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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세끼 챙겨먹기

회사를 쉬는 30대 1인 가구의 소박한 한 끼

by 순이

출근하던 때에는 아침식사를 먹은 날이 거의 없었다. 항상 아침밥을 대신하는 건 커피 한 잔이었을 뿐.


'잠 좀 원 없이 실컷 자봤으면 좋겠다.'


매일 새벽 회사에 가기 위해 겨우 몸을 일으키며 되뇌었던 말이다.


휴직을 하고 보름 정도는 정오가 될 때까지 잠만 잤던 것 같다. 잠이 오지 않아도 마냥 이불을 덮고 침대 양 끝을 뒹굴거리며 포근한 자유를 질릴 때까지 누리다가 일어나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는 배가 고파서 아침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뭘 해먹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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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초년생 때부터 10년 이상 독립해 살아왔었고 나름 음식을 직접 해먹는 걸 좋아했었던 나였는데, 번아웃이 온 상태로 2~3년 동안은 반찬도, 야식도 배달음식으로 때워왔기에 뭔가를 막상 만들어 먹으려니 끓이는 것도 칼질하는 것도 모든 것이 생소했다.


제일 만만했던 스크램블 에그로 시작해서, 점점 먹고 싶은 걸 직접 재료를 손질해 만들어 먹다보니 이것도 꽤 재밌다고 느껴졌다. 평범한 식사지만 음식을 만들 때 이것저것을 조합하며 즐기는 내 모습에서 일상의 활기가 살아났음을 알 수 있었다.

KakaoTalk_20240523_171330402_05.jpg 잠봉햄과 루꼴라를 호밀빵에 듬뿍 밀어 넣고 빵집에서 사 먹는 샌드위치를 흉내 냈을 때, 그 맛은 성공적이고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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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대로 조합해먹는 다이어트식과 마라샹궈

냉장고에 있는 야채와 식재료를 가지고 어떤 날은 다이어트식을 만들기도 하고, 어떤 날은 배달음식을 흉내 내기도 했다. 오른쪽의 마라샹궈는 소스만 있다면 사 먹는 가격의 4분의 1도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나서, 내가 그동안 얼마나 배달음식에 많은 소비를 했던 것인가 하고 무릎이 탁 쳐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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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하고 거창하지 않으면 어떤가, 입맛이 없을 땐 나물 반찬이나 연두부만으로도 그만이다.

정월 대보름 기분을 내보겠다고 말린 나물을 물에 불리고 쥐어짜고, 간을 하고, 볶으면서, '내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 먹을 만큼의 마음의 여유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되새겼었다. 그리고 쉴 때만 이렇게 여유로울 것이 아니라 '삼시세끼를 챙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스스로를 돌보고 가꾸면서 살자'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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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늘 쌓아두곤 했던 컵라면의 개수와 만두 봉지 수가 현저히 줄었다.

예전에는 퇴근하고 밤늦게 집에 도착해 뇌가 시키는 대로 매운 컵라면 아니면 김치만두 한가득을 맥주와 곁들여 먹고 잠을 청했었다. 스트레스를 푼답시고 한 행동이었지만 돌이켜보니 최악의 습관이었던 것 같다. 이러니 다음 날 몸이 더 무거웠던 건 당연한 일이고, 불면증과 스트레스 간의 악순환이 반복되었을 수밖에.


지금은 냉장고에 이것저것 있는 재료를 가지고 레시피에 구애받지 않고 맛있으면 있는 대로, 싱거우면 또 싱거운 대로 한 끼 한 끼를 만들어 먹으며 살아간다.


'맛이 좀 덜 하면 어때, 좀 망치면 어때, 괜찮아'

음식을 만들면서 배만 채우는 게 아니라, 내 마음더러 괜찮다고 토닥이고 얼러주고는 한다. 계속 계속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자. 지금도, 나중에도 다 괜찮을 거라고.


이 글을 마치고, 나는 또다시 장을 보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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