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 타로카드 에세이
재난영화의 공식 중 하나는 영화 초반에 가족 때문이든, 어떤 약속 때문이든, 죽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는 조연급 출연자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 그리고 주연급 출연자는 이상하게 총알이나 포화, 붕괴 속에서도 요리조리 잘 피해 다니다가 결정적인 위기를 한 차례 겪은 뒤 대체로 살아서 삶을 이어간다. 그런데 만약 재난영화가 탑 카드에 빙의된다면 어떨까. 이 사람만은 살 것 같았던 그런 사람이 초반에 갑자기 죽어버리거나, 재난에 투입되어 ‘착한’ 사람들을 구해줘야 하는 소방관이 갑자기 광기를 부린다거나 하는 상황 말이다. 단적으로 영화 <타이타닉>에서 싸늘한 바다를 배경으로 그렇게 ‘잭’을 찾고 있는데 물 아래로 영영 가라앉을 것 같던 잭이 갑자기 놀라운 수영 실력으로 해수면 위로 머리를 퐁 하고 내미는 상상 같은 것들.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카드가 바로 탑 카드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 무너진다. 살아가다 보면 진심과 성심을 다했으나 그대로 스러져버리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외부적 충격에 대처하는 법
탑 카드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는 잠시 무력해진다. 물론 우리는 매일 생사를 오고가는 드라마틱한 위기를 겪는 것은 아니기에 불가항력적 상황의 스케일은 천차만별이다. 14층에 사는데 어느 아침에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서 수리를 하는 바람에 층층이 계단을 밟아 내려와야 하는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고, 지하철에서 괜히 시비를 거는 누군가를 만나 하루의 기분을 완전히 망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 외에도 회사에 정리해고 바람이 분다든지, 신경 쓰지 않았던 장기에 갑자기 큰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될 수도 있다. 혹시 내가 좀 더 잘했더라면 이런 상황들을 피할 수 있었을까? 혹자 중에는 어쩌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우환이나 변화를 ‘벌’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저 반가사유상을 조금 좋아하는 입장에서 선악이 결부되지 않은 무수한 인과관계의 정교한 고리가 작동한 끝에 한 뭉텅이의 원인과 한 뭉텅이의 결과가 나타난 거라고 생각한다. 어느 졸리기 짝이 없는 오후에 회사 옥상에 올라가 하늘을 보는데 몸을 뒤집은 채로 발버둥을 치고 있던 아주 작은 벌레 한 마리에 눈길이 갔다. 온 힘을 다해 고독과 고통에 직면하고 있는 생명을 그대로 두고 내려오는 길에 어쩌면 나도 저 벌레와 같지 않나 생각하게 됐다.
전화위복이 될 수 있는 가능성
반쯤 돌면 미치광이가 되지만 거기서 한 번 더 돌면 원점으로 돌아온다. 탑 카드는 단순히 ‘재앙’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스라이팅과 폭력으로 점철된 연애 관계가 외부적 요인으로 깨지게 되면 관계 자체로 볼 때는 끝이지만 ‘고생 끝’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요는 무엇이 무너지느냐 하는 점인데, 좋지 않은 상황이 해체되고 전복되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또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환이 중첩되는 가운데, 오히려 온전히 바닥을 찍는 어느 낮은 정점에 도달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잃을 게 없는 사람이 가장 무섭다. 모든 게 사라진 어느 아침에 홀연히 생생하게 작동하는 삶의 의지를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나에게는 작년 하반기가 그랬다. 꼬이고 막히고 터지고 뒤집힌 끝에 가을과 겨울은 온통 눈물이었고 분투였다. 그런데 다시 맞이한 가을은 먹먹하고 쓸쓸하지만 고즈넉한 ‘제로’ 상태의 평온이 깃들어 있음을 느낀다. 다시 작년으로 돌아가 그 모든 일들을 겪으라면 나는 접시물에 코를 박으려고 할지도 모르지만, 또 어떤 순간에는 내가 견딜 수 있는 최악이 갱신되기도 하겠지. 그래도 나는 살아갈 거고, 언젠가는 찾아올 죽음이 두렵지 않도록 강렬한 빛이 드리우는 그림자도 조금은 의연하게 응시할 수 있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