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루비 Mar 16. 2024

자기주도 학습의 허상

강제를 자발적으로 강제하진 말자-현혹되지 마소


자기주도 학습의 허상




지난번 조카의 얘기를 했더니 우리 사랑스러운 조카의 안부와 뒷얘기를 궁금해하며 물어보는 분들이 있다. 


이번 명절을 보내면서도 조카를 팔아서 사욕을 채운 비정한 이모부로 비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자기 험난한 인생을 건사하기에 이모부 따위(?)는 신경 쓸 여유가 없어 보였다. 


언제나 설 세배로 용돈을 쥐어주며 건네는 덕담이라는 건 그다지 창의적이지 않다. 


꼰대력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 건강하고, 공부 열심히 하고,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고 쏼라쏼라…’


참 고리타분하기 그지없게도 이번 명절에도 같은 소리를 하는 이모부를 녀석은 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연기였나? 흠…)


그런데 나만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지 않나? 모든 어른들이 다 슷비한 얘기를 비슷하게 해대니 조카는 나중엔 공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단다. 공부 잔소리가 제일 듣기 싫단다.


그런데 한 번은 생각해 보자 조카야!




그럼 니가 알아서 공부하면 안 되겠니? 




내 사랑스러운 조카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 자녀들이 남들 다하는 공부를 알아서 제발 ‘자발적’으로 해주길 바라는 게 학부모의 마음이 아닐까?


조금만 더 비약하자면


공부나 숙제, 성적, 학원 같은 공부에 대한 잔소리만 없어도 우리는 자녀들과 좀 더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기만 하면 양말을 뒤집어 벗든, 자기 방 청소를 안 하든, 이성친구를 사귄다 하더라도 좀 더 관대하게 바라볼 수 있을 텐데…(아닌가?ㅎㅎ)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자발성이란 말에는 아이러니한 부분이 존재한다.


사실 자발적이 되었으면 하는 존재는 이미 자발적이지 않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자발적으로 해’라고 말할 때는 이미 자발성이 없다는 것이다.(하, 뭔가 어렵다…)


예컨대 유튜브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찾아서 ‘자발적’으로 보지만 공부는 그렇지 않다는 것,


게임은 하지 말라고 말려도 ‘자발적’으로 알아서 하지만 숙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


그러니까 우리 자녀들은 공부에 있어서 만큼은 자발적이지 않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된다는 걸 얘기하고 싶다.


왜일까? 공부는 유튜브를 보는 것과 게임을 하는 것처럼 재미있지도 않고 내가 선택할 수도 없으며 힘들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힘든 건 견디고 참고’, ‘힘들지만 그냥 하는 것’이라는 걸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일찍부터 주장해 왔다. 


바로 그런 성취를 이루어 내고 맛본 아이들이 또 다른 성취를 맛보기 위해 스스로 동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성취의 핵심은 이것이다. 


바로  ‘힘들고 하기 싫지만 견디는 것’




물론 공부를 즐거이 스스로 찾아서 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그런 경우는 본인이 필요를 절감했거나 공부가 필요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경우이다.


예컨대


'롤'이라는 게임에 진심인 우리 학원의 한 녀석은 승급전이 중요하다면서 연습장에 수식을 적어가며 데미지 계산을 하던데 나는 무슨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줄 알았다.


또 자전거에 푹 빠진 어떤 학생은 자전거 메이커별, 용도별 가격과 무게, 사양까지 줄줄 읊어내기도 했다.


대단한 녀석들이지 않나?


하지만 불행히도 이토록 자발적인 공부를 하던 아이들은 학교 공부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내가 선택하지도 원하지도, 흥미를 느끼지도 못하는 공부이기 때문이다.


부디 즐거운 공부, 재미있는 공부라는 문구를 아이들의 학교 공부에 대입하지 않기를 바란다.(현혹되지 마소)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는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선택한 적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배우는 것이지.


하기 싫은 일을 강제로 하게 되는 아이들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도 않을 것이다.


강제로 끌려간 군대에서 즐거운 군생활, 재미있는 군생활을 하라고 한다면 가능한 일인가?


명절에 시댁에 가서 즐거운 제사상 차리기, 재미있는 시부모 모시기가 가능이나 한 일이냐고.




힘든 일은 흥미나 즐거움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절대.


더군다나 장기 레이스인 중고등 시기의 공부라면 더욱.


그냥 무조건 하는 것이다.


그냥 해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삶의 루틴 속에 집어넣는 것이다.


