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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부티 Mar 19. 2024

사랑의 무적함

사랑의 모든 힘에 대하여


 이 글은 사랑이 넘쳐흐르는 사람이 자신 안의 거대한 사랑의 크기를 인지하지 못해 이제껏 사랑이 필요 없다고, 사랑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다, 한순간에 사랑의 힘을 깨달아버리고 사랑 앞에 무력해진 채 쓰는 글이다.   


 나는 평생 사랑이 뭔지 모르고 살았다. 누군가를 보고 가슴 설레는 일도, 눈 마주치고 대화하고 싶은 일도, 자꾸만 말을 걸고 싶고 보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그의 얼굴로 나의 시선이 향하여 마음이 들킬까 조마조마하는 일도 나에게는 한 번도 없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사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사랑은 내게 연인과의 사랑은 아니었다.


  어차피 이별이 정해져 있는 만남을 왜 하는지 늘 의문이었고 영화 보는 것을, 밥 먹는 것을 시간을 내서 사랑하는 이와 하기엔 이미 내 삶은 충분했고 행복했고 바빴다. 나의 이야기를 시시콜콜하게 하고 그의 삶을 내 안에 들여 함께 바라봐주는 일의 필요성이 내게는 누구보다 필요했으면서 또 동시에 필요치 않았다. 그건 나의 착각이었음을 이제는 고백한다.

 나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다. 그리고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다. 내 안에 거대하게 포진해 있는 사랑의 크기와 너비만큼이나 사랑받음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내 삶은 태어난 이후 대부분의 시간 동안 늘 외롭고 항상 혼자였다. 내게 부모의 사랑에 대한 기억은 없고, 형제자매와의 유대감 또한 없다. 친구와 함께하는 기쁨은 알지만 그것의 부재 또한 존재하며 그런 경험의 연속이 나를 늘 지게 했다. 사람 앞에서, 내 친절 앞에서, 선의 앞에서, 함께 만들어가는 관계 앞에서. 

 나의 큰 사랑은 나를 아프게 했고 내 사랑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늘 가해지는 관계의 고통에 정확히 말하면, 나는 내 안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나의 한없이 따뜻한 마음과 상대를 향해 가는 시선의 방향과 손길이 내가 사랑이 많아서, 누군가와 시간을 함께 경험하고 싶어서, 내 마음의 크기만큼이나 상대의 나를 향한 마음도 그만큼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라서, 감정을 공유하고 함께 나누며 더 풍부해지고 싶어서인 줄 알아채지 못했다. 그 사랑의 깊이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나는 더 무뎌져만 갔고, 그래서 내가 왜 이렇게 힘들고 고달픈지 이유를 찾으면서도 그 시간이 너무나 거대해져서 그런 고립의 감정과 혼자라는 감각에 익숙해져 갔다.


  일을 하고 혼자 살게 되면서 사람들이 왜 그토록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며 가정을 이루는지에 대해 이전보다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열다섯 살,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하고 비혼을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결혼을 굳이 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살아오며, 왜 어떤 시기가 되면 사람들이 늘 비슷한 선택을 하고 같은 궤도를 그리며 살아가는지 의문이었다. 자신의 입시를 위해 그토록 치열하게 살아왔으면서 어째서 잠시 숨을 돌리고는 바로 자녀의 입시를 위해 치열하게 살아내는 선택을 하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입시의 경쟁에서 생존하고, 다시 취업을 위해 입시보다 더한 사투를 하고 이제야 아주 잠깐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게 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며 늘어나는 역할을 감당하는 선택이, 자식을 낳아 그 아이의 성공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삶과 경쟁에 스스로 뛰어드는 선택이 나로서는 이상했다. 어떤 시기가 되면 같은 선택을 하고 비슷한 궤도를 그리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게 유독 한국 사회에서 더 규정된 느낌을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감각했다. 그리고 그 궤도를 그리며 살지 않겠다고 아주 오래전 나는 굳게 결심하고 계속 지켜왔다.


 일을 시작하고 사회생활을 하며 삶의 또 다른 경험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그 시기를 통과하며 홀로 지내게 되며 나는 그 비슷한 선택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곱씹게 되었다. 사람들은 왜 가정을 이룰까, 결혼을 할까. 여전히 출산과 양육에 관해서 내 생각과 선택은 변함이 없지만 어떤 시기에 반복되어 오는 사람들의 선택에 대해서 아주 많이 생각했다. 내게 여전히 아이를 낳는 사람들은 삶이 힘들어 보지 않았던 사람들 같지만 그 선택을 하게 하는 힘과 근원에 대해 오래 곱씹었다.

 나도 사람이면서 사람이 싫어지고 미워지는 때가 있다. 사람과 함께이고 싶지 않아 사람으로부터 가능하면 멀리 떨어지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지불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사람이기에 결코 혼자 평생을 살 수 없다는 것을 매 순간 절감하기에 나는 다시 사회로, 집단으로, 사람들 틈으로 돌아온다. 혼자서는 그 무수한 화살을 뚫고 생의 끝까지 걸어갈 수 없다는 것을 나이가 한 살 한 살 더해질수록 더 실감한다. 사람들이 왜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지, 단순히 만남을 넘어 사귐의 관계로, 둘만의 다정으로 나아가길 원하는지 알게 된다.


 그러면서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해서, 감정을 나누고 공유하는 충만에 대해서,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는 기쁨에 대해서 마음이 열렸다. 그리고 내 안에 힘듦은 내 안의 사랑이 컸기 때문이었음을 인지했다. 그렇다. 나는 사랑이 많고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이다. 그 사랑을 표현하고 나누고 함께 유영하며 더욱 그 파동이 커지기를 누구보다 바라는 사람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나는 한결 편안하고, 여전히 내게 어려움일지라도 비로소 나를 향한 사랑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으며 나의 다정을 미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나를 더없이 자유롭게 한다.


  이건 그렇게 시작된 나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자책과 후회와 충만과 환희가 난무한 아프고도 찬란한 나의 사랑의 역사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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