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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은 잘못이 없습니다

by 보리아빠

뱀은 그저 자연 속에서 살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코즈믹 호러 소설에나 나올 법한 거대 종족들이 어릴 때부터 기어 놀던 놀이터를 점령했어요. 게다가 처음 보는 괴상하고 커다란 건물까지 들어서며 고향에서 쫓겨나게 되었지요. 배가 고팠습니다. 예전엔 먹잇감이 많아 메뉴 고르는 게 고민이었는데, 이젠 맛없는 짐승이라도 일단 보이면 먹어야 하거든요.


이런 생각을 하면, 제가 뱀이라도 약이 올라 인간에게 화풀이를 할 것 같습니다.




혼자 지방으로 내려가던 길, 고속도로 중간에 있는 간이 휴게소에서 처음 보는 경고 표지판을 만났습니다.


"뱀조심"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건물 두 동 외에는 주변엔 꽃과 나무들만 심어진 간이 휴게소였습니다. 뱀이 어디에서 머리를 내밀어도 그리 이상할 것 없는 풍경이었어요. 아마도 뱀을 봤다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표지판까지 세워 가며 경고를 했겠지요. 뱀에 대한 사람의 인식은, 대개 '무섭다'와 '독이 있어서 위험하다' 정도로 모아지니까요.


하지만, 뱀의 입장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들의 눈으로 보기엔 인간이 훨씬 두려운 존재거든요. 목에 경련이 생기도록 고개를 쳐들어야만 끝이 보이는 인간의 크기,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대지의 진동은 압도적일 테니까요. 비늘을 타고 두드러기가 퍼지는 듯한 공포감은 인간을 우주적 존재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합니다.


그래서 뱀은 바닥에 배를 낮게 깔고, 멀리서도 느껴지는 사람의 기척을 피해 조용히 살아갑니다. 한입에 먹을 수 있는 작은 먹잇감의 냄새를 갈라진 혀끝으로 맡으면서요.


그래서 서로 무서워하는 불편한 관계가 된 뱀과 인간은, 드물게 마주하는 일이 생기면 등을 돌려 도망칩니다. 물론 꾼 같은 진짜 뱀의 '천적"도 있고, 마차를 가로막은 사마귀처럼 버티고 서 있는 뱀도 있습니다. 쉿 하는 날카로운, 뱀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소리를 내면서요.


이 뱀은 어쩌면, 인간에게 공포감을 심어 주려는 마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두려움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는 게 더 그럴듯해요. 그렇게 몸을 떨며 버티다가 어느 순간 벼랑 끝에 몰리면, 유일한 무기인 독니로 사람을 무는 겁니다. 먹지도 못하면서요.


그렇기에,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살아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듭니다. 사람만 뱀을 조심할 게 아니라, 뱀도 사람을 조심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들판에 박혀 있는 '뱀조심' 표지판의 의미를 약간 달리 생각해 봤습니다.


'물릴 수 있으니 뱀 조심하세요'가 아닌

'뱀을 밟을지 모르니 조심하세요'로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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