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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한타로 Jun 08. 2024

6. 연인카드: 사랑의 이자는 필시 변동금리

유기농 타로카드 에세이

"와, 우리 잘 되려나 봐!" - 백이면 백, 모두가 좋아하는 카드 



20대 때 속절없이 짝사랑의 늪에 빠져 관계 및 궁합을 나타내는 스프레드를 하루에도 몇 번씩 펼쳐보던 시기가 있었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에 성공률이 100퍼센트라는 어느 부족의 이야기처럼, 당시 나는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던지면 안 된다는 금기를 깨고 바로 이 연인 카드가 나올 때까지 작은 자취방에 틀어박혀 카드를 손에서 놓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알 게 뭔가, 난 연인 카드를 꼭 봐야겠어’ 하고 하염없이 카드를 펼치다가 어쩌다 스프레드상 최종 결론의 자리에 연인 카드가 나온다면 그야말로 궁극의 정신승리와 희열감을 맛보곤 했다. 그때 카드를 움직이게 했던 이들은 모두 다 어디에 있는가? 내 마음, 내 기억, 일상 어디에도 없다. 추억 비슷한 덩어리가 몇 개 있었던 것 같은데 시간의 풍화작용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가 되었다.


연인 카드는 단 한 장,

보통은 둘 이상부터 시작되는 사랑



연인 카드는 단 한 장이다. 지극히 단순하게 ‘나의 마음’과 ‘너의 마음’ 두 개의 카드로 이루어진 스프레드를 가정해보자. 타로카드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도 설렘을 주는 이 연인 카드나 ‘나의 마음’ 자리에 놓여 있다면 상대의 마음에서 연인 카드가 나올 가능성은? ‘제로’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애초에 내 마음과 상대의 마음이 같을 수는 없다. 물론 마이너 카드까지 쳐서 레이더를 가동해보면 연인 카드 못지 않게 설렘을 주는 컵 2번 카드라든지 프로포즈를 상징하기도 하는 컵오브나이트 같은 카드도 있지만 어쨌거나 그때의 마음도 연인 카드와 완전히 같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나마 내게 비슷해 보이는 것은 메이저 카드 중 15번 악마 카드다. 구도도 비슷하고 남녀의 머리 위로 대천사 라파엘이 아니라 악마가 굽어보고 있다는 점을 빼면 마치 한 쌍의 빛과 그림자처럼 보인다. 나는 어쩌면 모든 사랑은 짝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의 줏대를 세우기도 어렵지만 상대의 마음이 ‘사랑’이 맞는지 알아내기도 힘들다. 그 마음의 떨림이 가진 진동수와 파장이 나를 향하고는 있지만 ‘넌 도대체 누구를 사랑하고 있었던 거야?’라고 말하고 싶은 이별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그래서 좋아, 하지만 내일은 모르지

사랑의 이자를 변동금리로 내는 사람들



연인 카드는 결혼적령기를 떠나서 연애를 인생에서 가장 큰 가치 중 하나로 두고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가장 기분 좋은 카드일 것이다.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가장 이상적인 한때를 나타내는 카드이고 6이라는 카드의 숫자도 3+3의 조화를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이 카드는 ‘그래서 좋아’를 의미할 뿐 ‘좋은데 그다음은?’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지극히 현재의 상황과 현실의 조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카드에 나란히 선 두 남녀는 나체가 부끄럽지 않은 낙원 가은 시공을 점유하고 있지만, 막상 그들의 등 뒤에는 뱀이 휘감고 있는 선악과 나무와 불이 붙은 나무가 각각 위치해 앞으로 벌어질 사건들을 암시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나에게 이 카드는 모든 면에서 ‘정점’과 ‘이상적인 한때’를 상기시키는 한편으로 컵 10번 카드처럼 아득하고 아련한, 뜻 모를 슬픔을 동반하는 카드이기도 하다. 진전이 없는 사랑과 우정 사이에 놓인 누군가가 상대의 마음에 연인 카드가 떴다고 해서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지금이 좋아’ 내지는 ‘지금은 어정쩡함이 나는 몹시 편해’라는 뜻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서류심사도 안 끝났는데 이미 합격

유혹, 이끌림의 주체가 내가 아닐 때 



실험관찰 시간이었던가. 자석의 N극과 S극 주위에 일정한 배열로 곤두서 있던 철가루를 기억한다. ‘이게 너희 마음이 몇 번이고 마주하게 될 운명이다’라는 말까지는 아니어도, 특히 과학 시간에 삶의 팁을 전할 수 있는 계기가 많았을 것 같은데 어쩐 일인지 ‘이과적이었던 시간’ 정도로 남아 있는 게 안타깝다. 

단순히 양팔 저울의 무게를 맞추기 위해 한쪽 저울의 추를 반대로 옮기는 식으로 누군가에 대한 호감을 조절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끌림의 주체는 내가 아니고, 일정 시기를 지난 끌림은 화학작용을 일으켜 도저히 이전과 이후가 같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는 것도, 어쩌면 불꽃반응 실험이나 리트머스 용지 실험 등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도출해낼 수 있었을 텐데. 

사랑은 도덕, 사회문화, 국어 시간이 아니라 수학이나 과학 시간에 배웠어야 했다. 물론 아무리 철저하게 배우더라도 그때가 되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거라는 제로에 가까운 확률에 대한 지식도 포함되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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