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버전의 등장
패러디(parody)란 전통적인 사상이나 관념, 특정 작가의 문체를 모방하여 익살스럽게 변형하거나 개작하는 수법이다. 또는 기성 작품의 내용이나 문체를 교묘히 모방하여 과장이나 풍자로서 재창조하는 것으로 때로는 원작에 편승하여 자신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이를 이용하기도 한다. 패러디는 대체로 친숙한 것과 낯선 것을 섞고 고상한 것을 상스러운 것과 비비고 딱딱한 것을 부드러운 것과 버무리는 기술로 특히 우리들의 문화유전자에 깊숙이 배어있는 것 같다.
개미와 베짱이가 급속도로 확산된 시기는 산업화가 추진되던 그때였다. 그때는 근면, 성실, 부지런함이 최고의 가치였다. 게으름을 죄악시하는 시절이었다. 우리나라든 외국이든 노동력 착취를 위해서 이 우화를 많이 권장했음은 사실이다. 결론은 어떻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이야기를 통해 개미는 좋은 친구, 베짱이는 나쁜 친구라는 인식이라는 것이다. 개미는 불확실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 현재의 삶과 행복을 포기하면서 사는 너무 안전만 추구한다는 것이 못내 이기적인 발상이다. 베짱이를 어떻게 생각할까? 예전에는 <딴따라>라고 부르면서 천대하고 무시를 했지만, 지금은 예술을 하는 문화인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인지 노래만 아니라 이솝우화의 이야기도 패러디한 버전이 많이 있다. 각국마다 서로 다른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의 새로운 버전이 등장하고 있다.
오늘은 이솝우화에서 읽었던 <개미와 베짱이>를 다시 읽어보기로 한다.
초등학교의 교과서에도 실린 이솝우화이다.
“부지런한 개미와 게으름뱅이 베짱이가 이웃에 사는데 개미는 더운 여름에도 땀 흘려 열심히 일하여 겨울양식을 넉넉히 마련하였는데 베짱이는 시원한 나무그늘에 앉아서 기타를 치며 즐겁게 노래만 불러 세월을 다 보냈습니다. 겨울이 오자 베짱이는 춥고 배가 고파 개미한테 가서 양식을 구걸했지만 거절당하고 주려 죽고 말았습니다.”이다. 어린 마음에 베짱이가 좀 불쌍하고
개미가 인정머리가 없어서 미웠다.
일본버전을 소개해본다. “겨울이 되어 눈이 내리자 베짱이는 먹을 것을 찾아 집을 나섭니다. 여름 내내 노래만 부르고 놀았던 탓에 비축해둔 양식이 한 톨도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베짱이는 개미에게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찾아가서 문을 두드렸다. 똑, 똑, 똑, 힘없이 두드렸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어 점점 세게 두드려 봤지만 아무런 인기척이 없어 베짱이는 문틈을 비집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됩니다. 여름내 모아들인 양식이 곡간에 그득 쌓여있는데 개미들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름 내내 일만 한 탓에 모두 지치고 병들어서 과로사로 숨을 거둔 것이었습니다. 베짱이는 신이 나서 배가 부르게 먹고 노래하며 겨울을 편안히 났습니다.”
베짱이는 개미의 수고에 감사하지도 않고 남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어서 미웠습니다.
미국 우화의 베짱이 역시 개미집 문을 두드리는 대목까지는 다름이 없지만 그 다음이 아주 기발합니다.
“배가 고픈 베짱이는 개미네 집을 방문하여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개미들은 들은 척도 안 하고 문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여름내 연주나 하며 노래만 부르던 베짱이는 욕만 먹고 쫓겨났습니다. 춥고 배고프고 설움에 눈물이 났습니다. 베짱이는 이러다 죽겠구나 하고 죽기 전에 즐거웠던 지난 여름날을 추억하며 기력을 다해 바이올린을 연주했습니다. 그의 연주는 유난히 슬프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여름내 일만하느라 음악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개미들은 비로소 베짱이의 음악에 매료되어 모여 들었습니다. 베짱이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재빨리 개미의 무리를 향해 <Ticket pleace!(입장권을 내라)>고 외쳤습니다. 결국 베짱이는 겨울마다 리사이틀을 열어 마이클잭슨 같은 큰 부호가 되었습니다.”이다. 한류스타가 좋은 예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옛 소련의 우화를 소개해보자. 위의 이야기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베짱이도 개미도 모두 굶어죽는다는 점이다. 구소련의 붕괴를 패러디한 이솝우화의 새로운 버전은 이렇다.
