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좌절과 도전의 20대


나는 영어영문학과로 전공을 선택했다.


영어선생님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교 1~2학년 때 


고등학교 시절 마음 한편에 눌러놓았던 자유들이


마음껏 펼쳐대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서울 구경도 하고 축구도 하고 술도 마셨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과에서 10% 이내의 성적을 받아야 교직이수를 할 수 있지만


나의 성적은 그렇지 못했고


교직이수 면접에서 탈락을 하고 말았다.


나는 대학교 3~4학년 때 ROTC(학군단) 생활을 하였다.


그나마 나의 무분별한 자유를 조절해 줄 수 있는 시기였다.


이 시기에 나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교육봉사를 하였다.


선생님이라는 꿈을 작게나마 실현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마음처럼 아이들이 컨트롤되지 않았고


내가 생각했던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나와 맞지 않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대학교를 졸업 후 소위로 임관하여 무사히 군생활을 마쳤다.


그리고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갔다.


캐나다에 있는 물류창고에서 일하면서 육체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고


물류창고를 박차고 나와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는 과정에서


취업의 어려움을 겪었다.


그렇게 캐나다에서 6개월의 시간이 보내고 나는 한국으로 귀국을 결심했다.


한국에서 만큼은 다르겠지라고 생각하였으나,


취업과정에서 서류 합격은 쉽지 않았고,


운 좋게 면접을 보러 가더라도 계속해서 떨어지고 말았다.


여러 번의 낙방 속에도 나는 취업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여러 취업교육을 들으러 다녔고


인생의 멘토를 만나게 되었다.


직무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한 다음


면접을 보았고 결국 최종 합격이 되었다.


이 회사에서 나는 임원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일을 했고


처음 1년에는 팀에서 가장 일찍 출근하여 저녁 8~9시에 집에 갔다.


나보다 1년 빠르게 입사했던 선배는 매일 정시에 퇴근을 했고


한 번도 나를 도와준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내게 일을 더 주려고 했다.


2년 정도가 지나 나는 1년 선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선배님, 제가 업무가 조금 많은 것 같은데 도와주실 수 있으실까요?"


1년 선배는 나를 잠깐 쳐다보더니


"내가 왜?"라고 답했다.


그동안 내가 노력해 온 시간들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고 허무하게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혼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1년 선배는 나뿐 아니라 다른 선배, 팀장님에게 무례하게 대했다.


윗사람에게 대드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았고


무엇보다 업무시간에 책을 펼쳐놓고 자격증 공부를 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1년 선배는 몇 달 후 이직을 하게 되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게 되면 아쉬워야 하지만 마음이 홀가분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회사 생활에 집중을 하였고


퇴근 후에는 독서실에 가서 승진에 필요한 매경 TEST 및 토익 공부를 하였다.


승진에 필요한 모든 자격을 갖춘 나는 인사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모든 사원들의 대리 진급이 누락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노력한 것이 물거품이 되었고


회사에 대한 정이 뚝 떨어졌다.


부사장님 및 공장장님이 따로 시간을 내어 내게 밥을 사주시면서


위로를 해주었으나 와닿지 않았다.


회사를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었지만


이직을 하고 회사를 그만두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루하루 다니는 것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팀원들이 나를 위로해주려고 했지만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 시기에 업계에서 TOP 3에 드는 회사에서 경력직 채용공고가 올라왔다.


나는 독서실에 가서 이직 관련 책들을 여러 개 읽어보고


심사숙고해서 이력서를 작성하고 제출하였다.


운 좋게 서류에서 합격을 하였고 면접을 가게 되었다.


오랜만의 면접이라 1차 실무 면접에서 많이 떨었지만


합격이 되었고 2차 최종면접만 남겨두게 되었다.


최종면접 당일 나는 대기실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나를 불렀다.


나를 힘들게 했던 1년 선배가 이직한 회사에서


다시 이직을 하려고 하는 상황이었는데


최종 면접에서 만나게 된 상황이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면접을 앞두고 나는 긴장감이 더 올라갔다.


하지만 자신감이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첫 이직시도였고


그 선배는 이직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아 다시 이직을 하려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최선을 다해 2차 최종면접을 보았다.


나의 모든 것을 후회 없이 보여줘야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최종 면접이 끝났고 며칠 뒤 면접결과에 대한 문자가 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