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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꿈

by Anna Mar 29. 2025

내가 깨어난 곳은 수술대 위였다.



팔과 몸통이 

두꺼운 찍찍이 벨트에 묶여 있고 

펑퍼짐한 수술복 아래로는 

써늘한 온도가 느껴졌다. 


수술실에 있는 네 명의 

의사나 간호사들은 

말 한마디 없이

각자 다른 도구를 

하나씩 들고 있었는데


가슴팍 정도에 청록색 천이 가려져 

시선을 차단하고 있음에도,

의사와 간호사들이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몰입한 눈은 

아래쪽 복부를 뚫을 듯이 

쏘아보고 있었다.


작은 메스를 들고서 

살을 갈랐으며,

간호사는 핀셋같이 생긴 도구를 

의사에게 전달했다.


수술 부위 옆으로 

스멀스멀 나오는 피는 

거즈 같은 천으로 닦아졌다.


피가 잘 보이는 

아주 밝은 수술실이었다. 


수술실을 밝히는 

수술용 조명이 있어서 

그들이 내 몸뚱이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듯했다.


조도가 높은 수술용 조명은 

커다랗고 동그란 모양이었다.


떨어지면 

아랫배를 짓이길 듯한 

큰 몸집의 조명은 

오직 한곳을 비추고 있다. 


겨우 눈을 떴으나 

빛을 이겨낼 수 없어 

눈꺼풀을 다시 닫았다.


수술하기에 좋은 밝은 빛은

눈꺼풀 안으로 들어와 

나의 눈동자를 괴롭혔고


수술복 하나를 

거적때기처럼 입은 

나의 몸을 적나라하게 비추어

나를 발가벗겼다.


조명 아래로 모인 

4명의 합이 좋았다. 


달칵하는 

스테인리스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기도 하고 

다 쓴 도구를 

금세 받아주는 날랜 손길이 보인다. 


무언가를 길게 잘라내어 

핀셋으로 고정하여 쥐여준다. 


뒤돌아선 누군가가 

찌지직하며 

붕대나 거즈를 잘라내고 있었다. 


스테인리스 소리를 내던 사람이 

왼손으로 내 아랫배를 누르고 

오른손으로 가만히 

어떤 부분을 잘라낸다. 


끔찍한 기분이 들어 

비명을 질렀지만 

소리가 나지 않는다. 


목구멍은 어떤 

말랑하고 꽉 차는 도구로 

막혀있었다. 


코로 내뱉는 숨이 거칠어졌다. 


의사는 도구를 든 손으로 

의식이 있는 나를 

곁눈질로 확인하였지만 

손에 든 도구로 

무언가 끝까지 자르는 것을 마무리한다. 


소리가 나오지 않는 비명이 계속된다. 


아무도 내 비명에 

관심이 없는 듯 

조명 아래에서 

수술에만 집중해있다. 


눈알이 터져 나올 것 같다. 


감각이 없지만 

사각사각 메스질에 

살이 잘리고 열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참을 수 없는 기분에 

묶여 있는 손을 

이리저리 흔들어 한 손을 빼내었다. 


내 오른손이 

단단한 찍찍이를 

드디어 뜯어낸 것이다. 


오른손에 힘을 주어 

청록색 천 아래로 내려

내 아랫배로 향했다. 


그들의 손을 멈추려고 

메스를 든 손을 

기어코 쳐내었다. 


다시 메스가 돌아오지 않도록 

힘이 없는 손을 

아랫배 위에서 펄럭거렸다. 


그들이 집중하고 있는 

그곳에서 쫓아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휘적거렸다. 


흐릿했던 정신이 

점차 온전해졌다. 


메스를 들고 있던 얼굴이

 짜증으로 일그러졌다. 


붕대를 자르던 사람이 돌아서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귀까지 오는 머리카락이 끝에

컬이 들어간 것이 보였다. 


곱슬머리 그녀가 내 얼굴 옆에 섰다.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이 보였다.


곧 나를 저지하려 하는

저 단호한 눈빛을 절대 잊지 않으리라.


악마 같은 눈의

짧은 머리의 간호사가 

수술용 니트릴 장갑을 낀 채로 

내 코와 입을 막았다. 


힘을 주어 막는 손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며 얼굴을 좌우로 돌려댔다. 


돌려대는 내 얼굴을 멈추려 

단발머리 간호사의 손아귀에 

더 큰 힘이 들어갔다. 


손으로 코와 입을 단단히 막아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산소가 모자라 정신이 혼미해졌다. 


오른손을 위로 올려 

간호사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숨쉬기도 힘든 주제에 

목표물에 제대로

조준이 되었을 리 없었다.


간호사가 주먹을 보고 피했다.


주먹질은 당연히 헛스윙이 되었다.


메스를 든 의사가 

간호사를 한심한 듯 바라보았다. 


빨리 해결을 하라는 어떤 종용에 가까웠다.


약이 오른 단발머리가

두 손으로 내 입을 

완전히 막아버렸다. 


그 순간,

팔에 꽂힌 주삿바늘에 

약물이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단발머리 간호사를 돕는 

지원군이 약물을 주사하고는 

주사기를 들어 올리며

간사한 미소를 짓는다.


단발머리 간호사가

손에 힘을 꽉 준 탓에

벌건 얼굴을 한 채로

지원군을 향해 빙긋 웃어 보인다.


손발이 맞아떨어진 둘의 협동에 

나의 저항은 의미 없는 발악이 되었다.


눈을 부시게 했던 수술실 조명이 

어지러움에 이리저리 흔들려 보였다.


죽기 싫어 

이를 악물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발버둥을 쳤다. 


흔들 수 있는 모든 부분을 

다 흔들어 그들로부터 

나를 지키려 했다. 


숨을 쉬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버둥거리는 통에 

머리가 어지러운 것인지 

나를 죽이려 하는 약물

때문인 것인지 


점차 의식은 희미해져갔다.



정신을 차리려 하면 할수록 

수술실은 어두워지고 

온 세상이 까맣게 되었다. 


그 순간이었다!




눈이 번쩍 떠졌다. 



"히이 이익." 

급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높은 음정의 들숨이었다.


새벽 6시 5분.


해가 뜨지 않아 깜깜한 시간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 집. 내 침대였다.


포근한 내 이불의 

익숙한 감촉이 

마음을 안정시켜주었다.


이불을 걷어 몸을 확인했다.


내 아랫배는 무사했다. 


다행히 메스 자국도 

주사 자국도 없었다. 


천천히 호흡을 했다.

긴장해서 움츠렸던 몸이

돌아오기까지 계속해서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수술을 하는 꿈이라니.


내 눈앞에서 창자가 잘리는 

끔찍한 수술이라니.


비명을 질러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꿈.

수술대에 누워 의식이 돌아온 끔찍한 꿈.

섬뜩한 기운에 번쩍 정신이 들었던 꿈.


의미도 모르겠고 기분 나쁜 느낌만 남아있다.


하필이면 꿈의 절정에서 깨어버려

찝찝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어버렸다.


이것은, 개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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