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등회에서 얻은 두 번째 깨달음
월하노인의 청실, 홍실은 언제부터 단단히 묶여 있었을지 궁금해집니다. 왜 3년이나 지나서야 묶인 실을 등 뒤로 던졌는지도 알고 싶어요. 어쩌면 노야는, 두 사람의 인연이 달빛을 머금어 가장 빛나는 순간을 기다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연(然)과 연(然)이 만나 인연(因緣)으로 맺어진 이 이야기는, 처음으로 연등회에 참석했던 2015년에 시작되었습니다.
연등회의 출발 장소인 동국대학교 대운동장에서, 엄마와 함께 행사장에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젊은 사람이 거의 없어서인지, 멀리서 본 그녀의 외모는 유달리 눈에 띄었어요. 그렇지만 당시의 전 민원 업무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시기였고, 그 때문에 필요 이상의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저 '예쁘게 생긴 사람이네' 정도의 흐리마리한 생각뿐이었어요. 게다가 아마 그분도 그랬겠지만, 전 어머니와 연세가 있는 보살님들을 챙기느라 바빠서 서로를 의식하기 어려웠습니다. 옷깃도 스치지 못한, 얕은 인연이라 여겼습니다.
어쩌면 월하노인이 아직,
명부를 뒤적이는 중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수많은 인파들 사이로 연등을 들고 행진했던 경험은 잠깐 마주쳤던 그 사람을 잊게 만들었습니다. 행진 중에 큰 깨달음을 얻었고, 마음을 다독이는 요령을 찾게 되었거든요. 다만 받은 복을 나누는 게 더 큰 복으로 돌아온다는 진리를 그때는 알지 못했어요. 그저 화가 가득했던 모난 마음을 다듬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지요. 그래서 화가 난 민원인과 싸우기 전, 왜 이 사람이 화가 났을까를 한번 더 생각하게 되었고, 사무실에서 큰소리를 내는 일도 많이 줄게 되었습니다.
이때도 월하노인의 붉은 실은
묶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3년째 연등회에 참석하게 된 2018년 봄이었습니다. 비가 쏟아질 것 같이 끄물끄물한 하늘을 보며 약간은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요. 아무래도 어르신들이 많다 보니, 분명 긴 거리를 걷기 힘들어하시는 분이 계실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어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던 중에, 스님께서 절 부르셨습니다. 매번 제 몸에 화가 가득하다고 걱정하셨던 분이었어요.
"이제 연(然)이 네놈이 기운이 좀 맞는 것 같구먼! 이리 좀 와 봐라! 연(然)이 너도 이리 좀 오고!"
연(然)?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가... 역정을 내는 듯한 스님의 부름에 별생각 없이 자리를 옮겼는데, 그곳엔 수줍게 얼굴을 붉게 물들인 사람이 서있었습니다.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서 말이에요. 전 잠시 어안이 벙벙한 채로 있다가, 쪽치고 서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서야 예전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매년 엄마랑 같이 연등회에 오던 여자분.
'예쁘게 생겼네'라는 흐리마리한 생각만 했던 사람.
저는 대충 상황 파악이 되었습니다.
"두 사람, 매년 얼굴 봐서 잘 알지? 둘이 통성명도 하고 지내면 좋겠다."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하필 스님께서 양쪽 어머니들까지 같이 부르시는 바람에 졸지에 상견례 자리가 되어 버렸거든요. 이 사태를 어찌 정리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곧 행렬이 시작하니 준비하라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저는 그때까지도 별말 없이 서있던 그분과 짧게 인사만 나눴습니다.
연등행렬이 이어지는 동안엔 딱히 말을 건네볼 여유는 없었습니다. 끄물끄물했던 하늘에서 결국 비가 세차게 쏟아졌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어르신들을 챙겨드려야 했거든요. 그럼에도 길가에 모인 사람들과 인사도 하며 신나게 복을 나눠주다 보니, 아까의 당혹스러웠던 마음은 사라졌습니다. 목적지인 광화문까지 가는 동안, 딱히 접점 없이 행렬을 이어갔어요.
