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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이 Jun 13. 2024

대관령 양떼 목장 나들이.

혼자 갔다가 셋이 된 강원도 번개 여행.

무기력하다.

더워진 날씨도 한몫하는 듯 하다.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데, 난 걸렸다. 며칠을 골골대며 쉬었다. 그래서 당일 저녁에 숙소를 예약하고 경기도에서 강원도로 냅다 튄 번개 여행기를 이제야 적는다.


꽤 오래전부터 난 대관령 양떼 목장에 가보고 싶었다.

파란 하늘과 맞닿은 푸른 초원하얗고 몽글몽글한 양 무리 떼를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심심풀이로 지도 앱의 이곳저곳을 찍어보다가 또 양떼 목장을 구경했다.

'혼자 갈 수 있을까?'

근처 숙소는 뭐가 있나 검색해 보았다.

'이 가격이라고?'

평소보다 상당히 저렴한 가격으로 2인실이 당일에 나와있었다.

'갈까? 아니야.'

'그냥 갈까? 아냐, 너무 성급해.'

'지금이라도 갈까? 아니야. 이미 늦었어.'

혼자서 '돼. 안돼.' 20번 정도를 반복 그리고 번복하다가 결국.

에잇-하고 벌떡 일어나 짐을 챙기고 나도 모르게 홀린 듯이 차에 시동을 걸고 있었다.

두시간 반을 차로 달려 도착한 숙소. 이미 밤 10시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이날 낮, 마트에 가서 장을 봤는데, 아마도 이 모스카토가 밤에 바로 마실 운명이었나 보다.

한잔 여유롭게 침대에 앉아 마셔볼까 했으나..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그렇지만 '한 집요'를 단단히 하는 나다.

아주 망한 게 아니고서야 뭐든 손대면 끝을 봐야 잠이 오는 참- 피곤한 성격이다.

얼얼한 손바닥만큼이나 달달한 스파클링 와인을 기분 좋게 홀짝이고서는 잠을 청했다.


아침이 밝았다! 대관령 오늘의 날씨, 맑음.

하룻밤 사이에 강원도로 달려와서 초록색 가득한 저 창밖을 내다보고 있자니 신기하기도 했다.


휴직한지 6개월째에 접어들고 있지만 아직도 내 자유로운 일상이 얼마 되지 않은 짧은 며칠의 일 같고 시간은 참 빠르게도 흘러간다. 신기하면서도 스쳐가는 시간을 꼭 붙잡아두고픈 심정이다.


이렇듯 빨리 지나가는 하루하루인데 '무언가 해볼까?'라는 생각이 든다면 '돼, 안돼.'를 여러 번 자신에게 묻지 말고 일단 하자. 일단 해보자. 그냥 해버리자.


혼자서 '허영만의 백반기행', '고독한 미식가'라도 찍는 것마냥 아침 일찍 숙소 근처로 무작정 나갔다.

일할 때는 아침밥 먹는 건 생각도 잘 안 들었는데, 쉬고 나서부터는 아침에 눈을 뜨면 배가 은근 고프다.

아침 6시부터 문을 여는 식당, 대관령 황태회관 황태1번지.

대관령 특산물에 황태가 있는지는 처음 알게 되었다. 온 동네가 황태요리 전문점이다.

살집 있는 황태가 제멋대로 숭덩숭덩 들어간 순하고 구수한 국물이 비어있는 뱃속으로 녹아들었다.


아침을 먹고 여유롭게 쉬다가 체크아웃, 그리고 다시 더 큰 방으로 체크인을 한다.

부모님이 오고 계시므로.

전날 밤 든 생각에 혼자이니 가족 중 한 명에게는 알려둬야겠다 싶어서 그게 동생이었다. 그런데...

이내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도 양떼 목장에 가보고 싶다고.

다음에 같이 오자고는 했지만 영 마음이 편하지가 않아 결국 내일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목장에 들어갈 때 양들에게 나눠줄 건초 교환 코인을 준다.

그렇게 부모님은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여 강원도에 도착하셨고, 점심 무렵 우리 셋은 양떼 목장에 함께 입장했다. 어렸을 때 함께 못 해봤던 나들이를 요 근래 부모님과 부쩍 많이 해보는 것 같다.

양떼 목장 입구를 지나니,

하늘과 땅 사이에 풀과 나무말고는 눈에 걸릴 것이 하나 없는 자연의 풍경이 펼쳐졌다.

양 무리 떼가 저마다 자리를 옮겨다니며 자유로이 풀을 뜯는다.

양껏 먹은 녀석들은 눈을 감고 풀에 몸을 누인 채 쉬고 있었다.

딱 내가 상상해왔던 양떼 목장의 풍경이 이 사진 한 장에 모두 담겼다.

파란 하늘과 맞닿은 푸른 초원하얗고 몽글몽글한 양 무리 떼.

건초를 손으로 집어 먹여주는데 녀석들 입김이 따뜻했다. 그 숨결에 왠지 모를 뭉클한 기분이 들었다.

내 손에 코를 비비고 건초를 먹겠다고 혀로 핥아대도 순하디 순한 눈망울에 이끌려 계속 풀과 손을 내줄 수 밖에 없었다.

울타리에 고개를 내밀고 쳐다보던 요 녀석이 특히 귀여웠다. 언뜻 보면 씨익- 웃고 있는 듯도 하다.


강문해변. 하늘은 멀리 가고 바다가 내게 다가오는 듯하다.

처음 집을 나설 때의 생각과는 다르게 혼자 강원도에 왔다가 부모님과의 가족여행이 되었다. 혼자만의 여유를 가졌어도 좋았겠지만 양 떼가 보고 싶다는 엄마의 말에 '지금 내게 남는게 시간인데 그 작은 바램을 못 들어드리나' 싶어서 같이 가자고 했다. 결국 잘 한 일인 것 같다. 내가 양 먹이를 줄 때보다 부모님이 아이처럼 웃으며 먹이를 주는 모습을 보는 것이 더 즐거웠다.


요새 지나가는 시간을 많은 에피소드와, 여행과, 풍경으로 채워가는 기분이 든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사진을 많이 찍어둔다. 나중에 '내가 쉴 때 이렇게도 보냈지. 그때 참 잘 쉬고 먹고 돌아다녔구나.'하고 웃으며 이때를 추억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일도, 모레도, 다음 주도.

특별하지 않아도 사진을 많이 찍어야겠다.

소박한 밥 한 끼던, 지나가다 들른 카페에서건, 하다못해 내 발이라도 찍어야겠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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