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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이 May 16. 2024

몸과 마음의 체력 기르기

살면서 처음으로 산행을 즐기다.

 여태 맘껏 놀아본 적도, 게을러본 적도 없는데, 회사원이 된 이후 10년 만에 돌아본 나의 몸은 야식, 스트레스, 맥주에 찌들어 배와 등에 '게을러 보이는' 살이 어느샌가 붙고 말았다. 체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계단을 스무 개를 채 못 올라서 숨이 차기도 했다. 


이런 탓으로, 쉬면서 무조건 운동을 하기로 마음먹었었다. '그런데.. 어떤 운동을 하지?'

헬스장은 여러 가지로 불편할 것 같았다. 기구 사용법을 잘 모르기도 하고, PT 강습료는 너무 비쌀 것 같고.. 어설프게 기구를 다루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쳐다볼 것 같기도 하고 이런저런 핑계로 헬스장은 제외했다. 


그러다가 떠올린 생각이 '산은 어떨까?'였다. 

자연 속에서 나 홀로 자유로이 구경도 하고 운동도 할 수 있는 곳. 


올해 1월 한겨울에 살면서 처음으로 산행에 나섰다. 눈이 꽤 많이 내리고 난 며칠 뒤였다. 

산의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와 길에 소복히 깔린 (雪)에 반사된 햇빛으로 눈(眼)이 훤해졌다.

찬공기에 코가 시려서 기대했던 산의 냄새를 맡을 수는 없었지만 마음만은 상쾌했고, 영하의 날씨에 등과 이마에 땀이 맺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날은 참 용감하게도 처음으로 나선 산행에 정상까지 올라갔다 왔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난 무식했던 것이다. 다녀온 뒤 4~5일은 다리와 엉덩이에 엄청난 진통을 겪어야 했다. 저 눈길을 신발에 아이젠도 차지 않고 운동화 바람으로 다녀왔다니.. 


이날의 무식한 경험이 있었던 덕에 지금은 산행을 운동 삼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초봄이 오자 등산 중에 꺼내 먹는 간식과 이온음료의 달콤함을 알아가고 있었고. 

산에 사는 동물들의 강인함과 덤덤한 삶의 태도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건강하고 윤기 흐르는 깃털 무늬를 지닌 산비둘기와, 따뜻한 봄날의 햇볕을 즐길 줄 아는 유유자적 산고양이가 부럽고도 대견했다.

산행 후 먹는 식사는 그 어느 때보다 보람찬 꿀맛이었다. 여태 한 번도 남긴 적이 없다. 땀 흘린 나에게 주는 최고의 보상이다. 

산에서는 오르막길과 평지, 내리막길이 반복된다. 이 세 가지 중에 어떤 길이 더 나음은 없다. 


오르막길은 숨이 가쁘고 몸이 힘들지만 그 끝에 다 올랐다는 보람이 있고, 오르막이라는 어려움 뒤에 나타나는 평지는 숨을 고르고 원래의 기운을 되찾게 해준다. 그리고 마지막에 만나는 내리막길은 올라갈 때 느끼지 못했던 녹음의 향기와 흙길의 푹신함을 더욱 진하고 깊게 느끼게 해준다. 


이 세 가지 길 모두가 우리 삶의 순간순간과 매우 닮아있다.

오늘,

긴 여행과 본가에서의 휴식을 취하면서 한동안 가지 못했던 산에 다녀왔다. 

한 달 사이 놀랍도록 변해있었다. 온통 초록빛으로 우거진 산의 입구가 반겨주었다.

어제는 비가 하루 종일 내렸는데, 오늘의 하늘은 쾌청했다. 

산속에서 바라보는 파란 하늘과 초록의 풀숲, 뭐라 달리 수식어로 표현할 길이 없다.

이런 게 숲에서 하는 명상인가 한참 넋을 놓고 보고 있는데 나무를 흔드는 바람이 짙푸른 향기를 냈다.

처음엔 운동으로 시작한 산행이었지만 봉우리 바위 위에 앉아 하늘과 아래 땅, 그 사이에 드리우는 나뭇가지를 눈에 바라보고 있자면 마음마저 위로받는 기분이 든다.


산을 코로 맡고, 눈으로 보고, 다리로 버티고, 발로 디디며, 몸과 마음의 '체력'이 점점 붙어가는 것을 느낀다. 오늘도 인내와 감상을 벗 삼아 산봉우리에 올라 한참동안 풍경을 감상하며 바랬다.


'어제보다 더, 오늘보다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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