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포 vs 이성
매사에 징징대는 녀석이 있다. 이 녀석은 기분이 좋은 날에는 밝게 징징거리고 나쁜 날에는 우울하게 징징거린다. 이 녀석이 줄기차게 가지고 있던 궁금증은 '도대체 수학은 누가 만들어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만드는 것이냐'란 것이다.(지금 생각하면 그리 진지한 질문도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학업 스트레스가 엄청난 사춘기 학생의 푸념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사실은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불평이라 무시할 수도 있다. 헌데 가만히 놔두면 주변 친구들에게도 미치는 '네거티브 에너지'가 상당하기 때문에 한 번은 각 잡고 이 녀석에게 수학이 필요한 이유와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한 적이 있다.
"수학이 없었으면 니가 좋아하는 컴게임도 못해"
"그럼 게임을 포기할게요"
"헐"
이런 식이다.
녀석의 무대포, 무지성 논리에는 신성한 인간의 이성이 끼어들 여지란 없었다.
수학은 단순히 문제를 푸는 기교가 아니라 어떤 사건과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사고의 과정이다. 사고력을 키워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도구들을 조합해서 원하는 결론을 얻어 낼 수 있도록 한다.
라면을 끓일 때를 생각해 보자. 라면이 끓는 5분이라는 시간 동안 가장 효율적으로 시간 낭비 없이 파 썰기, 김치 꺼내기, 설거지 등을 한다. 이런 데 필요한 것을 수학적 사고력이라고 한다. 어떤 일의 절차를 분류하여 중복되지 않게 잘 배치하는 것이다.
이 도구들이 수학에서는 정의와 정리(공식), 문제에서 주어진 조건이고 일상에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나 배경지식, 재화 혹은 이용할 수 있는 수단들이다.
만약 지금이 원시 시대라면 수학을 잘해서 문제해결력, 추론 능력, 수학적 사고력을 갖춘 원시인들이 환경의 변화에 잘 적응해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물론 이런 능력들은 수학뿐만 아니라 다른 과목을 공부해도 기를 수 있긴 하지만 수학을 공부할 때 가장 많이 길러진다.
수학문제에는 여러 가지 조건이 있다. 이 조건들을 모두 이용해 답을 구하려면 어느 한 조건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 수학을 잘하는 친구들의 풀이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이것은 한 조건을 정리하는 도중 머릿속에서 다른 조건들을 비교하고 조율하고 있다는 뜻이다. 실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살면서 부딪히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 우리는 여러 가지 생각과 고민을 한다.
사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많은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몇몇 선생님은 수학의 본질이 아닌 기교에 치우친 수업을 한다. "이건 이렇게 풀어" 문제를 푸는 데 충분한 사고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편하게 답을 내는 방법만 알려 준다. 안타깝게도 학생들은 그런 수업을 매우 좋아한다. 결국 독이 되는 것도 모르고.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이 기교는 언젠가 잊어버린다. 그래서 어느 순간 수학은 더 이상 발전하지 않게 된다. 너무 편한 길은 경계하라. 한 문제를 풀어도 내 것으로 만들고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면 열 문제를 푼 것보다 낫다.
수학적 사고하는 것은 내가 가진 정보를 가지고, 주어진 조건들은 이용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을 뜻한다. 어려운 문제를 풀기 위해서 우리는 매번 이런 수학적 사고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런 수학적 사고는 말 그대로 사고이기 때문에 스스로 생각해야지만 발전하게 된다. 누군가 방법을 가르쳐 주거나 해설지를 읽고 풀이법을 아는 것은 정보의 양을 늘려 줄 뿐이지 수학적 사고력을 높이지는 않는다.
우리 귀한 아들과 딸들이 집에서 공부하지 않고 위의 녀석과 같은 불평들을 늘어놓는다면 이렇게 생각하자.
'아, 이 녀석은 아직 사고력이 부족한 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