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다는 감정은 어느 곳에서나 느끼지만 딱히 긍정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왜 그런지 알지 못하는 감정이 튀어나와 종 잡을 수 없던 나는 그런 스스로가 낯설었다. 알게 모르게 나를파악하는 시간에도 꽤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함이 피곤했던 것 같다. 그래서 타인은 더욱 낯설게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온전히 알 수는 없으니, 방향을 돌려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해 온 신경을 집중하기 시작한다. 이렇듯 오랜 기간 긴장 상태를 유지했던 내가 비로소 낯설다는 감정에 제대로 집중하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익숙한 패턴에 물든 나도 때로는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이런 때는 평소 하지 않았던 행동을 하게 된다. 충동적으로 서울행 버스표를 예매하고 사촌 언니와 약속을 잡았다. 몇 년째 미뤘던 만남을 성사하고, 가보지 않았던 장소에 가는 것. 단 이틀 동안의 여정에서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얼마만이야, 소소 네가 연락했을 때 진짜 놀랐어!"
분명 가족인데도 모르는 부분이 많다. 어떤 걸 좋아하는지, 요즘 어떤 취미를 가지고 있는지, 흘러간 시간 동안 변화된 생각이 무엇인지 다양한 이야기가 오간다. 끊이지 않던 대화는 영화를 보는 중에도 계속되었다.
어느덧 주인공의 감정에 몰입하여 슬픔 그 이상의 수치심이라는 것이 내 속에 몰려왔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항아리에 눈물이 아닌, 비통함이 가득 찬 느낌. 나는 그 심정을 ‘비참하다’라는 말로 대신하여 내뱉었다.
"아.. 그렇구나, '비참하다'라는 표현이 있었지?"
언니가 매우 놀랍다는 표정을 짓고서는 연신 신기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어떻게 그렇게 표현할 수가 있지? 진짜 신기하다."
아무리 슬픈 장면을 봐도 눈물이 안 나온다는 언니에게 이런 표현은 낯설게 다가온 것 같았다.
문득 나 또한 다른 이에게 '낯선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어쩌면 낯설다는 감정에서 하나의 면만 봐왔던 건 아닌지도. 낯설다는 건 더 큰 새로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고, 신선함을 전달해 주기도 한다는 것을. 낯설기에 알아갈 수 있는 기쁨을 누리고, 또 다른 이면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어쩌면 무기력한 하루에서 간절히 찾아왔던 건 바로 낯설다는 감정일 텐데도.
한 단어 안에 감춰진 의미가 이리도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쩐지 그 단어가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적어도 낯설다는 감정에 전처럼 버거울 정도의 무게를 부여하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여전히 어려울 수 있지만, 서서히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보면 되지 않을까. 낯선 나를 더 알아가고, 낯선 장소를 관찰해 보고, 낯선 상대를 진심으로 궁금해한다면 현재를 더 즐길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