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주악이 먹고 싶어서 무작정 집에서 나왔어.
오늘은 잠을 푹 잤다. 8시 반에 잠시 눈을 떴다가, 다시 잠에서 깨니 10시 반. 그로부터 30분은 이불 속에서 밍기적댈 예정.
'너무 오래 누워있었다.'
이대로라면 낮이 너무나도 짧다. 곧 하루가 저물고 말 것이다.
이불을 박차고 나왔다.
나는야 충동적인 MBTI 'J', 오래전부터 눈독 들였던 카페에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갈 곳은 계획적이나 그 방문시기는 즉흥적.)
화성행궁 근처에 위치한 그 카페에 가기 위해 차를 몰아 도착했다.
초록의 버드나무가 양 옆으로 드리운 맑은 물의 수원천과 파란 하늘이 완연한 봄날의 조화를 이룬다.
그 모습이 얼마 전 교토여행에서 본 기온의 가모가와(鴨川)와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4계절 중 5월이 제일 살기 좋은 달인 것 같다. 날씨가 참 좋다.
무더운 여름이 오기 전 가장 푸르고 시원한, 살아나는 5월이다.
날씨와 풍경과 계절은 거들 뿐, '사실은 개성주악이 먹고 싶었어.' 그 카페에 도착했다.
아기자기한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는 동그랗고 귀여운 과자들.
개성 향토 음식. 찹쌀가루에 멥쌀가루나 밀가루를 섞은 후, 막걸리나 소주를 넣고 익반죽하여 둥글게 빚은 것. 이것을 기름에 지지고 조청, 꿀 등을 이용해 약과처럼 만든 한과.
내 기준으로는 겉에 꿀바른 미니 찹쌀도넛.
가장 기본으로 고른 구성.
바깥의 수양버들을 바라보며 '나를 위한' 여유를 음미할 준비가 되었다.
귀여워서 찰칵.
처음 먹어보는 개성주악.
그 맛도 궁금하지만, 또 너무 귀여워서 입에 넣기 전에 포크로 괜시리 콕콕. 괴롭혀본다.
쫀득쫀득한 찹쌀도넛을 몇 입에 나누어 해치우고는 읽다 말은 책 한 권을 마무리해 보기로 한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
평범하고 소박한 글귀들로 구성되었지만
한 구절 한 구절, 한 장 한 장이 나에게 해주는 응원과 위로와 같았던 책.
글쓴이가 나 같은 사람들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 같은 책이다.
그 중에서도 나중에 다시 들춰보고 싶은 부분에는 띠지를 붙여두었다.
마음에 와닿았던 구절을 아래에 인용해 본다.
모든 감정은 지나가기 마련이다. 이 또한 지나갈 일임을 명심하자. 감정은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만 가슴속에 새겨두고 있다면 적어도 감정에 잡아먹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자꾸만 했던 말과 행동들을 돌아보며 눈치를 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괜찮다고. 아무도 당신을 떠나지 않으니 안심하라고. 불안해할 필요없다고.
저 구절들을 다시 읽어보자니 문득 기억나는 일이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그 언니가 새벽에 십수 번이고 전화와 카톡을 남겨놓았었고, 난 집에 어떻게 들어온 건지 기억이 없었다.
평소에는 그 언니가 내게 어리광을 부리고 마냥 어린아이같이 느껴졌었는데 다음날 낮에 다시 만났을 땐 눈을 부릅뜨고 단단하게 일러주었었다.
"순이야. 너를 스스로 항상 소중히 여겨야지. 왜 주변에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널 걱정하게 해."
아직도 이따금 그 언니의 따끔하고도 따뜻했던 말이 한번씩 마음에서 떠오른다.
쑥스럽지만 이 글을 빌려 조용히 몰래 말해본다.
'현 언니 고마워.'
책을 다 읽고 나면 맨 마지막 페이지 양쪽에 사람의 표정 변화를 볼 수 있다.
Before and After 이겠지?
독자가 '좌'처럼 자신의 감정에 압도되지 않고, '우'처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감정을 다룰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란 글쓴이의 마음이 아닐까.
향기로운 커피와, 맛있는 디저트와, 창문 밖으로 보이는 수양버들과 푸른 하늘과 더불어 감미로운 독서를 마쳤다. 그리고 '스스로를 아껴주자고, 난 세상에 한 명뿐인 멋진 사람이라고'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는다.
이 여유와 평온이 허락된 오늘 하루, 5월 29일 수요일에 감사한다.
단 한 번뿐인 나의 소중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