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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루비 May 04. 2024

 악의 축-외계 엄마

전적으로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어머니!

중간고사가 끝났다. 


이제는 아이들의 감추어졌던 성적이 수면 위로 드러날 시간이다. 아이에 대한 그동안의 믿음이 결실로 보답받는지, 배신으로 돌아오는지 결정이 나게 된다. 

이 시기가 되면 성적이 정확히 발표되기 전임에도 아이들은 안다. 아이들은 자신의 그동안의 불성실과 꾀부림과 거짓말이 드러나기 직전에 자수하는 심정으로 부모에게 시험 결과를 전할 것이고 실망스러운 성적을 듣고 난 뒤에 공부 안 한 내 새끼 탓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는 많지 않을 것이다. 아니 공부 안 하는 내 새끼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학원에 보낸 것이니, 그런 아이를 제대로 공부시키지 못한 학원은 질책과 원망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시험 후에는 학원을 물색하는 학부모의 전화와 방문이 늘어나게 마련이고 지리한 상담이 계속 이어진다. 

사실 학생과 학부모의 고민에 공감하고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는 상담이라고 한다면 나는 얼마든 시간을 쏟을 수 있다. 문제를 듣고 함께 고민할 아량이 갖추어진 사람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상담은 그렇지 않기에 누군가 나에게 학부모 상담 1시간을 할래? 수업을 10시간 할래?라고 묻는다면 나는 두 번 생각도 하지 않고 수업을 택할 것이다. 학부모 한 명보다 말 안 듣고 예민한 중2 사춘기 아이들 20명을 대하기가 나에게는 더 보람 있다. 

보람을 떠나서 한 번씩 상식이하의 외계어를 늘어놓는 학부모들이 있는데 이를 상대하고 나면 마치 수명이 4~5년은 줄어드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어느 직업이나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제일 어려운 일이라고는 하지만 나에게는 특별히 이런 ‘외계 엄마’를 식별할 수 있는 기민한 센서 같은 것이 있으므로 더욱 괴롭게 느껴지는 것이겠지.


예를 들면,

 수일 전에 학원에 신입 상담이 있었다. 상담 온 학생은 중학교 3학년이었고 엄마와 함께 학원을 방문해서 기본적인 테스트와 함께 상담이 진행되었다. 


“우리 아이는 초등학교부터 영재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고 과고를 준비하던 아이예요. 이 학원에서는 어떻게 수업을 하나요?”

첫인상부터 심상치 않더니 앉자마자 내뱉는 첫마디가 도발적이다.

팔짱을 낀 채 나를 설득할 수 있을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신경을 긁었다.

“그럼 과고 대비를 원하시는 건가요?”

“아니요, 일반고를 진학할 거예요. 그렇지만 A고등학교로 진학할 예정이라 그 수준에 맞는 수업이 가능한가요?”

“A고등학교는 우리 지역에서는 나름 서울권 대학 진학률이 높은 학교인데, 아이가 테스트 중이니 결과를 보고 얘기를 더 진행하도록 하죠.”


그리고는 이내 아이의 테스트지를 전달받았는데 이건 뭐

‘과고 같은 소리가 터진 입이라고 막 나오나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분명 일반 중학교 내신 정도의 난이도였고 과고는커녕 기본 함수개념조차 모르는 수준이었다.

‘이런 애를 데리고 와서 영재원, 과고를 운운하나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역시나 꾹 참았다.


상담을 더 진행하며 얘기를 더 들어보니 영재원을 다닌 게 아니라 영재원 대비 학원에 다닌 것이었고, 과고를 준비한 게 아니라 중1 때까지 소위 과고준비반이라고 하는 학원상술에 놀아난 것이었다. 


-식은 쓸 줄 모르고 암산이 태반이며 그마저도 정확하지 않다. 글씨는 도저히 수학식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며 오개념이 더러 있다. 기본적인 학습량이 부족하여 기초연산에서 실수가 잦다.-


실제 내가 상담노트에 기록한 내용이다. 가감 없이 전달했고 아이의 엄마는 충격을 받은 듯했다. 처음의 거만하고 허세 가득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어딘가 불안한 듯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자녀가 영재원에 다니길 희망하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다만 그 마음을 솔직하게 들여다보길 바라는 것이다.

내 아이가 정말 영재이거나 그 비슷하게 똑똑하고, 그래서 그에 맞는 교육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영재원 지원을 결정하기보다 내 아이가 공식적으로 ‘영재’라는 딱지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크지는 않은가?

내 아이가 영재이고 그래서 영재교육을 받는다면 참 기쁠 것이다. 아이의 수준에 맞는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하지만 ‘영재원을 다니는 내 아이’가 목적이 되는 경우 별의별 일들이 생긴다. 위 사례는 특별한 사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육계의 어떤 저명한 분은 영재원을 두고 악의 축이라고 했다. 영재원의 목적을 보면 악의 축이라는 표현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영재라는 단어가 주는 달콤함과 아이에 대한 분별력 없는 사랑이 잘못 결합이 되면 괴랄한 융합반응이 일어난다.

아이가 받게 될 교육에 관한 기대보다 내 아이가 영재 타이틀을 거머쥐었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영재의 부모가 된 사실에 더 집중할 수 있다. 그 허세를 위해 어떻게든 영재원에, 과학고등학교에 밀어 넣고자 하는 욕심이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욕심은 금세 전염되기에 그토록 증오해 마지않는 사교육 열풍이 사그라들지 않는 것이다. 영재원과 영재교육은 잘못이 없다. 과학고등학교도 잘못이 없다. 그러나 그에 대한 열망과 기대와 압박은 정말 큰 문제이다. 영재원과 과고의 존재 자체가 아이들이 일찍부터 사교육에 내몰리고 부모로부터 압박을 받는 원인이 된다면 영재원은 악의 축이 맞다고 생각한다. ‘내 아이가 영재였으면’하는 부모의 바람까지는 잘못이 아니지만 영재원이나 학교 타이틀이 목적이 되어 벌어지는 일들은 부모의 허세와 욕망이 불러낸 우상숭배에 지나지 않다.


그래서 상담받았던 그 녀석은 어떻게 되었냐고? 오늘도 수업 후에 숙제가 많다고 징징대다 잔소리 한 바가지 듣고 툴툴대며 집에 갔다.

‘응원한다, 기대한다. 이 녀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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