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도 잘 생기고 음주가무에 능하고 유머감각도 뛰어나다. 게다가 시대를 잘 타고나서 돈을 얼마나 잘 벌었던지..
아빠의 바람이 한창이던 때 아빠의 수입은 하루에 몇 백이었다.
아빠는 정이 많고 인심도 후해서 버는 것 못지않게 잘 썼는데 기분에 따라 내키는 대로 아주 충동적인 삶을 사셨다.
사업이라는 게 잘 될 때고 있고 또 안 될 때도 있고 그 편차가 큰데, 아빠는 사업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잘 감당하지 못했다. 기가 막히게 시대를 읽고 흐름에 편승하는 동물적인 감각은 굉장했지만 제대로 배우지 않은 탓에 뒷심이 약했다. 또한 다듬어지지 않은 성품으로 인해 인내와 절제가 없었던 탓에 터지지 않아도 될 문제가 터지기가 부지기수.
그때마다 엄마는 아빠에게 들볶여야 했다.
나중에는 아주 중요한 결정들을 엄마에게 떠넘겨, 잘 되면 본인 덕, 안 되면 엄마 탓을 하기에 이르렀으니.. 그래서 갈수록 사업은 아빠가 하는데 점점 엄마가 사업가적인 면모를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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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빠가 돈을 잘 버는 게 싫었다.
돈을 잘 벌면 그 돈을 갖고 술집에 가서 바람을 피울 거니까.
기분이 좋아도 술에 취했고 기분이 안 좋아도 술에 취하는 아빠가 싫어서 점점 아빠를 마주치지 않게 되었다.
나중에는 아빠가 우리를 불러내었는데
아빠의 주정은 우리에게 용돈을 주는 것이었다.
나는 아빠에게 받는 그 돈도 경멸했다.
자식들에게는 안 그랬지만 엄마에게는 생활비를 주면서 늘 생색을 내고 따지고 들었으니까.
좋은 것도 싫은 것도 한데 뒤섞여서 뭐가 뭔지도 몰라. 이게 뭔지도 모르고 그래도 되는지 아니 그래야만 하는지 알고
그렇게 나는 내내 아빠를 미워했었다.
첫 연애를 시작했다. 나의 한결같은 이상형은 "아빠 같지 않은 사람"이었다. 아빠와 정반대의 사람을 만났다. 심지어 얼굴도 못 생긴. 주제에 바람을 피울 수는 없을 테니 그걸로 안심이었다.
그런데 그 주제가 바람을 피우더라.
지금 와서 보면 뭐 고등학생이 사귀어봤자 오락실, 노래방이나 같이 다니는 거고 바람을 피워봤자 다른 애랑 시시덕거리고 문자를 주고받은 것뿐이다만.
못 생기고 덜 떨어지는 게 바람까지 피우면 그것만큼 열받는 게 없다. 그렇게 몇 번의 연애가 바람으로 끝나고
진절넌더리를 내며 누구도 만나지 않다가, 결혼할 때가 되어 고르고 골라 마침내 진지하게 결혼 상대를 만났는데 그도 역시 바람둥이 었다.
너무 절망스러웠다.
내 믿음에 대한 배신?
상대에 대한 원망? 분노?
그것보다도 나는 그렇게 고르고 골라서 결국 이건가! 하는 그 절망감에 몸부림쳤다.
이건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인 건가.. 신이 나를 이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 줘야 나는 비로소 자유할 수 있을 거야
그날 나는 몸부림을 치며 통곡을 하다 잠이 들었다.
그날 밤 꿈에 아마 처음으로 아빠가 나왔다.
아빠는 그날 내 꿈에서도 거나하게 취해 계셨는데, 집으로 들어오셔서 우리를 보시고는 주머니 한가득 들어있던 사탕을 꺼내 주셨다.
그날 기억이 난다. 어느 날 아빠가 그날도 어김없이 술에 취해 들어와 갖곤 분명히 술집 계산대 앞에 수북이 쌓여있었을 사탕을 우리 먹으라고 줬었다.
"술 냄새 풀풀 풍기면서 술집에 있는 걸, 더럽게 우리 먹으라고 준다고 짜증을 내며 방으로 들어갔던 그날"의 일이 기억이 났다.
꿈에서 본 아빠는 너무도 지쳐 보였는데 우리를 보는 그 순간만큼은 너무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술김에도 우리들 생각이 나서, 우리 주려고 사탕을 한 움큼 집어다 주머니에 욱여넣고 집까지 와서 어서 와서 사탕 먹으라고 하는 그 모습.
그건 누가 봐도 사랑이었다.
아빠는 아빠의 방식대로 우리를 참 사랑했었구나.
아빠는 아빠 하고 싶은 대로, 아빠 맘대로 산 줄 알았는데, 아빠도 어쩔 수 없었겠구나..
그걸 알게 된 후 나는 비로소 아빠를 용서할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나는 아빠 몰래 아빠와 화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빠와 화해를 한 그 이후로
내가 지금껏 만나보지 못한 신인류인(내 레이더망에 전혀 잡히지 않았던 남성상) 지금의 남편을 민나 결혼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