개미들은 밖에서 떨고 있는 베짱이를 보자 위대한 사회주의공화국의 이념을 전 세계에 고하기 위해서 플래카드를 걸고 환영합니다. “베짱이 동무, 이제 우리 집단 노동장에서 함께 일하고 함께 먹는 동무가 된 것을 환영합니다.”그러고는 베짱이를 당원으로 받아들여 성대한 파티를 열어주었습니다. 하지만 덩치가 큰 베짱이가 객식구까지 데려오는 바람에 며칠 안 가서 비축한 식량이 바닥나 버렸습니다. 그래서 겨울을 나기도 전에 그들은 모두 굶어죽고 말았습니다.
결국 파이가 없는 분배는 가난과 죽음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개미와 베짱이의 각 나라별 패러디를 읽으면서 어쩜 원작보다도 더 재미있고 깊은 의미의 교훈을 주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프랑스의 작가 라퐁텐의 우화에서는 비록 구소련의 우화와는 다르지만 개미와 베짱이의 두 개체가 서로 융합하는 상태까지 이릅니다. “당신이 여름내 노래를 불러줘서 우리는 고단함을 모르고 열심히 일할 수 있었습니다.”“자, 여기 당신 몫이 있습니다.”라며 음식을 나눠주며 베짱이와 공생하는 개미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제는 사회가 변화하고 문화의 변혁을 거치면서 베짱이가 개미를 압도하는 상황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음악만 하는 유명한 음악가들이 오히려 열심히 연구하고 생산하여 이익을 내는 사람들보다 훨씬 큰 부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일만 하는 개미가 아니고, 노래만 하는 배짱이가 아닌 이분법적 경계가 없는 일과 삶의 융합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한국판 패러디를 소개한다. 한국의 베짱이도 개미에게 찾아간다. 예상대로 엄청난 수모를 당한다. 베짱이는 지혜와 인내심을 발휘하여 개미와 정략결혼을 한다. 베짱이는 결혼을 하고서도 구박을 받는다. 세월이 흘러 베짱이의 아들 개짱이와 딸 베짱미를 얻게 된다. 개짱이와 베짱미는 부모의 우성을 유전 받아 열심히 일하면서 재미있게 즐기는 존재가 된다.
요즘 등장한 신조어“워라밸”을 연결시켜 주는 이야기로도 들린다. 일과 삶의 가치를 위해 어느 한 쪽에 매몰되지 않는 밸런스를 추구하고 있는 현실이다. “님도 보고 뽕도 따고”라는 속담처럼 노동+놀이관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이솝우화에서 나오는 개미와 배짱이가 하나로 융합되어 <개짱이>라는 말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생각한다. 이러한 개짱이 문화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이어져 재생산을 거듭하며 4차 산업이라는 신개념을 만들어내는데 일조하게 되었다. 화투장이나 만들던 닌텐도가 신개념 놀이문화를 만들어 세계 어린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본다.
패러디는 이처럼 전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할 수도 있고 원작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재미와 교훈을 줄 수 있기에 베낀다는 개념보다는 창작의 일부로 보아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제는 패러디란 이솝우화처럼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다양한 패러디가 자연스럽게 전개되기를 희망한다.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공격은 속 좁은 견해일 수도 있다. 음악도 전통문화도 패러디를 통해 더 큰 가치를 창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원작을 중시하면서도 재미와 이해의 깊이는 커질 수 있다. 어렵고 난해한 분야라도 새롭게 패러디하여 관객이나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어서 더 넓은 관심으로 이끌어낸다면 아주 보람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