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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번의밤 Oct 01. 2024

15. 악마 카드: 인생의 달고 매운 맛

유기농 타로카드 에세이



사랑의 지옥으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사실 나는 악마 카드를 꽤 좋아한다. 연애운에서 절제나 정의 카드가 나오는 것보다는 악마 카드를 보는 것이 차라리 속이 시원하다고나 할까. 보통은 절박한 상태에서 카드를 펼치기 마련이라 ‘그래, 이 마음은 너도 어쩔 수 없겠구나’ 하는 위로마저 받을 때가 있다. 상대가 나를 안전한 무관심으로 대하기보다 차라리 가슴이 타들어갈 정도로 열망했으면 하는 바람, 그 열망의 동력이 육체적 사랑에 국한되든, 얼마 없는 내 돈을 보고 달려든 것이든 간에 말이다. 이 카드는 중독이나 사기를 암시하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금연을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을 때 이 카드가 나온다면 이런 해석이 가능하기도 하겠다. ‘한번 피우기 시작한 자에게 금연은 없어. 휴연이 있을 뿐’          



썸? 그냥 넌 내 거야

내숭 없는 카드 속 파멸의 춤



악마 카드는 기본적으로 연인 카드와 구도나 배치 면에서 유사성이 많다. 하지만 연인 카드에서 볼 수 있는 낙원 속 두 남녀의 천진난만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쇠사슬을 목에 건 채 머리에 뿔을 달고 있는 남녀는 표정이나 몸짓에서 일말의 내숭도 없어 보인다. 오늘 밤만 즐기면 그 뒤는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원나잇’의 정서를 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원나잇이 투나잇이 되고 쓰리나잇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지독하게 속궁합이 좋은 잉꼬 부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회의적이다. 이 카드가 담고 있는 얼음에 붙은 불처럼 대책 없는 욕망이 과연 제도권의 안정적인 연애에 안착할 수 있을까. 애초에 이 관계는 현실에서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한계 요소를 안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선을 넘는 두려움을 압도하는 쾌감으로 언제 낭떠러지로 떨어질지 모르는 곳에서 추는 춤 같다.     




나방은 불이 뜨겁다는 걸 알았을까

바닥을 찍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타로카드에 나타나는 다양한 상황과 삶의 희로애락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각자 자신에게 맞는 카드를 챙겨 가서 그것대로만 살아지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모두가 마법사의 시기를 겪고, 은둔자의 순간을 맞이하고, 세상이 내 것 같은 황제 카드의 고양감을 맛보기도 한다. 악마 카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이라도 그가 가진 ‘이성’을 유지하기 이전에는 불을 보고 뛰어든 불나방이었을 수 있다. 뭐든 입으로 가져가서 맛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유아기의 아이처럼 직접 겪고 부딪히지 않으면 모르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도 중고거래에서 사기를 당한 이후에야 세상에 다이슨 청소기를 그 가격에 파는 바보는 없다는 것을 깨닫지 않았던가.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들, 인생에서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서야 알게 된 것들 모두가 악마 카드 속에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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