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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서제미 Sep 26. 2024

출퇴근할 곳만 있다면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는 건

[2024년 9월 24일 화요일]


꿀잠을 자고 일어난 새벽, 책장을 뒤졌다.  


혹시나 정리해 놓은 자료들이 있을까 기대를 하며,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책들 사이를 꼼꼼히 살폈다.


책장 어디에도 파일은 없었다.  기억의 오류일까?  '엊그제 일도 바로 잊어버리는 자료들이 있을 없지'라는 생각과 '아니야 어딘가에 반드시 보관해 두었을 거야'라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책장 밑 서랍을 열었다.  앨범들을 차곡차곡 쟁여놓은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 째에도 없었다.  마지막 서랍만 남았다.  이곳에 없으면 없는 건데, 제발 여기에 있어라. 어느새 기도를 하고 있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여섯 번째 마지막 서랍문을 열었다.

있었다.  찾고 있던 파일들이.


'있었구나, 있었어. 어디 안 가고 있어 줘서 고마워' 


2000년부터 각종 매체에 기고했던 칼럼과 에세이들을 모아 놓은 자료들이 5개 파일에 들어 있었다.

파일 안에 하나씩 들어 있는 것도 있었고, 미처 정리가 안 된 것들은 켜켜이 쟁여진 채로 있었다.


그 글 안에는 워킹맘이었던 내 모습과 다양한 구직자들의 사연, 고군분투하는 삶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20년이 넘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글이 기록이 되어 나에게 온 순간이었다.   


새벽에 그 글들을 들여다보는데, 가슴이 먹먹했다.  그 안에는 사람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과 일에 대한 열정, 꾸밈없는 진정성이 녹아 있었다.


내 젊은 날의 초상이 60살인 나에게 진심을 전하고 있었다.


"너 그동안 이렇게 살았구나.  그 누구보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순간,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30대, 40대에 썼던 글들을 읽으며 그때는 60살이 되어 이 글을 읽을 거라는 생각을 했을까?  꿈에도 못했을 거다.  그때 60살은 나에게 너무 나이였으니 말이다. 


이제 그 나이가 되어 20년 전에 내가 기고했던 글들을 다시 읽는다.


구직자들을 상담하면서 직업상담 현장에서 느낀 생생한 사례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건 20년 전 기록인데

지금에도 여전히 진행 중이잖아.  거의 변한 것이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취업에 대한 청년들의 고민도, 고령자에 대한 대책도.


단지 변한 것은 그때는 2000년대였고 지금은 2024년이라는 세월만 흘렀을 뿐이었다. 


그 시절은 가고 이제 60대가 되어 그때 써놓은 글들을 정리하고 있다.


그 글들이 이제는 기록이 되리라.


그때 글을 쓰지 않았다면 이 기록들이 남아 있지 않았겠지.


글이 기록이 되는 순간을 선물처럼 받은 새벽.


문을 연다. 기록의 문을.




[2017년 12월 19일 수요일, 일간지 기고문]



"월급은 안 받아도 좋아요. 그저 아침저녁으로 출퇴근할 곳만 있으면 좋겠어요"


여전히 일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하고 의욕도 넘치는 데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설 자리가 없다는 한 어르신의 하소연은 한 시간이 넘게 계속되었다.


올 8월에 정년퇴직을 한 이 어르신(63)은 그동안 단 한 번도 은퇴 이후에 어떻게 살 것인 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고령자 직업상담을 하다 보면 공통적인 답변이 60세 이후에 어떤 일을 할 것인 지 직업설계를 해 본 적이 없다는 거다.



일없는 노후, 하루가 일 년


"하루 벌어 하루 살기도 힘들었는디 어떻게 노후에 할 일까지 생각했것소"


"연금도 있고 모아 놓은 재산도 넉넉한데 그저 쉴 생각만 했지요"


경제력이 없는 어르신이나 경제력이 있는 어르신이나 한결같이 하는 말이 노후가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는 거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부터 대책을 세워놓는 건데 일이 없으니까 하루 해가 어찌나 긴 지.


하루가 일 년 같다며 심정을 토로하는 어르신들을 상담하면서 '생애진로지도'에 대한 필요성을 매번 절실하게 느낀다.


은퇴 이후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고령자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젊어서부터 체계적으로 차근차근 준비를 해야 한다.


그 필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구직자들을 만나면 직업설계를 단기적으로 끝내지 말고 장기적인 계획까지 세우라고 한다.


그러면 대다수 사람들은 "퇴직하면 해외여행이나 다니면서 편히 살아야지 일은 무슨 일이요" 혹은

"지금 살기도 빠듯한 데 어떻게 노후까지 생각해요.  노후는 그때가 되면 어떻게 되겠죠"라는 답변을 한다.


하지만 막상 나이가 들면 달라진다. 우아하고 여유로운 노년을 보낼 수 있으리라 여겼던 희망은 말 그대로 희망사항으로 끝나고 남은 것은 남루한 일상과 초라한 현실뿐이다.



젊어서부터 장기적인 직업설계를 해놔야


통계청이 발표한 2006년 생명표 조사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 남자의 평균 수명은 75.7세, 여자는 82.4세라고 한다.


그에 비해 정년은 55세~60세다.  55세 이후까지 정년이 보장된 곳은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사오정(45세 정년)이라는 말이 떠 돈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다. 직업에 대한 설계를 장기적으로 하지 않으면 노후는 말할 것도 없고 장년기부터 삶이 위태로워지기 시작한다.


긴 노후, 할 일 없이 보낼 것인 지 아니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다 갈 것인지 선택은 자신에게 달려 있다.


죽는 순간까지 현역으로 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생각만 갖고는 되지 않는다.  그 생각이 행동으로 행동이 습관으로 나타나 자연스럽고 꾸준한 자기 관리를 통해 노년의 삶까지 생기를 불어넣어야 한다.


육신이 해탈하는 그 순간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


고민은 짧게, 행동은 길게.  


자, 지금부터라도 준비해 보실래요.


[2024년 9월 26일 목요일]


이 글은 2007년 12월 19일 수요일에 모 일간지 오피니언에 실었던 글이다.


이때 내 나이가 마흔세 살이었다.  그 시절 이런 글을 쓰면서 내 노후대책은 했던가? 


60살은 나하고 먼 세계였고 60대가 되어 이 글을 읽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으리라.  다행인 건 직업상담현장에 몸을 담고 있었던 덕분에 일찌감치 난 노후에 진로(?)를 정해 놓고 있었다.


혼자서도 잘 놀기.

꼼지락꼼지락. 

전제조건은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이에 대한 글은 이미 월요일에 썼던 거라 생략하고.


2006년 우리나라 평균 수명은 남성이 75.7세, 여성이 82.4세였다.  18년이 지난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2024년 수치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으나 2023년 기준과 크게 달라지지 않으리라 여긴다.


2023년 우리나라 수명은 남성이 80.6세, 여성이 86.6세였다. 17년이 흐른 동안 남성의 평균 수명은 4.9세,  여성의 평균수명은 4.2세 늘어났다.


그에 비해 고령자들의 생계 및 취업에 대한 문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이건 고령자뿐만이 아니다.  20년 전 써 놓은 칼럼과 에세이들을 읽으면서 놀랐던 건 지금이나 그때나 크게 변한 것이 없다는 거다.


취업이라는 문은 여전히 청년층에게도 고령자에게도 냉혹하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20년이 지나서 썼던 그 글들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거다.


그때 글 마무리에 썼던 '고민은 짧게, 행동은 길게'는 지금도 어떤 상황에서도 통용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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