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이 내게 알려준 가까운 곳의 행복.
내게는 항상 그리운 것이고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존재들이며, 좋은 모습으로만 찾고 싶은 책임감과 그만큼의 부담이 느껴지는 단어이다.
'회사-집'만 하던 때에 나는 '나의 옛집', 소위 '본가'라고도 하는 부모님 집에 자주 가지 못했다. 한마디로 쉽게 말하면 '내 몸이 귀찮아서', 다르게 표현하면 '내 마음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을 보면 늘 즐거운 얘기만 하며 식사를 사드리고 그들을 재밌게 해주고 싶은데.. 주말만 되면 모든 기력이 소진되어 뭔가가 약간만 신경에 거슬려도 짜증이 확- 일어나는 내 마음을 본가에까지 가서 비치기 싫었다.
어쩌다 한두 달에 한 번이나 갔을까. 집에 가서도 이불 속에 폭 쌓인 채로 시체처럼 누워있기 일쑤였다. 그런 나를 볼 때마다 부모님은 자기네들끼리 두런두런, '순이가 일이 무진장 피곤했나 보다, 쟤 영 잠을 못 자고 지냈나 보다..'하며 혀를 끌끌 차며 안타까워하셨었다.
그분들은 딸 보기가 안쓰러워 걱정스러운 마음이었을 텐데, 내가 자는 방문 앞에 왔다가 '더 자게 두자'하고 돌아서며 했던 그 말들이 이상하게도 내게는 가슴 뭉클한 위로가 되었었다.
우리 부모님은 아직 일을 하고 계신다. 사는 것이 돈 걱정 없이 풍족하기만 하다면야.. 내 부모님이 더는 고생하지 않고 이곳저곳 여행 다니며 좋은 것만 보고 맛있는 음식만 드셨으면 하는 게 자식 된 바람이지만 우리 가족은 그러기엔 아직도 '성장 단계'에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우리 부모님은 마음만은 팔팔한 이팔청춘처럼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시려고 열심히 일을 하고 계신다. 마음이 무거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내 부모님이 정말 자랑스럽고 감사하다. 나에게서 더 무거운 장바구니를 한사코 빼앗아 들고 가는 엄마를 보고 있으면, '그래도 우리 엄마 나보다 힘이 세서 다행이다.' 하고 묘한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휴직을 하기 전 집에 갔던 어느 날, 엄마도 일하고 왔던 날이라 만사가 귀찮았을 텐데.. 주방에서 쟁반이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뒹구는 소리가 나고, 뭘 그렇게 썰고 지지고 볶으시나 했더니. 이불 속에서 허우적대는 딸이 깨면 먹이겠다고 열심히 김밥을 싸놓으셨더랬다. 이렇게 든든히 재료를 골고루 넣은 김밥은 밖에서 사 먹지도 못한다면서, 시원한 배추김치까지 새로 꺼내놓고 먹어보라 재촉하는 엄마의 모습이 든든하고 안심되었다. 언제까지고 이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저 김밥 사진을 찍어놓았다.
휴직을 하겠다고 했을 때, 난 부모님이 '조금만 참고 다니지 왜'라고 하실 줄 알았다. 물론 그 말에 흔들리지 않을 결심이긴 했지만. 그런데, '너가 힘들면 쉬어야지, 좀 쉬어도 괜찮아. 잘 생각했어.'라는 의외의 대답에 생각지도 못한 원천으로부터 큰 힘을 얻은 것만 같았고, 마음이 새털처럼 가벼워졌었다.
그리고 휴직을 한 뒤로 자연스럽게 본가에 자주 드나들고, 오래 머물게 되었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억누른 채 마치 쿠폰에 도장을 찍으러 간 듯했던 그때와는 달리 부모님 차를 타고 바깥공기를 마시는 게 버겁지 않았고, TV를 함께 보며 내 관심을 끌고 싶은 동생의 장난스러운 질문들이 전혀 귀찮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그 어떤 행위보다 '내 가족과 보내는 이 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느끼게 되었고, 오랜만에 가족 여행을 떠났다. 거창하지 않지만 우선은 우리나라 남쪽 끝 '여수'로.
보험에 예비 운전자로 날 추가했지만, 우리 아빠는 여행 내내 핸들을 넘겨주지 않으셨다. 그에게 운전 핸들은 가장으로서 지켜내야 할 '챔피언 벨트'인 것만 같았다. 장난기가 다분한 내 동생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목베개를 한 내 모습이 꼭 차에 타서 세상 구경을 하는 강아지 같다며 저 사진을 남겼다.
한참을 달려 도착해 2박 3일간 우리 가족이 지냈던 숙소. 평소 잘 놀러 다니지 못했던 부모님에게 '오션뷰'를 선물해 드리고 싶었다. 오션뷰 숙소 찾기도 예약하기도 참 까다롭다는 걸 아실런지.. '오호~ 바다가 보이네?' 하는 정도의 반응이었지만 아무러면 어떠랴. 창밖의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시작하는 가족 여행이 참 설레고 기분 좋았다.
