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게네스의 통나무

by 보리아빠

가족들이 잠든 늦은 밤, 노트북과 마우스가 전부인 단출한 작업실 문을 열었습니다. 오늘은 어떤 글을 쓸까, 무슨 이야기를 남길까 그려보면서요. 바닥에 앉아 고민하다가, 생각나는 대로 글을 씁니다. 그러고는 전부 다 지워버리고 말아요.


매일 밤 쓰고,

매일 밤 지우고,

매일 밤 후회합니다.


인공지능과 비교도 해봤고, 말로도 글을 써봤어요. 나름의 성찰을 담아 보기도 했고, 그냥 나오는 대로 써보기도 했습니다.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결국 남은 건 '어떤 글이 좋은 글일까?' 하는 질문이고, 그 답을 찾기 위해 오늘도 조리치며 고민합니다.


물론 디오게네스처럼 산다면 이런 고민도 없었을 겁니다. 키니코스학파의 모토처럼, 개처럼 살면 될 테니까요. 하지만 여기는 고대 그리스가 아니고, 전 술 마실 때만 개가 되니, 아마 디오게네스의 인생은 흉내도 내지 못할 겁니다. 다만, 최소한만 갖추었던 그의 사고는 따라 해볼 수 있겠지요.


이 작은방에서 그런 고민을 하며 글을 쓰다 새벽녘을 보내면, 다음 날 무척이나 피곤합니다. 특히나 전부 다 지워버리는 날에는 더 그렇지요. 결국 얻은 건 하나도 없고, 시간만 버렸다 싶으니까요. 하지만 세상 이치가 항상 원하는 대로 흘러가진 않지요.


그래도 씁니다. 고민하면서요.


그 기억의 파편이 조금씩 뭉쳐 언젠가 더 좋은 글이 만들어질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하면서요. 낡은 술항아리와 지팡이만 갖고도 (미친) 소크라테스가 되었던 디오게네스처럼, 노트북 한 대뿐인 이 방에서 사람들의 마음에 오래도록 기억될 멋진 글을 쓰고 싶습니다.


그래서 습관처럼 오늘 밤에도, 디오게네스의 통나무를 끌고 와 자리를 잡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쓸까,

어떤 이야기를 지워버릴까,

어떤 이야기를 후회할까 고민하면서요.


그렇지만, 어떤 이야기는 살아남겠지요.


그걸 위해 오늘도 느릿한 손을 움직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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