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 타로카드 에세이
참 묘한 카드다. 카드를 보고 있으면 어떤 때는 내가 사자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내가 여인 같다. 본능과 이성을 형상화한 측면이라면 둘 다 내 안에 깃들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내 삶을 지탱해준 몇몇 영화 중 <디아워스(THE HOURS)>에는 버지니아 울프 역을 맡은 니콜 키드먼이 이렇게 말하는 대목이 있다. “I wrestle alone, in the deep dark. and only I can understand my own condition.” 정신질환을 갖고 있던 그녀가 어둠 속에서 혼자 씨름하는 기분이란, 마치 힘 카드가 흑화한 것 같은 대사다. 카드 속 사자는 마치 살랑살랑 산책을 다니며 공원의 풀숲에 코를 들이밀고 킁킁거리는 강아지 같기도 한데, 어디까지나 사자는 사자다. 언제든 일촉즉발의 순간에 여인을 위태롭게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우려를 안심시키는 듯 여인의 머리 위에는 무한대 기호가 떠 있다. 잠시 운이 좋아서 사자의 비위를 잘 맞춘 것이 아니라 무한한 힘, 초월적인 정신력으로 사자를 컨트롤하고 있다. 애초에 사자와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 것만 봐도 이 관계는 대치가 아니라 상호 존중과 협력 관계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몸을 살짝 뒤로 뺀 여인의 자세를 볼 때 제아무리 신성한 힘을 가진 여인도 만에 하나 사자가 자신을 향해 달려들 수 있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 것 같지는 않다.
조절이 필요한 건 분노뿐만이 아니다
과거에는 A학점 아니면 F학점을 받은 성적표를 근사하게 여겼다. “나는 all or nothing 주의야”라는 말을 은연중에 자랑스레 이야기하곤 했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어떤 때는 내가 뱉은 말들이 우주를 떠도는 언령이 되었다가 충분히 응축되고 나서 나 자신에게 직격탄이 되어 돌아오는 것 같다. 그 무수한 말들의 에너지를 그대로 떠안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양극단을 오가는 삶의 태도가 나에게는 실질적인 병으로 찾아왔기 때문이다. 10년이 넘는 우여곡절을 겪고 나서야 무엇이든 정도껏 해야 한다는 생각이 이르게 됐다. 분노뿐만이 아니라 슬픔도, 심지어 행복도 넘치면 탈이 난다. 감사나 사랑도 마찬가지다. 뭐든 넘치면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적정선’이라는 언덕에 도달하려면 뜨거운 냄비에 손을 갖다 대는 것 같은 양극단에 대한 학습이 없이는 힘들다. 호된 경험을 한 다음에야 비로소 자신에게 맞는 진폭의 그래프를 그릴 수 있다.
내가 조절할 수 없는 힘을 힘이라 할 수 있을까
피아노를 칠 때 아주 작은 소리는 적은 힘이 들어갈 것 같고 큰 소리를 낼 때는 많은 힘을 실어야 할 것 같지만, 경험상 정반대다. 작은 소리일수록 촉각을 곤두세워 바짝 긴장한 상태로 치고, 큰 소리는 온몸을 개방해 비로소 건반 위에 나 자신을 촤라락 풀어놓는 느낌으로 친다. 언제 힘을 주고 언제 힘을 빼야 되는지를 알지 못한 채, 단지 이기고 제압하기 위해서 분별 없이 쓰는 힘을 힘이라 할 수 있을까. 주로 사회면에서 얼굴을 공개하니 마니 하는 논란과 함께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나는 항상 만화 <날아라 슈퍼보드> 속 스님을 불러다가 그들의 이마에 부적을 붙이고 싶다. 저 지독할 정도의 주도면밀함과 폭력으로 발현된 에너지를 정말로 적절한 곳에 쏟아부었다면 어땠을까. <날아라 슈퍼보드> 속에서 보통 손오공에 제압당한 뒤 스님에 의해 이마에 부적이 붙은 악당들은 일종의 ‘정화 작용’을 거친 다음 비로소 편안해진 웃음으로 사라지곤 한다. 그런 구도에서 보면 힘 카드는 마치 스님과 손오공 같기도 하다. 다소 느와르적(?)이고 불손한 상상력을 가동해보면 어쩌면 여인은 사자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속삭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착하지? 폭주하면 너도 나도 오늘 다 죽는 거야.”
무신을 무시하시나요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든지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다’ 같이 널리 회자되는 명언이나 격언을 새삼 다시 생각해보는 때가 있다. 시대를 초월한 ‘맞는 말’이라 두고두고 복기하는 명언도 있지만 때로는 ‘왜?’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펜은 과연 칼보다 강할까. 아니, ‘강하다’는 표현이 과연 적합한가. 간교한 ‘펜놀림’으로 무수한 사람들을 도탄에 빠뜨린 사례가 과연 없을까. 또한 칼을 들어야만 했던 시기에 정복의 야욕으로부터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칼을 펜과 비교해 저평가할 수 있을까. 힘 카드는 사자를 길들이기 위해 펜을 사용하지도, 칼을 사용하지도 않은 듯 보인다. 그저 기다리고 또 기다린 것 같다. 그러다 어느 순간 경계심이 사라져 사자의 꼬리가 둥글게 말리고 서로를 신뢰하게 되는 무혈의 관계가 형성이 된 게 아닐까. 나도 기다리고 있다. 자주 자괴감을 느끼고 간식처럼 오만과 편견을 씹어먹지만 서서히 일상의 행복을 찾아 조절해가는 나 자신이 또 다시 폭주하는 사자가 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