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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Jangs Aug 04. 2024

육 남매 중 첫째 딸의 이야기 #6-2

아빠 몰래 아빠랑 화해하기

우리 아빠는 말하자면 한량 스타일이다.

얼굴도 잘 생기고 음주가무에 능하고 유머감각도 뛰어나다. 게다가 시대를 잘 타고나서 돈을 얼마나 잘 벌었던지..

아빠의 바람이 한창이던 때 아빠의 수입은 하루에 몇 백이었다.

아빠는 정이 많고 인심도 후해서 버는 것 못지않게 잘 썼는데 기분에 따라 내키는 대로 아주 충동적인 삶을 사셨다.


사업이라는 게 잘 될 때고 있고 또 안 될 때도 있고 그 편차가 큰데, 아빠는 사업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잘 감당하지 못했다. 기가 막히게 시대를 읽고 흐름에 편승하는 동물적인 감각은 굉장했지만 제대로 배우지 않은 탓에 뒷심이 약했다. 또한 다듬어지지 않은 성품으로 인해 인내와 절제가 없었던 탓에 터지지 않아도 될 문제가 터지기가 부지기수.

그때마다 엄마는 아빠에게 들볶여야 했다.

나중에는 아주 중요한 결정들을 엄마에게 떠넘겨, 잘 되면 본인 덕, 안 되면 엄마 탓을 하기에 이르렀으니.. 그래서 갈수록 사업은 아빠가 하는데 점점 엄마가 사업가적인 면모를 갖게 되었다.

-

나는 아빠가 돈을 잘 버는 게 싫었다.

돈을 잘 벌면 그 돈을 갖고 술집에 가서 바람을 피울 거니까.

기분이 좋아도 술에 취했고 기분이 안 좋아도 술에 취하는 아빠가 싫어서 점점 아빠를 마주치지 않게 되었다.

나중에는 아빠가 우리를 불러내었는데

아빠의 주정은 우리에게 용돈을 주는 것이었다.


 나는 아빠에게 받는 그 돈도 경멸했다.

자식들에게는 안 그랬지만 엄마에게는 생활비를 주면서 늘 생색을 내고 따지고 들었으니까.


좋은 것도 싫은 것도 한데 뒤섞여서 뭐가 뭔지도 몰라. 이게 뭔지도 모르고 그래도 되는지 아니 그래야만 하는지 알고

그렇게 나는 내내 아빠를 미워했던 것 같다.



연애를 시작했다. 나의 한결같은 이상형은 "아빠 같지 않은 사람"이었다. 아빠와 정반대의 사람을 만났다. 심지어 얼굴도 못 생긴. 주제에 바람을 피울 수는 없을 테니 그걸로 안심이었다.

그런데 그 주제가 바람을 피우더라.

지금 와서 보면 뭐 고등학생이 사귀어봤자 오락실, 노래방이나 같이 다니는 거고 바람을 피워봤자 다른 애랑 시시덕거리고 문자를 주고받은 것뿐이다만.


못 생기고 떨어지는 게 바람까지 피우면 그것만큼 열받는 게 없다. 그렇게 몇 번의 연애가 바람으로 끝나고

진절넌더리를 내며 누구도 만나지 않다가, 결혼할 때가 되어 고르고 골라 마침내 진지하게 결혼 상대를 만났는데 그도 역시 바람둥이 었다.



너무 절망스러웠다.

내 믿음에 대한 배신?

상대에 대한 원망? 분노?

그것보다도 나는 그렇게 고르고 골라서 결국 이건가! 하는 그 절망감에 몸부림쳤다.

이건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인 건가.. 신이 나를 이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 줘야 나는 비로소 자유할 수 있을 거야

그날 나는 몸부림을 치며 통곡을 하다 잠이 들었다.


그날 밤 꿈에 아마 처음으로 아빠가 나왔다.

아빠는 그날 내 꿈에서도 거나하게 취해 계셨는데, 집으로 들어오셔서 우리를 보시고는 주머니 한가득 들어있던 사탕을 꺼내 주셨다.

그날 기억이 난다. 어느 날 아빠가 그날도 어김없이 술에 취해 들어와 갖곤 분명히 술집 계산대 앞에 수북이 쌓여있는 사탕을 우리 먹으라고 줬었다. 술 냄새 풀풀 풍기면서 술집에 있는 걸, 더럽게 우리 먹으라고 준다고 짜증을 내며 방으로 들어갔던 그날의 기억이 생각이 났다.

꿈에서 아빠는 너무도 지쳐 보였는데 우리를 보는 그 순간만큼은 너무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김에도 우리들 생각이 나서, 우리 주려고 사탕을 한 움큼 집어다 주머니에 욱여넣고 집까지 와서 어서 와서 사탕 먹으라고 하는 그 모습.

그건 누가 봐도 사랑이었다.


아빠는 아빠의 방식대로 우리를 참 사랑했었구나.

아빠는 아빠 하고 싶은 대로, 아빠 맘대로 산 줄 알았는데, 아빠도 어쩔 수 없었겠구나..


그걸 알게 된 후 나는 비로소 아빠를 용서할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나는  아빠 몰래 아빠와 화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빠와 화해를 한 그 이후로

내가 지금껏 만나보지 못한 신인류인(내 레이더망에 전혀 잡히지 않았던 남성상) 지금의 남편을 민나 결혼하게 되었다.


그럴게 나는 아빠와 화해하고 아빠에게서 비로소 벗어났다.



아빠의 등을 보고 자라날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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