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엄마, 엄마와 속 얘기를 터놓던 날을 기억해.

어쩌면 그런 날은 살면서 처음이었는데도 전혀 어색하거나, 이상하지 않았어. 아마 엄마가 평생을 지고 온 짐이 버겁단 걸 알고 있어서 그랬는지도 몰라. 그래서 아무리 떠올려도 본 적이 없던 엄마의 눈물이 낯설지 않았어.      

엄마가 그랬지, 내가 너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냐고. 사실 그랬어. 그래서 먼저 말을 하지 않은 날이 많아. 나의 상황도, 감정도, 엄마는 나를 궁금해하지 않을 거라고 삐뚤어진 마음을 품고 있었어. 먼저 다가서면 되는걸, 쓸데없는 자존심으로 벽을 세우고만 있었는지도 모르지. 아마 이게 내가 눈물이 났던 이유일 거야. 안 그래도 눈물이 많아서 또 울고 싶지는 않았거든. 그런데 여태껏 그렇게 느껴왔던 엄마가 나를 위로해 주는 말이 너무도 좋아서 말이야. 문득 그때가 생각났어. 엄마가 잔소리했던 날. 방 청소를 왜 안 하는지, 새 수납장을 놓자던지, 예쁜 소품도 보러 가자던 말이 정말 듣기 좋더라. 애정 어린 소리를 듣다 보니 또 생각에 잠겼어. 어린 시절의 나는 엄마가 주는 섬세함을 바랐던 걸 수도 있겠다 하고,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드니 하염없이 슬픈 거야. 그 시간 동안 엄마는 또 다른 외로움을 감당하고 있었을 테니까. 옛날에도 그래 주지 그랬냐는 나의 말에 가슴이 아팠을 테니까. 그러니 엄마는 미안해하지 마. 최선을 다해 각자의 역할을 해냈던 부모니까. 우리 모두 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니까. 그러니 탓하지도, 미안해하지도 마.     

 

오히려 미안한 건 나라는 걸. 갈수록 걸리는 게 많다는 걸 알고 있어? 중고 사이트에서 무엇을 사야 할지 고민하는 엄마가 신경 쓰여. 한편으로는 아직도 딸들 걱정만 하는 엄마가 안쓰러워. 가끔 하소연을 하던 엄마가 때로는 너무 무거워서 피하고 싶었어. 그런데 이제야 조금 알게 된 거야. 엄마가 그토록 했던 말을 이해하게 된 거야. 그럼 엄마는 이런 이야기를 누구한테 해야 하냐는 그 말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 거야. 그런데도 막상 내뱉는 말은 모질었던 적이 많았지. 그런데 엄마, 사실 그럴 때마다 나는 역시 엄마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어. 그 증거로 표현하지 못할 서운함을 감추며 뒤늦은 사과를 내밀던 나이니까. 지나온 시간을 바꾸기보다 그저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는 게 좋다고 다짐한 나이니까. 허물 수 없을 것 같던 벽을 부순 건, 늘 그랬듯 아주 작은 용기였으니까.      

엄마, 엄마도 울고 싶은 날이 많았던 거지? 헤아릴 수 없이 외로운 날을 견뎌왔단 걸 알아. 하지만 늘 생각해 왔던 말을 뱉기에는 표현이 서툴러. 그런 나이기에 그나마 가장 솔직해질 방법으로 전할까 해. 그냥 엄마를 사랑한다고, 항상 그래왔다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