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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속의 고래 Apr 18. 2024

양이 늑대를 잡아먹었다.

늑대는 양이 무섭다.


내가 늑대였다면, 양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을 거다. 늑대의 늑생(?)을 양이 다 망쳐버렸다.

언재부턴가 늑대는 나쁜놈이 되어버렸다. 음흉한 생각을 품은 저급한 남성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늑대는 억울하다.





나는 늑대가 좋다. 인간에게 길들여지지 않고 야생을 탐험하는 늑대가 좋다. 우두머리 늑대의 리더십 아래에서 집단 생활을 하는 늑대들이 참 멋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늑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특히 어린 아이들은 늑대를 싫어한다. 늑대는 나쁘다고 얘기한다. 동물들을 괴롭히고 잡아먹는다고 무서워한다. 어째서 아이들을 위한 동화 속 늑대는 나쁜놈이 되어버린걸까? 풀을 뜯어먹고 살 수 없는 늑대는 왜 양을 먹지 말아야 하는가?

늑대는 대표적인 프레임의 희생자이다.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없다. 초식동물은 풀을 먹고 육식동물을 초식동물을 먹는다. 양을 괴롭히려는 의도로 해를 가하는 늑대는 없다. 그저 배고프기 때문에, 그래야만 하기 때문에 양을 먹는다. 그렇게 아이들은 (우리는) 프레임에 갇혀버린다. 당연한 사실을 나쁘게 얘기하는 것은 아주 큰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나쁜 늑대는 아주 작은 문제에 불과하다. 세상에는 늑대 프레임을 얻게 된 희생자들이 아주 많다. 기업들도 그중 하나이다. 구조조정을 하여 직원들을 해고하는 회사는 나쁜 회사처럼 보인다. 성실히 일해온 직원들을 해고하고 이득을 취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마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지속적으로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때론 과감한 시도가 필요하다. 나중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 짐을 줄일 필요도 있다. 그렇게 살아남은 기업은 몸집을 불려 고용창출에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기업의 구조조정 소식을 반기지 않는다. 설령 내 회사가 아니여도 말이다. 불쌍한 직원들은 양, 기업은 늑대처럼 보인다.




요즘 유행하는 친환경 열풍도 마찬가지이다. 현 시점에서 기업의 대부분의 활동을 친환경 에너지로 지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리하게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을 하다 기업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 얼마 전에 유럽의 농부들은 이 사실을 깨달았다. 보조금을 받으려면 친환경 농약만 사용하라는 정부의 요구를 농부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결국 트랙터를 타고 시위를 나섰다. 친환경 산업은 양처럼 보인다. 지구를 위해,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친환경 산업은 순한 양의 탈을 쓰고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양이 늑대를 괴롭히고 있다.




사실 늑대만큼 품위 있는 동물도 없다. 늑대는 적을 만났을 때 수컷과 암컷이 함께 싸운다. 이때 암컷은 자세를 낮추고 수컷의 턱 밑으로 들어간다. 언뜻 보면 수컷 아래에 숨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행위는 수컷의 목덜미를 보호하려는 자세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협동인가? 이런 아름다운 종을 두고 음흉한 인간 남자들과 비교를 하다니. 나로서는 아주 영광이다. 늑대같은 놈이라는 말은 사실은 최고의 칭찬이 아닌가?

이 글을 다 읽었다면 이런 생각을 하기를 바란다.


' 내 주위의 늑대를 잡아먹는 양은 뭘까? '


늑대를 잡아먹는 양이 누구인지 고민해보라. 양한테 잡아먹히는 늑대가 사실은 당신이 아닌지 고민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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