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루비 Mar 14. 2024

수학 선행학습의 허와 실


선행학습의 허와 실




 어느 날 휴일을 맞아 집에서 쉬고 있는데 새벽부터(?) 처제에게서 전화가 왔다. 


조카는 중학교 2학년인데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으니 방학을 맞아 좀 가르쳐달라는 것이었다. 아니 중학생 숙제를 학원 원장에게 풀어달라니 너무하잖아, 이거? 실제로 사랑스러운 우리 조카의 수학 실력에는 문제가 좀 있었다. 기본적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으나(중학교 2학년 과정에 무어 그리 어려운 내용이 있으랴마는…) 계산할 때 자주 실수를 하고, 특별히 어렵다 싶은 문제는 어김없이 풀지 못했다. 식은 적지 않고 암산에 주력하는 전형적인 아들의 모습 가끔씩 엄마가 계산 실수를 꾸짖으면 반항을 감행하기까지 했다니…


“어쩌다 틀릴 수도 있는 거지! 꼭 100점을 맞아야 돼!?”


그런데 그게 ‘어쩌다’가 아니라 ‘언제나’인 게 문제였다. 조카가 어릴 적부터 성심껏(?) 수학 상담을 해왔던 나는 처제와 아내에게 맹렬한 질타를 받아야 했다. 우리 조카의 시험 점수는 상상 이상으로(이럴 때는 ‘상상 이하’라고 해야 하나?) 참혹했던 것이다. 


 처제는 겨울방학이 되자 중학교 1학년 과정을 확실하게 복습시키겠다고 나섰다. 나는 반대했다. 조카가 1학년 때 배운 내용을 하나도 모른다면 처음부터 다시 공부해야겠지만 이 경우는 다르다. 기본 내용은 다 이해하는데 계산 실수를 반복하고 어려운 응용문제를 풀지 못하는 것뿐(?)이다. 그걸 처음부터 다시 공부하라고 한다면 오히려 흥미를 잃어 실수도 더 많아지고 어려운 문제는 손도 대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차라리 3학년 1학기 내용을 공부시키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이게 내 생각이었다. 




 “그렇게 잘난 사람이 왜 하나뿐인 조카를 이 꼴로 만들어놓았느냐?”는 아내의 비난이 이어졌지만 나는 나름의 근거를 제시했다. 사람은 뭔가 새로운 것을 마주해야 흥미를 느끼는 법이다. 조카도 2학년 내용을 복습하기보다는 3학년 내용을 새로 배우는 게 훨씬 흥미로울 것이다. 그리고 3학년 내용을 공부하다 보면 2학년 내용이(다 나오는 건 아니지만) 자꾸 나와서 저절로 복습이 되게 마련이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2학년 내용을 다시 복습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겨울방학 동안에 2학년 내용을 모두 복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겨울방학 동안의 ‘혹독한’(물론 계획대로 실천에 옮겼을 경우에 한해서) 훈련도 보람 없이 또다시 어느 정도 뒤처진 체 새 학기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게 무슨 바보 같은 짓이냐… 기타 등등….


 실제로 나는 고등학생들에게도 그렇게 얘기한다. 기본 실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고등학교 1학년 때 배운 기초부터 철저히 복습해야겠다고 달려드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한두 과목이라면 모를까 복습해야 할 과목이 한두 트럭이 아닌데 그런 짓을 시도했다가는 처음 생각과는 달리 항상 뒤처진 채로 질질 끌려가게 될 것이다. 차라리 다음 학기 때 배울 것들을 예습하는 게 낫다. 복습은 그때그때 정말로 필요한 부분만 발췌하여 공부하면 된다.(다만 할 때는 제대로) 그래야 정서적 불안감도 없어진다. … 역시 기타 등등…




 그러면 무조건 선행을 하라는 말이냐?