행사가 끝난 후, 뒷정리까지 마치고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어요. 그렇지만 이미 아홉 시가 넘은 시간이었던 데다가, 저녁도 먹지 못했던 터라 어머니를 모시고 근처 식당에 들어왔습니다. 대충 자리에 앉아 전화기를 내려놓는데, 아까 받았던 전화번호가 생각났습니다.
분위기에 휩쓸려 연락처는 받았지만, 뭘 어째야 하나 싶었습니다.
"둘이 통성명도 하고 지내면 좋겠다."
스님의 이 말이 귓가를 맴돌았지만, 뭘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어요. 물론 짧은 대화로도 좋은 분인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좋은 사람이란 느낌도 있었고요. 하지만, 마흔이 다 된 노총각인 주제를 파악하니, 손끝이 자꾸만 망설여지더라고요. 연락을 해볼까, 하지 말까... 한참을 고민하던 중에 엉뚱하게도 월하노인 설화가 떠올랐습니다.
달빛 아래 앉아 명부를 펼쳐
왼쪽엔 남자, 오른쪽엔 여자
붉은 실로 묶인 인연(因緣)은
언젠가 매듭지어 단단해지리
망상에 가까운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이 사람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 말을 건넸습니다. 다행히 그분은 아까의 당혹스러웠던 마음이 진정된 상태였고, 그 덕분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비록 예상했던 대로 나이차는 있었으나 그분과 저는 빠르게 가까워졌고, 지금은 부부의 연을 맺고 살고 있습니다. 저의 외모와 그분의 세심함을 닮은 아이와 함께요.
어쩌면 처음 만났던 시절 제 마음은, 누군가와 함께 하기 위한 상태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스님은 그걸 알고 계셨기에 굳이 소개를 해주시지 않았던 거고요. 월하노인의 붉은 실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습니다. 명부엔 두 사람의 이름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뻣뻣한 실 끝을 부드럽게 만든 뒤에야 붉은 실이 만나 예쁜 매듭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전 그래서, 연(然)과 연(然)이 인연(因緣)이 되었음에 감사합니다. 뾰족한 마음을 둥글게 다듬고, 가시덤불을 젖혀 그분의 자리를 만들 수 있었음에 감사합니다. 무엇보다도, 어렵게 만든 자리에 조심스레 앉아 지금까지 제 마음의 잔가지를 다듬어 주고 있는 아나에게 감사합니다. 처음으로 참석한 연등회에서 만난 연(然)과의 인연(因緣)을,
오래도록 소중히 간직하고
오래도록 아끼며 살겠습니다.
여전히 쳐내야 할 가시덤불이 무성하거든요.
아내와 결혼 후, 옛날 사진을 함께 구경하다가 2016년 연등회 때 찍은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행렬이 잠시 멈췄을 때, 당시 기수였던 제가 뒤돌아 찍었던 사진이에요. 아내가 사진을 보더니, 뭔가 생각난 게 있는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여보, 이거 가족사진이네요."
"네? 무슨 말인가요??"
"여기 봐요, 오른쪽에서 두 번째 줄에 어머님 계시지요?"
"어머님 계신 줄 뒤쪽에 나랑 엄마도 있어요."
아내가 가리킨 자리를 보니 아내와 장모님이 있었어요. 이때는 아내와 아직 통성명도 하기 전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가족이 담긴 사진의 발견에 인연이란 참 신기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언젠가 또다시, 가족 모두가 연등회에 참석하는 날이 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함께 읽어보면 좋을지도 모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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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미야의 글빵연구소'
졸업 작품으로 남기겠습니다.
브런치에서 만난 미야 선생님과,
공모전과 이벤트를 종횡무진
휩쓸고 다니는 글벗님들과의 인연도
항상 소중히 여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여러분.
이 글을 읽어 주시는 독자분들도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