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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이 Mar 28. 2024

10년 직장인에서 일상인이 되기까지

회사 하루 안 가면 큰일 날 줄 알았던 쫄보의 휴직 

10년 넘게 일해온 직장으로부터 잠시 떨어져 나와 쉬고 있다.


2013년 꿈에 그리던 대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빠르게 지나가버린 10년을 돌아보고 나니,

철없고 늙지 않을 것만 같았던 20대의 나는 여기저기 치이고 지쳐버린 30대 중반의 직장인이 되어 있었다.


전날 못 다 처리한 업무들, 수일의 납기 안에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막막하던 숙제들,

일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다 해도 내게 적대적인 사람들... 이렇듯 제각각의 형태로 날 짓누르던 마음의 짐들.


여기에 손대면 끝을 봐야 하고, 이왕 할 거면 열심히 해야 하고, 남들이 안 하면 나라도 해야 하는 성격까지.


고민에 최적화된 외부환경과 복잡한 내면이 합쳐져서 날 '불안의 늪'에 가둬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슴푸레한 새벽에 깨어버려 지금 생각해 봐야 소용없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들.

그러다가 잔 건지 만 건지.. 아침에 겨우 눈을 뜨고도 '5분만 더 5분만 더' 하면서 침대에 머무르던 무력감.

가서 또 부딪힐 것들과 해야만 할 일들이 떠올라 한숨 쉬며 베개 귀퉁이를 괜스레 뜯던 초조함.


스스로 나 자신더러 나는 하루살이라며 '오늘만 넘기자, 이번주만 보내자'... 그렇게 매일을 버텨왔다.


주위 사람들은 '가끔은 못 한다고도 해‘, '너무 다 잘하지 않아도 돼‘라고 위로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이렇게 열심히 하는 내가 있어서 든든하다며 책임감 강한 내 성격을 이용하는 듯도 했다.


'남들도 이렇게 살까, 회사와 맞지 않는 건 아닐까, 밤마다 퇴근하는 건 내가 비효율적으로 일하는 건 아닐까'

워라밸을 갖고 사는 이들을 부러워도 하고, 그러지 못하는 나 자신을 질책도 했었다.


제일 괴롭고 바쁜 시즌이었던 2023년 9월 어느 날 밤 홀로 남은 사무실,

소등이 되고 캄캄한 가운데 모니터 불빛에 눈이 부시다는 걸 느꼈을 때, 마음의 눈이 번쩍 뜨인 지도 모른다.

 

'아.. 나 이렇게는 끝이 없겠다. 더는 못 하겠다. 내년에도 똑같이 살면 안 되겠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 2023년 12월 말을 기점으로 잠시 일을 내려놓고 쉬게 되었다.

그 뒤 두 달 동안은 내일에 대한 걱정 없이 마음껏 자고, 닥치는 대로 TV를 보고, 가끔 내킬 땐 산책도 하며 정말 원 없이 빈둥거리며 쉬고 있다.


10대엔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으려 외우고, 공부하고, 시험 보고,

20대에도 나중에 남들만큼은 살자며 대학 가고, 학점 따고, 취직하고,

30대의 중간쯤에 들어서야 처음으로 나에게 '쉼'을 선물하게 되었다.  


이제야 비로소 '일상인'이 된 기분을 매일매일 느낀다.

이 시기를 소중히 여기며 일상인의 소소한 즐거움과 작은 행복, 모험들을 기록해보려 한다.


이 '쉼'이 끝나더라도 나는 내 평범한 삶이 제일 소중한 '일상인'으로 쭉 살아갈 것이다.

걱정이 가득하고 불안하고 초조하기만 했던 예전의 내가 파놓았던 구덩이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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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인(日常人) : 특별한 일 없이 평소처럼 하루하루 살아가는 보통의 평범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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