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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번의밤 Mar 12. 2024

1. 마법사 카드: 제가 1등입니다만

유기농 타로카드 에세이


나의 숫자 취향은 확실하다. 0을 각별히 여기면서 1과 자기 자신 외에는 나누어질 수 없는 ‘소수’를 사랑한다. 3, 5, 7, 11, 13, 17... 그러고 보니 괜스레 소외되고 터부시되는 것들에 대한 연민이 있는 나에게 13은 또 얼마나 각별했던가. 그런가 하면 1이라는 숫자는 사실 관심이 없다기보다 조금은 저어하게 되는 숫자인 것이 확실하다. 그놈의 1등, 그놈의 1위, 유일한 나와 유일한 신 등등. 마법사가 1번인 것은 카드 속 분위기를 봐도 그렇고, 마법이라는 행위를 봐도 그렇고 어찌 보면 너무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내가 1등이야!’ 하고 노란색과 선명한 붉은색의 조화가 으스대는 것 같다.



꽉 쥔 아기의 손 같은 출발

운명을 알고 있을 것 같지만, 그걸 잊을 것 같기도 한 


    

활기차고 의기양양한 시작이다. 언젠가 갓 태어난 아기의 꽉 쥔 손안에 운명이 있고, 자라면서 서서히 주먹을 펴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저마다 품고 태어난, 하지만 잃어버리고 만 운명을 찾아 헤맨다는 말을 들었다. 이 카드는 마치 운명을 찾아 헤매기 전에 우렁차게 산부인과를 뒤흔드는 경쾌한 울음 같기도 하다. 마법사는 번쩍 든 지팡이로 ‘나 여기 있음!’ 하고 존재감을 피력한다. 부디 마법사의 시작이 계속해서 즐겁고 신묘한 항해가 되기를, 하지만 나에게 1번 마법사 카드는 어딘지 0번 바보카드보다 무모해 보인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머리 위에 뜬 무한대 기호도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나 있음으로 해서, 그 무한성이 충분히 성숙되지 않은 것 같달까.      



잠시 빌려오는 무한한 지혜

당신의 무한한 광채는 자체 발광이 아닙니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가 자신을 태양신이라 칭하던 그 순간, 태양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사람의 형상을 한 무언가가 ‘나는 무한한 무언가의 자식이다’라고 한다면 나는 일단 그 말을 믿을 수 없어하는 유형에 속한다. 차라리 ‘세계, 고독, 유한성’을 놓고 시름했던 하이데거의 사유가 훨씬 무한에 가깝게 다가온다. 결국 나는 인류가 ‘죽음’을 극복하지 했던 역사의 물결에 떠밀려 언젠가 죽을 것이고, 마법사 역시 그가 입은 가운을 벗고 은퇴 후 치킨을 팔아야 하나 고민을 하는 시기가 올 것이다. 즉, 마법사가 부리는 마법은 무한한 지혜이기는 하지만 그 무한성과 마법사는 분리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마법사, 왠지 그걸 아직 분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아마도 1번이겠지. 멋있다. 하지만 나는 이 마법사가 좀 더 나이를 먹은 뒤에 친하게 지내고 싶다. 대략 간달프 같은 외양으로 인자함과 겸허함을 갖춘 뒤에.          



꾀 많은 도깨비

왠지 동양으로 치면 방망이를 들고 있을 것 같아



한때 얼굴을 두고 공룡상, 강아지상, 고양이상 하고 한창 생김새가 주는 느낌을 동물에 비유할 때 나는 ‘도깨비상’을 가진 연예인이 좋다고 말하고 다니곤 했다. 이름을 거론하기는 부적절한 그 얼굴에는 장난기가 서려 있으면서도 어쩐지 선악으로부터 자유로울 것 같은 묘한 매력이 있었다. (물론 시간이 해가 갈수록 카메라 마사지를 받아서 그런지 점점 정형화된 아름다움으로 나아가긴 했지만) 이 마법사 역시 딱히 공적 기관에 소속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알음알음 전수되거나 비밀리에 전파되는 소수의 집단이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도깨비들처럼 여기서 잠시, 저기서 잠시 나타날 뿐, 전지전능한 능력이란 원래 프로도가 운반하는 절대반지처럼 드러나면 인간의 탐욕에 노출될 테니. 어쨌든 이 드물고 귀한 분은 일반 직장에 앉혀 놓으면 유능함 이상의 소시오패스적 면모를 보일지도 모른다. 결과를 보장하는 워커홀릭, 아마도 자신은 충만하겠지만 주위에서 피곤하기도 하고, 때로는 주위를 압도하고 기만하기도 하는? 난 왜 또 만화 <머털도사> 속 꺼꾸리를 떠올리고 있나.     



마법사, 아니면 일반인

‘일반인’을 입에 담는 많은 특별한 직군(?)들에 대해  


   

세상에는 ‘우리, 그리고 나머지 일반인’을 말하는 자들이 생각보다 많다. 일단 내 인생에서 최초로 일반인이 된 건 대학 때 시를 쓰던 교수님이 ‘세상은 시인, 아니면 일반인으로 나뉜다’라고 하셨을 때다. 그리고 토크쇼에 나온 연예인들이 종종 ‘일반인들은...’ 하는 표현을 쓸 때가 있고, 최근에 들은 어떤 랩가사에는 ‘난 내 가사에 래퍼라는 단어 줄이는 중이지. 너네 그냥 일반인이라서, 그 단어 자체부터 별로라서’(양홍원의 ‘진토닉’ 중에서 키드밀리 부분이었던가)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나름대로 잔잔한 감동을 받기도 했다. 그렇다. 나는 누구나 1번 카드의 마법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무한’과 ‘영원’은 무언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열려 있는, 하지만 잠시 잠시 다녀올 수 있는 시간이 아닐까. 마법사도 그걸 알겠지만, 일단 아니라고 말하고 다닐 것 같다.           



어떤 음모론

혹시 타로카드는 1번 카드의 꿈이 아닐까?



마법사가 든 지팡이와 우로보로스 허리띠 외에도 그의 앞에 놓인 나무 테이블 위에는 소드(검), 완즈(나무막대), 펜타클(별), 컵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타로카드 전체는 이 네 가지 원소를 숫자별로 끊임없이 차례로 밟아 올라가며 이어진다. 그래서 든 생각이 ‘어쩌면 메이저카드 22장, 마이너카드 56장, 총 78장의 카드는 혹시 마법사의 꿈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하긴 꿈이면 또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떤가? 하나마나 한 생각이긴 하지만 나는 아직도 세계 7대 미스테리를 사랑하던 아이에서 하나도 성장하지 않은 것 같다. 이런 생각에 홀로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마법사가 펼쳐 보이는, 어쩌면 그 자신마저도 빨려들어간 어떤 거대한 저택에 초대되었다. 이제 2번 카드가 마법처럼 다가올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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