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평가해 왔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나와 타인을 평가하는 일은 익숙하게 생겨났다. 고착되어 정해진 사회적 기준, 또는 그 방향에 부합하지 못하면 자신을 낮춰 본다. 어떠한 의문 없이 내 몸을 옭아맨 틀을 깨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걸쳐온 기준이었으니. 그렇게 다른 사람도 나를 평가할 것이라는 시선 아래, 자신을 단순한 경쟁의 도구로 여겼다.
때때로 찾아오는 고난에 온 마음을 쏟았다. 문제는 준비 없이 만난 소나기와 같아서 나를 한 곳에 묶어두게 했다. 멀리 바라보기에는, 해결되지 못한 눈앞의 상황이 크게만 보였던 때였다. 내리는 비에 금방이라도 쓸려갈 것 같은 자신. 힘차게 내딛기에는, 멀리 나아갈만한 확신이 없었던 자신. 그렇기에 조금은 견고한 마음을 가지고 싶었다. 저항 없이 받아들여진 관습이 있다면 다시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흔들리지 않는 주관을 얻어내고 싶던 나였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비우기도 해야 한다는 걸 비로소 깨달은 시기다. 부끄럽게도, 늘 내 머리를 채우고 있던 건 자존심이었다. ‘그래도 이 나이에 이 정도는 해야지.’라는 엉뚱한 고집이 마음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었다. 뭐 하나 포기하고 싶지도, 놓고 싶지도 않아 붙잡고만 있던 자존심을 내려놓기로 한다. 이내 한결 편해진 기분으로 얻을 수 있던 건 또 다른 형태의 가치이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걸 아는 것과 표현하는 것의 가치. 노력을 실현하는 순간을 기대하는 것과 바라게 되는 가치. 그 과정에서 나는 경쟁의 도구가 아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였다.
자신을 인정해 주는 게 그리도 어려웠을지 생각한다. 다른 이의 인정을 바란 내가 스스로를 인정하는 일은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도. 문득 이런 굴레에 빠질 때면 내 속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마냥 자신에게 채찍질만 하는 것 같던, 나의 목소리였다. 그럼에도 너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걸 원해왔는지 알고 있었다고.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이내 끝없이 쫓아오고 두드리고 있었다고, 그런 나를 꽤 애정 있게 바라봐왔다는 뜻밖의 사실을 마주쳤다. 그래도 나는,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니 내가 가진 것들을 충분히 바라보고 싶다. 그렇게 지켜보고 겪어보며 무르익어가고 싶다. 삶의 방식을 찾아내는 것. 다른 어떤 기준이 아닌, 자신의 가치관을 성립하는 것. 이렇게 내게 주어진 두 가치를 기쁘게 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