왜 공부해?라고 물으면 누구나 그럴듯한 이유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들이 듣는 아이들에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설득이 가능할까?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그냥 해야 하니까 해!’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작금의 학부모들이라면 분명 학창 시절 입시지옥, 입시전쟁을 겪고 자란 부모 세대들일 것이다. 


‘행복은 성적순’이라는 말에 반항감을 품고 살아온 만큼 우리 아이들에게만큼은 공부에 대한 고통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매일의 규칙적인 생활이 우리의 삶을 바꾸고, 매일 하는 운동이 우리의 건강을 지킬 힘이 되듯 우리 아이들에게 있어서 공부에 대한 자세와 습관은 더 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우리가 근육을 만들 때에도 자신의 체력과 수행력에 맞는 운동부터 시작하듯 초등 저학년부터 (초등 1~2학년의 집중력은 20분 정도이다) 매일 하루 20분~30분 정도를 집중력 있게 앉아서 하도록 만드는 것이 공부 근육을 만드는 첫 단계이다. 그 후 아이의 학습 정보를 섬세하게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조금씩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학령 별로 할 말이 더 많긴 한데 각설하고)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는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선택한 적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배우는 것이다.




강조하자면 공부는 억지로 하는 거다.


공부를 통해 알아서, 안 것을 이해하고 통합해서 몸에 장기기억으로 넣는 것.


굉장히 긴 과정이고 어려운 과정이다. 에너지가 많이 들고 힘들다.


처음에는 abc를 기쁘게 배우던 아이가 단어가 많아지고 문장이 되면 당연히 하고 싶지 않다.


모든 공부가 그렇다. 하고 싶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해야 되는 것이다.


직장 다니는 부모의 마음이 다 그렇지 않은가. 바쁘고 일이 많을 때 그만두고 싶어질 때 미련 없이 두 손 털고 그만 둘 수 있는가? 아닐 것이다. 


공부는 그렇다는 것을 그렇게 인정하면서 배워가는 것이다.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건 항상 한계를 넘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누가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한계를 넘는 고난한 길을 걷고 싶을 것인가.




때문에 공부는 억지로 하는 것이다.


즐기면서 재미를 느끼면서 하는 공부에 대한 허상을 버리는 것이 첫 번째 관문이요.


아무 생각 없이 공부하게끔 만드는 것이 두 번째다.


때문에 초등학교 시절부터 너무 공부에 닦달할 필요는 없지만 반드시 공부는 하기 싫은 것이고 긴장하며 해야 되는 것이라는 것을 경험케 하며 알려주어야 하고, 반면에 그것에 성취를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서두로 돌아가자면,


부모님들이 “자기주도 학습을 해라”라고 할 때부터 이미 자기 주도는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혹시나 우리 아들과 딸들이 ‘엄마 나 이렇게 해 볼게’라고 말을 한다면 바로 그게 자기 주도적 사고이며 주체적 행동인 것이니 따뜻하게 안아주고 칭찬해 주자.


'공부는 재미있는 것이다. 공부는 즐거운 것이다'라는 문구에 현혹되어 뭣이 중헌 지를 모른 채


자발성으로 포장하여 아이들에게 가혹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발성을 오해하여 아이들을 세뇌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제는 부모도 아이들에게 솔직해져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공부는 그냥 하는 것이다’, ‘절대 즐겁지 않다’, ‘엄마가 그것을 즐겁게 만들어 줄 수도 없다’라고 인정하고 솔직해지자.




학교 공부와 일정량의 숙제는 당연히 그냥 이유 없이 해야 되는 것이다.


크게 도와줄 필요도, 달랠 필요도, 혼을 낼 필요도 없이 그냥 하는 것이다. 이런 인식이 아이에게 심어진다면 갈등하고 화낼 필요도 없어진다.


화를 내고 무섭게 해서 만드는 공부 분위기는 어느 순간 순식간에 효과가 없어진다.




어머니가 고민 없이 그냥 하루 세끼를 아이들에게 먹이듯이


일단 공부하는, 학습하는 맷집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성적은 그 다음에 훨씬 더 섬세한 관찰력과 다양한 정보, 우리 아이가 어느 정도로 소화할 수 있나를 종합적으로 참고해야 하는 것이므로 나중에 기회가 될 때 다루어 보겠다.




그러니까 성적 때문에 고민하는 사랑스러운 우리 조카에게 들려줄, 아니 사실은 우리 처제에게 들려줄 얘기를 차마 얼굴 보고 하기에는 눈물이 날 것 같아(?) 남몰래 주절거려 보았다.


사실 처제가 물어볼 다음 질문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긴 한데


다음에 계속하기로 하지 뭐…


일단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




이전 01화 수학 선행학습의 허와 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