 이런 종류의 의문에 대한 답은 언제나 뻔하다. ‘적절한’ 선행학습은 실력 향상에 아주 커다란 도움이 되지만 그렇지 못한 선행학습은 거의 치명적인 해독을 끼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적절한’ 선행학습과 ‘부적절한’ 선행학습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이건 물론 ‘그때그때 다르다.’ 그래도 대강의 기준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적절한 빠르기’가 중요하다.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뭐가 그렇게 급한지 무조건 진도만 빨리 나가는 걸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사정이야 어찌 됐든 자기 학년보다 2년은 앞서 가야 안심을 한다. 이에 따라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들도 일단 진도를 빨리 나가고 본다. 교육비를 지불하는 건 학부모지 학생이 아니기 때문일까? 학생이 제대로 이해를 하든 못하는 여름방학 동안에 1년 치 과정 한 권을 끝내는 것은 보통이다. 이런 학생들이 보이는 몇 가지 대표증상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이미 다 아는 내용이라는 이유로 수업에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원리에는 관심이 없고 답이      뭔 지에만 관심이 있다.


문제는 그런대로 풀 줄      알지만 왜 그렇게 풀어야 하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이미 풀어 준 문제를 조금만      변형시키면 어찌할 바를 모른다.


‘무리수’가 뭐냐고 물으면      “루트요”라고 대답한다





 내 생각에는 일부 특별히 우수한 학생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경우 한 학기 정도의 선행학습이 적절하지 않을까 한다. (이를 물론 예습이라고 해야 할지 선행학습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의견이 나뉘겠지만) 방학 동안에는 다음 학기에 공부할 것을 미리 맛본다는 기분으로 가볍게 (그러나 진지하게!). 학기 중에는 심화학습을 한다는 기분으로 깊이 있게 공부하는 것이 어떨까?




 다음엔 학습방식이 문제 풀이 요령에만 치우쳐 있지 않은가를 점검해야 한다. 상당수 선생님들은 교과 과정에 나오는 주요 내용의 원리와 응용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문제들을 유형별로 분류하고 그에 따른 처방을 내리려고 한다. 그러나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한 이런 방식은 극히 제한된 효과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특히 문제를 조금이라도 변형시켰을 때에는 “어, 이건 안 배웠는데?” 하는 반응이 나오게 마련이다.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만 얻어내려는 성급한 태도 역시 잘못된 선행학습의 대표적인 문제점이다. 어설프게 선행학습을 한 학생들은 인내심이 부족하다. 이런 학생들은 선생님의 설명을 끝까지 들으려 하지 않고 “그러니까 답이 뭐냐?”라고 질문한다. 이런 안타까운 현상은 문제를 푸는 과정을 몰라도 답만 제대로 찍으면 되는 평가 방식과도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기 자식은 감정이 앞서기 때문에 조바심에 자녀를 채근하지는 않았는가? 수학이라는 과목에서 선행은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선행을 따라갈 수 있는 체력과 자질을 갖춘 학생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은 학생에게 선행은 오히려 독이다. 이제 이차성징이 온 아들에게 아빠의 양복을 입힐 수는 없지 않은가. 




 이렇게 얘기하다 보니 내 신념(?)과는 반대로 선행학습의 문제점만 집중적으로 분석한 것 같다. 그렇지만 위에서 지적한 몇 가지만 주의한다면 적절한 ‘선행학습’이 질질 끌려가는 ‘미행학습’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이 아닐까?


 그러나 분명히 경계해야 할 것은 ‘앞집에 초등학교6학년 길동이는 벌써 고등수학을 한다던데, 옆집 철수는 중1인데 벌써 중3 수학을 한다던데’ 같은 흉흉한? 소문에 마음이 조급해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조카는 어떻게 되었냐고?


겨울방학 중 길지 않은 시간(일주일) 동안 이모집(내 집)에서 숙식하며 이모부 학원에서 학원 아이들과 같이 수업을 들었다. (물론 이모부 특혜로 더 많은 숙제를 주기는 했지만 그건 교육비와 퉁치기로 하고) 결과적으로는 식 적는 법, 그래프 그리는 법, 응용문제를 해결하는 원리까지 확실하게 해결하고 행복해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에 지속이 되었을지는…… 음, 들리는 소식으로는 솟아오르는 자신감으로 또 선행을 시작했다는데, 글쎄 자세한 뒷얘기는 다음에 하도록 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