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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번의밤 Jun 15. 2024

7. 전차 카드: 인생은 기세, 일단 간다

유기농 타로카드 에세이

우리 모두는 총구를 벗어난 총알이거나 날아가는 화살이거나, 


지나온 시간을 ‘특정 카드가 어울리는 시기’라는 관점에서 대입해 보면 나라는 인간은 특히 ‘전차 카드’의 영향권 내에 있는 시간이 많은 편이었다. “넌 추진력 하나는 끝내주지. 하지만 시야를 가린 경주마 같기도 해”라는 말을 들었던 적도 있다. 당장 ‘이걸 해야겠다’는 목표가 떠오르면 무리를 해서라도 돌진하는 편인데, 문제는 지구력은 그다지 좋지 않아서 장기 계획이나 목표보다는 당장 떠오른 일 단위, 주 단위로 할 수 있는 일들에 국한된다는 점이다. ‘의사가 되어야겠어’나 ‘영어를 정복해야겠어’ 같은 목표를 잡고 연 단위의 장기 출력을 내본 기억은 별로 없다. 그저 퇴근시간이 가까워 올 때 오늘은 한가한 녀석들을 찾아서 술자리 건수를 하나 잡아야겠다는 부장님의 욕망 같은, 하지만 이제야 나는 내 삶의 스케일에 그럭저럭 만족한다. 잘 계산된 말과 손짓 하나로 주가가 휘청, 세상이 출렁하는 영향력을 꿈꾼 적이 있었지만 고을 원님도 내가 싫으면 그만이다. 나는 주류와 인사이더가 만든 진검승부가 횡행하는 세계에서 반 발자국만 살짝 걸친 듯한 지금의 포지션이 좋다. 아무도 나를 이겼다 말할 수 없고, 누구도 내 밑에 있지 않은 내가 스스로 만든 유배지의 경계에서 흥얼거리며 서성인다.     



단 한 번, 단 한 번밖에 못 해도 그래도 널 사랑할 수 있을까

배짱이라는 것



가수의 얼굴도 모르지만 좋아하는 노래가 있다. 엠투엠의 ‘사랑한다 말해줘’인데, 이 노래 가사의 첫 문장이 제법 명문이다. ‘단 한 번, 단 한 번밖에 못 해도 그래도 널 사랑할 수 있을까’로 시작되는 서늘한 저음의 음색은 분명 치기 어린 나이였을 텐데 부르는 순간만큼은 영원 같은 ‘순간의 진실’에 도달하지 않았을까 싶다. 전차 카드가 내세운 흑백의 두 스핑크스는 어쩌면 내달리는 길의 끝에 있을지 모르는 영광과 처절한 패망을 동시에 암시하는 것 같다. 이쯤에서 드는 의문. 이 카드가 보여주는 속력은 전부를 잃을 각오를 한 속력일까, 아니면 거기까지는 생각지 않는 만용의 속력일까. 아무리 들여다봐도 전자는 아닐 것 같다. 일이 잘못 됐을 경우에 대한 어두운 전망을 애써 지워버리고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일단 지르고 보는 느낌이 강하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진 적이 별로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머리에 쓴 월계관과 어깨 너머로 보이는 화려한 성은 이 인물의 위치가 적어도 개국공신 이상은 될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한다. 그러나 지금부터의 일은 또 알 수 없다. 어느 진흙탕길에 꼬꾸라질지 아니면 또 다른 영역을 소유하고 개척하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이기는 것도 습관이라면 인생에는 언제나 강력한 습관과 관성을 깨부수고 측면돌파로 치고 들어오는 재난과 불운이 있기 마련이니까.



급행인 줄 알고 타셨죠? 중간에 못 내립니다

돌이킬 수 없음에 대하여



출퇴근길 엉덩이부터 들이밀고 탑승하게 되는 급행 열차의 운행은 심플하다. 듬성듬성 점을 찍듯 멈추며, 대부분의 역은 그냥 지나친다. 속력은 이거 신경 쓰고, 저거 신경 쓰다 보면 도무지 낼 수가 없다. 생략할 것은 생략하고, 잊을 건 잊어야 전력질주가 가능하다. 급행의 논리에 동의했기 때문에 왜 중간에 내릴 수 없냐는 질문은 통하지 않는다. 전차 카드의 상황도 마치 급행열차의 출발 이후 같다. 일단 스피크스에게 ‘나 생각이 좀 바뀌었어’ 하고 양해를 구한 뒤 조금 전에 등지고 나온 화려한 성 속으로 되돌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미 시작이고 진행 중이다. 가끔 생각한다. 인생의 마디마다 ‘너 여기 건너면 이제 못 돌아와’ 하고 속삭여주는 요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애석하게도 우리는 ‘그날 그 사건 이후 모든 게 변했지’ 하고 오랜 후에야 회상할 뿐, 지금 타고 있는 급행열차의 다음 역은 모르는 채로 산다.       



아무리 우겨도 세상은 속지 않는다

절실하다고 해서 그것이 참이라는 보장은 없지



전차 카드는 돌진하는 자체에 의미가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진행 자체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전력 질주가 도덕적으로 타당한지, 의도는 순수한지 등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소위 부적절한 관계가 시작된 마당에 전차 카드가 나오면 이미 자기 절제를 통해 조절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조금 차분하게 생각해 보세요’ 같은 말로 조언을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저 ‘괜찮으시겠어요?’ 하고 차분한 연민의 시선을 던질 뿐. 간혹 내가 이렇게 노력하고 염원했는데 왜 인생은 한 톨의 희망도 주지 않는지, ‘세상이 버린 나’라는 구도로 우격다짐의 절망을 표출하는 경우가 있는데, 자신이 어떤 길을 달려왔는지를 곰곰이 돌아보면 억울함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하나마나 한 소리 같은 문장을 늘어놓는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가끔 흙이 묻은 마음을 툭툭 털고 그냥 묵묵히 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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