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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소소 Aug 21. 2024

언젠가는 그리워질 순간

늘 그렇듯 변함없는 혹은 평범한 하루. 

이와 같은 날들모여 나의 일상이 된다. 일과를 이루던 삶의 당연한 순간은 이런 모습이었다. 


종종 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아빠는 할머니를 뒤이은 집안의 요리사이다. 하지만 늘 메뉴 고민을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런 아빠에게 효자 메뉴가 있었으니 바로 계란찜이다. 많은 재료와 수고를 거치지 않아도 만들어지는 계란찜. 그 맛이 남달랐는지 아빠 요리가 맘에 안 든다는 엄마도 맛있게 먹곤 했다. 어느 날은 생전 요리하지 않던 엄마가 혼자 계란찜을 만들다가 뚝배기를 태웠다. 하필 모두가 외출한 점심시간에 어제 맛본 계란찜을 먹고 싶었나 보다. 덩그러니 탄 뚝배기가 놓인 걸 보고 아빠가 피식 웃었다. 

"네 엄마 이거 태운 거 봐라. 오늘 저녁은 계란찜으로 해야겠네."

침묵이 익숙한 둘 사이를 이어주는 건, 다른 어떤 것도 아닌 평범한 계란찜이었으려나. 


점차 된장찌개 향이 퍼져나갈 때쯤 할머니가 출동한다. 이제 잔소리 없이도 된장찌개 하나쯤은 뚝딱이라는 아빠를 할머니는 언제나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아빠는 할머니가 오는 순간부터 영락없는 아들의 모습이 된다. 어쩌다 김치 하나를 흘리면 칠칠치 못하다며 혼나기도 하고, 이렇게 하는 게 아니라며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커지고 만다. 할머니표 가지나물은 매일 먹어도 줄지 않지만, 그러면서도 가지 사 오기를 멈추지 않는다. 손녀가 제일 좋아하는 가지나물이기에 매번 하나하나 무치기를 반복하는 우리 할머니였다. 

"엄마, 파마하니까 얼굴이 왜 이렇게 동그래?"

파마를 한 할머니를 놀리는 65세 아빠. 웃지 말라며 손사래를 치는 89세 할머니. 어쩌면 이 일상은 아직 독립하지 않은 내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자, 일상일 테다.  


하지만 늘 접하던 일상도 그리워지는 때가 있었다. 함께한다는 건 무뎌지는 속도가 빠르다. 가까이 있을 땐 잘 보이지 않다가도 혼자가 되면 알 수 있는 가치였다. 여태껏 누려온 당연한 순간은 자취하던 때 그리움으로 바뀌어 기억되었다. 배는 고프고 돈은 없던 대학생 시절, 삼각김밥 하나를 먹는 것조차 아까워한 적이 많다. 누군가 차려준 밥을 편히 먹을 수 있음이 당연한 순간이 아님을 느꼈던 날이다. 그때의 나는 그리움에 이끌려 한 식당을 찾았다. 큰맘 먹고 들어갔던 오르막길 국숫집은 할머니 한 분이 운영하시는 곳이었다. 

"사장님, 밥은 드셨어요?" 

"라면 하나 먹었지."

"저는 이렇게 맛있는 거 주셨는데.."

숫기가 없는 내가 굳이 대화를 시도했던 이유는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다. 집에 있는 할머니가 생각나서, 시시콜콜한 저녁 시간이 그리워서 말이다. 


생각해 보면 이 또한 언젠가는 그리워질 순간이다. 아빠의 계란찜과 할머니의 가지나물도. 그렇다고 마냥 슬프지는 않다. 오히려 당연한 순간이 없다는 사실에 감사할 수 있다. 먼 훗날 이 순간을 기억하면 분명 살아갈 힘이 날 것 같아서. 어쩌면 나도 내리받은 사랑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래서 최선을 다해 누려본다. 그런 의미에서 할머니를 꽉 끌어안아 보기도 한다.

"내가 너 어렸을 때 하도 안으니까, 네가 다음부터 따로 나가서 잤어."

"아냐 할머니, 나 안 그랬을 건데"

호탕한 그 목소리를 마음에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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