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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소소 Sep 11. 2024

옛것의 온기

어느덧 지난 추억을 떠올리고는 흘러간 시간을 체감하게 되는 곳. 내게 터미널은 그런 곳이었다. 그날따라 진한 향수를 느꼈던 건, 늘 변함없다고 생각한 터미널 풍경이 유독 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토요일 저녁, D군을 보기 위해 급히 시외버스에 올라탔다. 장거리가 된 후 서로의 지역을 왔다 갔다 하니, 버스 기사님의 얼굴도 꽤 반가워졌다. 함께한 추억이 짙어질수록 생소했던 그의 본가도 친근해진 듯했다.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기까지 주어진 시간은 60분. 창밖을 바라보며 멍을 때리다가, 핸드폰 사진첩을 연다. 왜인지 터미널을 거쳐 버스를 타면 그렇게나 추억여행이 하고 싶다. 이미 수백 번을 본 사진인데도 그땐 그랬지, 하며 기억을 되새기곤 한다. 덧붙여 세월의 흐름을 다시 느끼게 된달까. 아마 과거의 모습이 아직 선명하게 남아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안녕하세요, 청주 20장 주세요.”

7년 전, 과제가 빼곡히 든 가방을 이고 새벽마다 향했던 터미널의 풍경이 눈에 선하다. 비교적 한산했던 새벽. 9시 수업을 듣기 위해 매 월초 첫차 표를 끊는 내 모습을, 매표소 아주머니께서 정겹게 보셨다.

“학교에 가나 보네요? 아이고 힘들겠다.”     


여전히 터미널 위치는 같지만, 공간의 분위기는 다르다. 한참도 더 된 기억 속에서 오갔던 두 마디가 맘속에 남아있는지, 그때와 지금의 공기는 흡사 다르게 느껴졌다. 기계 사용이 어려운 어르신분들을 위해 매표소에는 단 한 분만이 계신다. 이제 사람들이 나열된 무인 발매기 앞에 서 있는 모습은 당연해졌다. 나 역시 핸드폰 하나로 예매를 하는 일이 더 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나도 꽤 오랫동안 아날로그 방식을 추구했다. 번거롭지만 원래 쓰던 방법이 편하다는 마인드였다. 몇 년 전까지는 교통카드를 들고 다녔는데, 충전할 때마다 현금이 없어 고생하는 일이 잦았다. 그런 내 모습이 답답했는지 보다 못한 친구가 핸드폰 앱을 알려주기도 했다. 쉽고 빠른 길은 점차 을 가볍게 만들어주지, 뭔가 텅 빈 느낌은 지울 수 없다. 할 일이 덜어지는 만큼 손때 묻은 물건도 사라져 감을 느껴서일까.


부모님의 지나간 세월은 편리함을 누릴수록 눈에 띄었다. 얼마 전에는 엄마가 티브이로 유튜브 보는 법을 물어본 적이 있다. 나에겐 너무 쉽고 당연한 정보가 부모님에게는 새로움의 연속으로 다가온 듯했다. 여전한 ‘아버지’인 나의 아빠도 이제는 자신을 늙은 할아버지로 지칭한다. 어느새 키오스크도, 인터넷 주문도 대신해 주는 딸을 부모님은 참 다행이라고 하신다. 시간이 지나면 나에게 있는 편리함도 옛것으로 지나가 버릴까.  모르는 것이 생겨 가슴이 먹먹할 때가 올까.

    

옛것의 온기를 기억해 내고 변해버린 세월을 인정하게 되는 곳. 버스 여정은 그랬다. 이내 책 한 권과 일기장을 꺼내놓고 마음 한 줄을 적었. 남아있는 손때를 쉬이 여기지 않게 마저 두 줄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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