있는 재료가 아니어서 여러 가지 식재료를 사야 하고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 특별한 날 아니면 마음을 내기 쉽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엄마 계실 때 한번 여쭤봤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새삼 엄마께 여쭤 보고 싶은 것들이 있다.
우리 집에는 온수가 안 나왔는데 기름때를 어떻게 말끔히 지웠는지, 그렇다고 비싼 트리오를 헤프게 썼을 리도 없다.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는 어디에 버렸는지, 그때는 한창 공부할 때라 집안일에는 관심이 없다 보니 기억 언저리에 남아 있지 않다.
세탁기, 탈수기가 없었던 시절에는 장마철에 빨래를 어떻게 말렸는지도 궁금하다. 방이 비좁아 실내에서 선풍기를 틀어 놓고 말릴 수도 없었을 것이고, 건조대라는 물건도 없었다.
사실 김밥은 엄마 김밥이 제일 맛있었다. 늘 김으로 싼 김밥, 계란으로 싼 김밥. 두 가지를 싸 주셨다.
계란김밥은 김 없이 계란 지단을 얇게 부쳐 밥, 속재료를 넣어 싼 계란밥이었는데 직접 만들어 보면 초고난이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모양도 전혀 흐트러짐 없이, 김밥, 계란밥을 2대 3 비율로 싸 주셨다. 소풍 때 도시락 뚜껑을 제일 자신 있게 열어젖힌 사람이 나였을 것이다.
역시 또 엄마 얘기.
엄마 아니었으면 브런치 못 할 뻔했다.
아이들 중고등학교 때 해준 김밥이다.
정성을 다해 만든 것 같아 보인다.
요리를 열심히 하고자 요리 블로그도 운영했었다.
이 계란김밥은 김밥을 먼저 싸고 위에 계란 지단을 한번 더 말아준 것이라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았는데, 김 없이 계란으로만 싸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김밥은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브런치에서 김밥 사진이 보이면 격렬하게 댓글을 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