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에 설치된 후드가 언제부턴지 작동이 시원찮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망가져 버렸습니다. 집에서 음식을 자주 해 먹는 편이라 주방 후드의 종말은 꽤나 큰 사건이었습니다. 특히나 창문을 열기 어려운 추운 겨울엔 꽤나 불편했었어요. 그렇다고 음식을 안 해 먹고살 수는 없으니, 그냥 적응하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냥 없던 거라 생각하니 금방 또 익숙해지더군요. 냄새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자연스럽게 살았습니다.
그러다 최근 이사를 준비하면서 살고 있는 집을 내놓게 되었습니다. 꽤나 사람들이 많이 다녀갔고, 오래 지나지 않아 계약을 원하는 분들과 만나게 되었죠. 가계약을 하고, 본격적인 이사 준비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사 갈 곳에 대한 고민과 함께 이사를 올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 일지 걱정도 생겼습니다. 생애 첫 집이고, 생면부지의 남에게 빌려주는 것도 처음이었거든요.
이것저것 수리를 해 둬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또 마음이 바뀌고... 하루 동안 수 차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부동산에도 상담해 봤습니다. 너무 심각한 하자만 아니면 굳이 수리해 주지 않아도 된다네요. 어차피 들어오는 분들도 다 감안하고 오시는 거고 말이죠. 사실 구축을 이 정도 컨디션으로 유지했으면 나름 조건은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은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전셋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그땐 집주인의 책임과 세입자의 책임의 범주가 다르다는 것도 구분을 못했어요. 하다 못해 전셋집의 도배를 세입자가 하는 게 국룰인지도 몰랐습니다. 신혼부부라며, 앞으로 잘 살라며 선뜻 도배도 해 주시고 주방도 수리해 주신 집주인의 마음이 당연한 권리인 줄 알았습니다. 너무 몰랐고, 그렇다 보니 무지를 핑계로 실례도 많이 저질렀습니다.
희미했던 기억이 떠오르며, 우리 집으로 이사 올 분들의 마음이 궁금해졌습니다. 신혼부부로 새로운 시작을 하기 위한 첫 번째 보금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의 마음 말이죠. 기대도 크고 걱정도 많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사소해 보이지만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은 부분을 찾아봤습니다.
그 첫 번째가 고장 난 주방 후드였습니다. 오래전 회전을 멈추고, 이젠 심미적인 기능마저 사라진 낡은 주방 후드. 이것부터 수리를 해 두기로 아내와 상의해 결정했습니다. 제품에 적인 브랜드명을 찾아보니 다행히 현재도 운영을 하고 있는 회사의 제품이었습니다. 그래서 AS 신청을 해 두고 전화를 기다렸습니다. 며칠 후 제조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뻔한 이야기를 하더군요.
"이 제품은 단종된 지 오래라 교체를 하셔야 합니다. 제품 비용은 14만 원에 설치비용은 3만 원에..."
물론 설치비용 3만 원은 아낄 수 있었어요. 그렇지만 제품 가격 14만 원은 빠듯한 외벌이 지갑에 적은 비용은 아니었어요. 그래도 기왕 수리를 해 주기로 했으니 다른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상담받은 내용을 공유하였습니다. 생각보다 지출이 있을 것 같다는 말과 함께요.
"그래도 수리를 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고장 난 건 감안하고 사셔야 한다는 말 하기가 미안해져요."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그럼 인터넷에 호환되는 제품이 있나 알아봐야겠어요."
아내도 저와 생각이 같았습니다. 그렇게 수리를 하는 것으로 결정했지만, 생각도 못한 지출은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그래서 호환되는 제품이 있지 않을까 싶어 인터넷 쇼핑몰을 검색해 봤습니다. 걱정했던 게 무색해질 만큼 좋은 제품이 많더라고요. 게다가 고장 난 주방 후드가 꽤나 인기가 있었던 물건이었는지, 같은 제품을 쓰다 교체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원래 제조사에서 얘기한 가격보다 훨씬 저렴한 적당한 물건을 발견했습니다. 배송도 하루 만에 왔습니다. 설치기사를 부르지 않아도 될 정도로 교체하기도 쉬웠어요.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수평계로 중심을 잘 맞추고 간단히 설치를 끝냈습니다.
작동 시험을 핑계로 고등어구이를 해 먹었습니다. 연기도 잘 빨아들이고 예전보다 냄새도 덜 남아있는 것 같아요. 아내와 아이와 맛있게 구운 고등어를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지금 이 집으로 이사를 왔을 때의 이야기를요. 그리고 이 집에 살며 생겼던 좋았던 일에 대해서요. 무엇보다 우리 부부에게 보리가 찾아왔던 일이 가장 행복했습니다. 결혼 후 꽤 긴 시간 동안 아이가 인연이 닿지 않아 마음고생을 많이 했었거든요. 지금은 말을 안 들어서 마음고생을 하긴 합니다만... 하하
그렇게 좋은 일이 많았던 집을 이제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게 되었다는 게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받았던 복을 나눠갖는 게 아깝지는 않아요. 복이란 건 나눈다고 없어지질 않으니까요. 남 좋은 일이라고 나에게도 안 좋을 리 없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집을 내주고, 감사한 마음으로 이사를 가야겠습니다. 거실의 다운라이트도 교체하려 사놨어요. 이사 왔을 때부터 등 한 개가 안 들어왔었는데, 이제 교체할 때가 되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