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13살 아들이 죽었다.
동생의 처조카가 죽었다. 초등학교 6학년 짜리 남자애가 주상복합 19층 건물에서 몸을 던졌다고 했다.
초등학교 6학년, 태어났을 때부터 저체중으로 한참을 인큐베이터에 있었고 자라면서도 또래 아이들보다 마르고 왜소한 체형이었다. 그 때문인지 너무 소극적이었고 남자아이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아들들처럼 몸을 움직이며 놀기보다는 정적인 놀이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부디 다른 아이들처럼 건강하고 활발한 아이로 자라주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욕심이 있다면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에는 또래 아이들만큼 정상적인 체중으로 성장해 주기만을 바라지 않았을까?
부모의 간절함에 보답하듯 아이는 점차 학령이 올라갈수록 체중도 늘었고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던 학교 생활도 조금씩 개선되었다고 했다. 그러자 부모에게는 불현듯 험한 욕심이 스며들었고 또래보다 약한 몸을 타고난 탓에 다른 아이들보다 뒤처졌다고 생각했는지 학원을 뺑뺑이 돌기 시작했다. 맞벌이 가정이었던 부모는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뒤쳐졌으니 뛰어야 따라잡을 수 있다는 절박함으로, 아이에게 좋은 것만 해주고 싶다는 비틀린 사랑으로 아이를 채근하기 시작했다.
이모부집에 가끔씩 놀러 오면 "이모부, 집에 가기 싫어요.", "오늘 이모부 집에서 자고 가면 안돼요? 엄마한테 얘기 좀 해주세요."라고 칭얼대고 매달리기 일쑤였다고 한다. 가정적이고 아이를 좋아하는 동생은 뿌리치기 어려웠고 초등학교 6학년 짜리가 집에 가기 싫은 이유가 뭘까? 동생도 궁금했다고 한다. 단순하게는 학원을 빼먹고 싶다거나 숙제를 하기 싫어서일 거라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아이들이면 누구나 루틴 한 일상에서 꿈꿀 수 있을만한 작은 일탈을 친척어른에게 바랐던 것이겠지. 그러나 이 칭얼거림은 작은 일탈이 아니었고 13살 사내아이의 끔찍하리만치 절박한 몸부림이었던 것을 동생도 비참한 소식을 듣고 나서야 알아차렸다고 했다.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에 공감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전에 마치 수명이 다해 정신없이 깜빡이는 형광등처럼 내 기억을 뒤지기 시작했다. 내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이의 미래를 위한 구실과 변명으로 아이들을 괴롭게 하지는 않았을까? 나의 어리석고 이기적인 판단으로 어린 누군가를 한계까지 몰아붙이진 않았을지, 제자라 따르는 학생들에게, 또 내 아들들에게 나로 인한 상처는 없었는지 떨리는 심정으로 기억을 더듬었다.
부모의 기대는 그리 유별나지 않았을 것이다. 부디 평범한 주변의 다른 아이들처럼 까불고 말썽 부리고 가끔 애교스럽게 안기기도 하는... 다른 가정들처럼 지지고 볶고 잔소리하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변성기가 오듯 사춘기를 맞이하고, 서툴고 어색하게 내미는 어버이날 카네이션처럼 조금씩 어색하게나마 사랑을 표현하며 살아가길 기대하진 않았을까? 그랬을 것이다.
지금 자식을 잃은 그 부모의 마음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그 아이의 영혼을 어떻게 달래줄 수 있을까? 살아남은 자들은 13년 동안의 추억을 어떤 마음으로 짊어지고 살아갈까?
자신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그 무거운 죄책감을 어떤 말로 덜어낼 수 있을까?
안타깝고 무섭다는 마음 외에는 아무 말도 아무 결론도 내릴 수 없을 것 같다.
나를 바라보는 작은 눈동자 하나하나는 이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다는 것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