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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필피 Sep 17. 2024

주여니(6)

없는 아이 

회신은 오지 않았다.


최은영은 바깥에서 발생한 일을 집으로 가지고 오지 않았다. 괴롭히는 것도 학교에서만, 심지어 말을 거는 것도 학교에서만 했다. 오뎅 국물을 뒤집어쓴 날도 집에서는 조용했다. 주연과 같이 떡볶이를 찍어 먹던 그 아이가 누군지 정체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원래 그런 애였다. 혹시 준희를 찾은 걸까. 불안이 엄습하지만 은영에게 물어볼 수 없었다. 같은 집, 같은 방을 나누어 쓰는 동거인으로서 집 안에서 서로 말을 섞는 건 암묵적인 금기 같은 거였다. 그 금기를 깨었다간 행여 저쪽이 먼저 준희의 정체를 궁금해할까 싶어 감히 그러지 못했다.


만화책방 카운터에 앉아 저녁밥을 시켜 먹은 주연이 유리문 밖으로 빈 그릇을 내어놓을 때였다. 따르릉따르릉. 전화기가 울렸다. 주연은 잽싸게 뛰어가 수화기를 들었다.


“오거리 도서 대여점입니다.”

“내다.”


초등학교 동창이자 가게 사장님의 첫째 딸 양민정이었다.


“인평중학교에 다니는 아는 애들한테 다 물어봤는데 ‘하준희’라는 아아는 없단다.”

“뭐-어?”


그럴 리가.


“이름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가?”

“뭐시라? 하, 준, 희, 맞다.”


음정을 이탈한 주연의 목소리가 천장을 찌른다.


“어, 없다고? 진짜? 참말로?”

“가가 진짜 인평중학교 다닌다고 하드나?”

“어. 교복 입은 것도 봤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이나.


“지가 지 입으로 3학년 3반이라고 했다. 내한테….”

“일단 3반에는 하 씨가 없고. 하 씨는 2반에 하명석이라는 아아랑 8반에 하경희라는 애밖에 없단다. 혹시 몰라서 1학년이랑 2학년도 다 알아봤는데, 아무튼 하준희라는 애는 없다. 니가 이름을 잘못 알고 있는 거 같은데? 명찰은 봤나?”


누가 학교 밖에서 명찰을 달고 다녀.


“아니. 명찰은 못 봤는데….”

“가 집에 전화는 해 봤나?”

“삐삐쳐도 연락이 안 와서 당근 해 봤지. 가 엄마가 받더라.”

“니가 뭐라고 했는데?”

“준희 있어요? 하준희 있어요? …했지.”

“그라니까…?”

“학원 갔다드라.”


그러고 보니 학원에 안 다닌다고 했던 거 같은데. 눈앞이 새하얘진 주연을 현실로 끌고 온 건 책을 반납하러 온 초등학생이었다.


“누나, 책 갖고 왔어요.”


흐리멍덩하던 초점이 서서히 돌아왔다.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잠시 서 있었다. 양민정의 말이 진짜라면 준희는 거짓말을 한 게 된다. 걔 엄마가 전화를 받고 잘못 걸었다고 하지 않았으니 이름은 맞고, 학교가 틀린 건가? 준희가 학교 이름을 속인 거라면 교복도, 3학년 3반도 다 거짓말이 된다.

도대체 왜?

왜 거짓말을 했어?

다니지도 않는 학교의 교복을 입을 이유는 또 뭐란 말인가?

게다가….


니 내 아나?”

심주연.”

맞는데니는 누군데?”

니랑 같은 반.”

?”

니가 자퇴 안 했으면니랑 같은 반하준희.”

하준희?”

내 이름.”


하준희는 그때 분명 주연을 알고 있었다. 자퇴한 사실도 모르지 않았다. 정말 거짓말이라면….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알은체한 이유가 대체 뭐란 말인가.     


오후 3시가 훌쩍 넘어 오래전 만화책방이 있던 그 오거리로 갔다. 어느새 비가 그쳤다. 주연은 우산을 접으며 가게를 눈에 담았다. ‘오거리 도서 대여점’이라고 적혔던 간판은 없다. 대신 ‘해피 피자’라고 적힌 꽤 감성적인 목제 양각 간판이 걸렸다. 주연은 내부가 보이는 유리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가기 전에 우산을 탈탈 털었다. 달라진 건 간판만이 아니다. 2중, 3중으로 되어 있던 책장이 전부 빠지고 그 자리에 커다란 메뉴판이 자리했다. 주연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공간을 둘러보며 우산을 우산 통에 찔러 넣었다.


“왔나?”


앞치마를 맨 양민정이 반색하며 주방에서 나왔다.


“예전에 용돈 모아서 피자헛 갔던 거 기억해?”

“하모. 기억하제.”


그나마 좋았던 기억은 국민학교였고 초등학교였다. 양민정은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뀌고 만났다. 5학년 2반. 어울려 노는 무리가 달랐던 둘은 도시락 반찬을 나누어 먹었던 적이 없었다. 하지만 6학년이 되고 수련회에 참가하지 않은 학생들만 2박3일 오전 수업 겸 영화 감상을 했는데 그때 반이 다른 민정을 다시 만날 기회가 생기면서 조금씩, 천천히 친해졌다.


교통비, 숙박비, 식비를 포함한 수련회비는 4만 5천 원이었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 심진섭을 대신해 김순옥이 하얀 봉투에 여행비를 넣어 호치키스로 봉했다. 보호자 동의서에도 동그라미를 그리고 서명하고 빨간 도장을 꾹, 찍어 책가방에 고이 넣어주었다.


“댕기온나. 용돈은 출발하는 날 아침에 줄끄마.”


다음 날 학교에 간 주연이 책가방을 열었다. 돈이 든 봉투와 보호자 동의서를 담임 선생님께 제출하려 했다. 한데, 호치키스가 뜯긴 봉투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김순옥이 고이 접어준 동의서는 가로로 세로로 찢겨 있었다. 이병진의 짓이었다.


주연은 그래서 수련회에 가지 못했다. 그리고 양민정이 불참했던 이유는 어린 쌍둥이 남동생들 때문이었다. 장녀는 살림 밑천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맞벌이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민정은 동생들의 누나이자 보호자였다. 평일 2박3일이나 집을 비워버리면 혼자 눈곱도 못 떼는 남동생들은 어쩌냐고 해서, 그래서, 못 갔다.


“어여 앉아라. 피자헛에서 먹었던 그 맛 비스무리하게 한 판 구워 올끄마. 같이 묵자.”


어느새 훌쩍 커버린 양민정이 환하게 웃으며 의자를 뺐다.


잠시 뒤, 햄과 파인애플, 올리브가 듬뿍 들어간 하와이안 피자가 테이블에 올려졌다. 주연은 오랜만에 맛보는 그 맛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정말 맛있다.”


점심과 저녁 시간 사이라서 그런지 가게는 한가했다. 알바생은 5시에 온다고 했다. 주연과 마주 보고 앉은 민정이 나직이 운을 뗀다.


“발견된 시체가 하준희인가 뭔가 하는 그 애라고 생각하는 거제?”


주연은 냅킨으로 입가를 닦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혹시나 하고.”


해저터널에서 감쪽같이 사라졌으니까.


“그런데 너도 그렇게 생각해서 나한테 DM 보낸 거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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