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조성에서 시작해서 청수사로 마친 원데이 시티투어.
교토의 넷째 날 아침은 전날 사온 편의점 타마고 산도와 레몬 홍차로 가볍게 시작했다.
모두가 상상할 수 있을 법한 타마고 산도의 달달하면서도 짭짤한 맛 그리고 폭신한 식빵이 아침식사로 그만이었다.
그리고 다시 뚜벅뚜벅, 그 전날 마음으로 정해둔 목적지로 향했다.
1600년에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한 이에야스는 일본의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가 되었고, 1603년 초대 쇼군으로서 향후 200여년을 통치할 에도막부 시대를 연다.
그는 이전의 권력자들이 교토에 본거지를 두었던 관습과 달리 에도, 지금의 도쿄에 본거지를 두고 상경을 할 때 머무를 거처로 니조성을 지었다. 스스로 개척했던 에도로 정치적 중심지를 옮겨가면서도 천황이 살던 교토 황궁의 지척에는 그보다 더 크고 화려한 쇼군의 거처를 두었던 점에서 이에야스의 당시 자신감과 권력의 크기를 가늠해볼 수 있다.
본관인 니노마루 궁전으로 들어가기 전에 거쳐야 하는 입구인 당문에서부터 화려함이 느껴진다.
짙은 고동색 나무 기둥과 지붕의 금빛 장식이 마치 사무라이 투구의 장신구처럼 보이기도 한다.
당문의 뒤편에 위치한 니노마루 궁전은 에도시대 쇼군의 거처를 엿볼 수 있는 6개 건물과 33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에서 쇼군의 거실과 침실, 접견실, 가신과 무사 대기실을 꼼꼼히 구경했던 덕분에 근래 읽고 있는 소설 '대망'의 장면 장면이 눈에 선하게 비친다. 사진 촬영이 안 되어서 내부의 생동적이고 아름다웠던 장벽화를 다시 꺼내볼 수 없었던 점만이 유독 아쉽다.
니노마루 궁전 구경을 마치고 나오면 니노마루 정원의 연못을 보면서 숨을 고를 수 있다.
해자(垓字)에서 떼로 노닐던 통통한 잉어들. 교토에서의 평온한 네번째 날 오전이 지나가고 있었다.
니조성 안에 피어있던 철쭉.
어떤 보정도 하지 않고 피어있는 그대로를 찍었는데 쨍한 붉은 빛에 언뜻 은빛으로 보이는 꽃가루가 붙은 꽃술이 그림과도 같았다.
그렇게 교토 안에서의 에도 막부시대 개막의 상징, 니조성의 관람을 마쳤다.
다음 행선지를 향해 구글지도가 알려주는 대로 따라서 움직였다.
터벅터벅, 조용한 주택가 한 가운데로 보이는 소실점을 향해 걸어가본다.
길을 걷다가 점심시간이 가까워 배가 고파오자 그만 나도 모르게 중간으로 새어버렸다.
교자만 많이 시켜서 먹을걸 그랬나 싶을 정도로 겉은 바삭하고 속은 육즙이 풍부했던 야끼교자.
일본의 골목길에는 숨어있는 맛집들이 정말 많아서 아무 곳이나 불쑥 발을 들여보는 모험을 하는 것도 꽤 재미있다.
점심을 먹지 않고 이곳에 도착했더라면 나는 아마 현기증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일본을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간혹 료칸이나 상점, 사찰에 들어가서 느껴보았던 독특한 향내가 있었을 것이다. 항상 같은 듯 다른 듯하면서도 묘한 기분마저 들게 하는 일본의 전통 향내에 나는 매료되어 왔었기에 이곳을 방문해 보았다.
내부의 향기 체험 공간에서 코가 마비될 때까지 실컷 일본의 향기를 맡아볼 수 있었다. 몸에도 물씬 배어드는 무겁고 촉촉하게 공기가 마음을 편안하게 가라앉혀 주었다.
체험을 하고 나면 꼭 기념으로 한두 가지는 사 오고 싶도록 만들어 둔 것 같은 매장. 나 역시도 강한 유혹을 느꼈다. 결국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귀여운 개구리 향로를 고이 한국에 모셔오게 되었다.
여정의 마지막은 이번에도 그랬고 교토에 갈 때마다 빼놓지 않고 가는 곳, 청수사(淸水寺)로 올라가는 길이다.
평일 낮이고 날이 흐린데도 구경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 와중에 어느 대문 너머로 보이는 마이코의 고운 자태를 구경할 수도 있었다.
왜 항상 청수사에 오르는 길에는 갈증을 느끼게 되는지.
짜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이 꼬치를 사먹게 된다. 레몬맛 아이스 큐리를 몇 입에 시원하게 베어 물어 해치우고는.
오이 꼬치만으로는 갈증을 달래기 역부족이었던 탓으로 다시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말았다.
드디어 나의 최애 도시 교토 안에서도 최애 장소인 청수사, 기요미즈데라에 도착했다.
본당에서 내려다보는 경내의 초록색 풍경이 눈을 환하게 밝혀준다, 그리고 이곳의 단풍철을 더욱 고대하게 한다.
각자의 소망을 담아 청수사 소원의 물을 한 입 머금어보는 사람들.
'날씨가 흐려서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청수사에 오면 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음에 위안을 받고 있는 나였다.
교토라는 큰 도시 속에 이런 자연과 사찰이 그대로 보존되어오고 있다는 점이 볼 때마다 놀랍다.
노을이 질 무렵 흐리고 짙은 구름 사이로 해가 얼굴을 내밀었다.
청수사 본당 건물이 다 비어갈 때쯤 보는 풍경이 그렇게 멋지다고들 한다.
약 한 시간을 넘게 한자리에서 운영 종료시간이 임박하기를 기다려 찍은 사진이다.
이것이 이번 여행 교토에서 찍은 최고의 인생 샷이 되었다.
교토로부터 인생 샷을 선물받고 홀가분한 걸음으로 니넨자카 길을 부지런히 걸어내려왔다.
해가 저물어가는 옛 거리 곳곳의 풍경이 청수사 못지 않게 내 발걸음을 붙든다.
교토의 야사카 신사 건물에 주렁주렁 매달린 노란 등과 어두워져가는 하늘 빛의 조화를 감상하며 또 다른 출구를 통해 밖으로 나갔다.
옛것을 뒤로 하고 정면으로 바라보는 현재 교토의 모습이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그대로 호텔로 돌아가긴 아쉬워 지나치는 골목마다 발걸음을 들여보다 만난 '하나미코지도리'.
비록 게이샤를 만나진 못 했지만 영화 속의 한 장면 속을 걷고 있는 기분 만으로도 흡족하다.
다리를 건너가며 보는 가모강의 야경은 그 어느 도시의 마천루에서 만나는 것보다도 훨씬 아름다웠다.
하늘 저편으로 노을 빛이 사라지기 직전에 바라본 가모강과 강가의 풍경, 다리 밑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한참이고 바라보고 듣고 있어도 도무지 질리지가 않았다.
이 여행 중 교토에서 머무는 마지막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하루 온종일 니조성에서 시작해서 훈습관, 청수사, 가모강까지 눈과 귀와, 코까지 호강을 했던 모양인지 이날도 밤이 늦도록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저 가는 시간이 아쉬워 호텔 근처의 이자카야에서 야끼도리에 생맥주 한 잔을 주문해놓고 교토의 마지막 밤을 홀로 붙잡아 놓고 싶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