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사라지진 않을 거예요
한동안 제대로 된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짧은 시를 쓰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집안에 약간의 우환이 있었지만, 자기혐오는 다른 곳에서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났어요.
글을 쓰면서 제 자신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중 가장 크게 와닿았던 건, 제 멘탈이 상당히 약하다는 것이었어요. 지금까진 꽤나 튼튼하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냉정하게 바라봐 주는 반려가 있다는 건 이런 점에서도 도움이 되네요. 몰랑한 마음을 아내가 먼저 발견해 주었거든요.
얼마 전 우리 가족에게 기쁜 소식이 잠시 찾아왔었습니다. 상당히 섬세한 성격인 아내는, 병원 진단보다 빨리 몸의 변화를 알아챘고 저도 시간을 내 함께 병원에 다녀왔어요. 초음파 검사로는 알 수 없어 혈액 검사를 진행해야 했을 정도로 미약했습니다. 보리 동생의 신호는요.
융모성 생식선자극호르몬(hCG) 검사 결과는 금방 나왔습니다. 40 mIU/mL라고 하더라고요. 임신이 되긴 했지만 한 주 정도 진행 상황을 봐야 할 것 같다는 소견이 나왔지만, 전 아이가 생겼다는 소식에만 마음이 지나치게 기울었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며칠 만에, 아기집은 생기지 못하고 그렇게 없던 일이 돼버렸습니다.
몸이 약한 아내였기에, 더 신경 썼어야 했어요. 어렵게 찾아온 아이였기에, 더 조심했어야 했어요. 그런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이석증이 있어 자주 어지럼증을 느끼는데, 이 시기에 유달리 증세가 잦았어요. 그럼에도 무심한 저는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한번 크게 울고는 마음을 다잡은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전 그 이후에야 생채기가 벌어지기 시작했어요. 뭐든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게 싫었습니다. 글로 반성을 하고 마음을 다독였다 생각했지만, 말 그대로 생각만 했던 겁니다. 전혀 다듬어지지 않았고, 하나도 반성하지 않았어요.
아내는, 이 모든 게 대전제가 잘못되어 그렇다는 결론을 내려줬습니다. 저는 쿠크다스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고, 혼자서는 찍는 것밖에 못하는 젓가락 한 짝 같은 사람이란 걸요. 매일 민원인에게 기빨리며 살면서도 인정하지 않았었는데 결국 아내의 말에 수긍하게 되네요.
스스로를 받아들일 마음이 생긴 뒤, 왠지 팝업 전시 생각이 났습니다. 100명의 작가님들, 어쩌면 비슷한 고민을 했을 것 같아 가보고 싶었지만, 개인 시간을 보내려 아내와 보리를 두고 집을 비우기가 꺼려졌거든요.
그래서 평일을 이용해, 아내와 함께 다녀왔습니다. 보리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을 이용해서요.
100인으로 선정된 분들의 글도 읽어봤습니다. 역시나, 선택받은 글은 다르더군요. 만나 뵌 적은 없지만, 왠지 남겨두신 글과 같은 결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제 자신도 한번 더 돌아보게 되었고요. 그 '돌아본다'는 걸 아내 덕분에 조금 더 제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아내 덕분에요.
그리고, 잠시 찾아왔던 작은 존재 덕분에요.
고마워요, 더 나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미안해, 또 찾아온다면 그땐 꼭 지켜줄게.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