거대한 건물 여러 동이 있는 여수 엑스포 전시관에서 한참동안 미로찾기를 한 끝에, 명화나 자연풍경을 미디어 아트로 보여주는 '아르떼 뮤지엄'에 도착했다.
뭐 볼 만한 게 있겠냐며 괜히 돈만 버리는 거 아니냐고 하시더니. 부모님이 제일 열심히 사진과 동영상을 찍으셨다. 참 어이가 없으면서도 흐뭇한 딸의 마음이 혼재되었다.
혼자 잘 나오는 독사진도 좋지만 이런 이색적인 가족사진도 추억이다.
그리고 내가 모르고 있던 엄마의 취향을 알게 되었다. 모네와 고흐, 클림트의 명화에 유독 관심을 보이며 카메라를 들던 엄마. 나중에 얘길 나눠보니 엄마는 '그림 보는 것을 참 좋아한다'라고 했다. 그래서 뒤늦게 명화집을 한 권 사드렸다. 집에서 쉴 때 가끔씩 들춰보며 그림 구경도 하고 설명도 읽으니 좋다고 하신다. 진작에 알았더라면. 앞으로 엄마와 미술관 전시를 같이 구경 가야겠다. 엄마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일이 하나 더 생겨서 기쁘다.
여행 두 번째 날 아침. 아빠가 좋아하는 갈치조림을 먹으러 갔다. 갈치조림 맛집을 한 20개는 뒤져본 것 같다. 맛있는 갈치조림 덕에 밥도 두 공기, 밥도 두 배 행복도 두 배.
엄마가 그렇게도 가보고 싶어 했던 곳. 그곳에 그녀가 사진으로만 보며 감탄하던 '그곳'이 있다.
"不見. 남의 잘못을 보려 힘쓰지 말고, 남이 행하고 행하지 않음을 보려하지 말라.
항상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옳고 그름을 살펴야 하리."
'그곳'에 닿을 계단을 오르다 보면 불상들이 중생에게 건네는 여러 가지 조언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내게 와닿는 글귀 하나를 사진으로 남겨보았다.
불상들의 조언을 마음에 새기며 오르다 보면 향일암으로 가는 입구인 '그곳'. 거대한 바위 문이 있다. 엄마가 사진으로만 보며 그토록 오고 싶어 했던 곳이다.
잠시 인적이 한산한 틈을 타 좁고 기다란 문을 연상시키는 바위 틈을 찍었다. 이 사진을 엄마는 유독 좋아하신다. 카카오톡 배경 사진으로 해놓을 정도로. 그녀는 커다란 바위 사이에 서서 우와-하는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함께 서서 그 광경을 보는 나도 덩달아 기뻤다. '우리 엄마 그렇게도 보고 싶어 했던 걸 드디어 와보네.'
계단이 많아 숨이 차고 다리가 아팠지만 오르다 쉬다, 서로 기다려주기를 반복하며 도착했던 향일암.
그 위에서 가족과 함께 바라보았던 시원한 바람과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을 잊지 못할 것이다.
여수에 왔으면 다 같이 케이블카도 타 봐야지. 이왕이면 '여수 밤바다'를 함께 보기 위해 어둠이 오기를 느긋하게 기다려보았다.
오늘이 있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던 가족사이지만.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은 나의 부모님. 그 모습을 찍으며 앞으로 더 좋은 곳에 같이 다니며 즐겁게 살아가자고 혼자 속으로 다짐해보는 나였다.
마침내 케이블카에 탔다. 케이블카에 블루투스를 연결해 '여수 밤바다'를 잔잔하게 들으며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영상도 남겨본다. 투명한 바닥 아래로 아득하게 보이는 지상을 바라보며 부모님도, 서른이 넘은 자식 둘도 다 같이 어린애가 되어 와-하고 탄성을 질렀다.
♪ 이 바다를 너와 함께 걷고 싶어, 이 거리를 너와 함께 걷고 싶다 ♬ - 여수 밤바다 가사 中
노랫말처럼 가족과 함께 걷고 싶은 '여수'에 와 있었고, 넷이서 바라보는 야경은 근사하다 못해 황홀하기까지 했다.
향일암, 케이블카, 이순신 광장 구경을 하며 맛집에 줄도 서 보고 야식거리도 사고.
다시 오고 싶을 만큼 좋은 여수였지만 앞으로는 새로운 곳들을 함께 다녀보기로 마음먹었으므로, 남들이 여수에 오면 한다는 것들은 다 해보았던 것 같다.
내가 길을 조금 더디게 찾아도 괜찮다고 기다려주고, 평소보다 꽤 많이 걸어 힘들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친 내색 않고 웃으며 함께 다녀준 부모님과 동생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짧지만 알차고 보람된 3일이었다. 때론 집 근처에서의 일상에서 벗어나 가족들과 관광지를 탐험하는 일이 얼마나 즐겁고 재밌는 일인지, 이번 기회에 더 잘 알게 된 것 같다. 다음엔 어디로 갈지 행복한 고민 중이다.
요 근래 들어 늘 생각하고 마음에 새긴다.
가족과의 시간이 무엇보다 더 소중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