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주인공입니다
미국 정치인 중 조지 그레이엄 베스트(George Graham Vest)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150년 전 ‘그의 가장 친한 친구’라는 정의로 재판에서 애완견의 죽음에 대한 손해배상을 이끌어냄으로써 유명해진 사람입니다. 사건은 피고인 목장주가 자신의 양을 괴롭히던 개를 죽인 것에 대한 원고의 손해배상 소송이었습니다. 그는 죽임을 당한 개가 단순한 반려견이 아니라 ‘그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정의함으로써 재판에서 승소할 수 있었습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의 판결을 이끌어 내었지만 어쨌든 그는 유명해졌습니다.
그는 남북전쟁에서 패한 남부의 정치인이기도 했습니다. 패자의 쓴맛을 본 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모든 혁명에서 패자는 반역의 죄를 지은 자가 된다. 왜냐하면 역사는 승자가 기록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승자의 편견으로 편파적으로 쓰여진다."
우리가 아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끔찍하고 황당한 말이지만 우리는 이 말에 수긍하고 살았고, 맘 편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더 편안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의 판단에 동조하는 것이 더 편안한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승자의 말에 환호했고, 그가 제안하는 세상을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이겼고, 올바른 우리의 판단은 아름다운 세상을 이어주는 힘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정의로운 이들의 승리로 귀결된 세상은 이상하게도 요상합니다. 정보의 공개념화, 누구도 정보를 독점할 수 없는 세상, 누가 누구를 속일 수 없는 참 좋은 세상을, 지난 어느 시기보다 행복한 세상을 우리는 맞이했음에도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을만큼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지금 우리 사는 세상을 행복하지 않다고 말들을 합니다. 분명히 우리 모두는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며 이기고 있는데 말입니다. 크게 욕심을 내지도, 이기적으로 자기 욕심만 중요하다 말하지 않았던 우리 대다수 민중은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더 가난해졌습니다.경제적으로 더 어려워졌다는 말입니다. 극소수 엘리트들의 성공 스토리를 들으면서 우리는 우리의 안일과 나태함을 꾸짖는 삶을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살면서도 맨날 반성만 하면서 말입니다.
열심히 살면서도 매 순간 반성해야 하는 세상의 분위기 때문에 우리는 늘 패배의 쓴맛을 한잔의 소주에 녹이며 살아왔습니다. 스스로 이기지 못하니 이기는 것으로 보이는 돈많은 그들을 추앙하며. 그들을 응원하고, 그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며 말입니다. 미디어를 통해서 그들의 관점이 우리에게 패자의 프레임을 씌운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말입니다. 이기는 것보다 내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사는 게 중요하다. 뱁새가 어떻게 황새를 따라가냐는 그들의 프레임에 우리는 늘 무릎을 꿇어 왔습니다. 엘리트들은 그렇게 만들고 우리는 순종했습니다. 그들은 늘 승자였고, 많은 우리는 늘 패자였습니다.
정의롭고 정겨웠던 우리 모두가 패자가 되어온 시간들이 우리의 지난 역사입니다. 함께 하는 연대의 의식이 누구보다 강했던 질래야 질 수 없는 주인의 삶을 살아왔던 우리 모두인데 말입니다. 양극화된 세상, 소수의 초엘리트들이 다 가져가고, 지들 마음대로 주장하는 세상이 아니라 우리 살아가는 삶, 서로 부대끼는 삶 속의 작용들이 이 세상의 중심이고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는 우리들의 삶, 늘 이겨왔던 승자들의 삶을 증명해 내는 주인공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준비하는 내러티브. 우리 다수, 우리 보통의 사람들이 세상을 만들어 간다는 내러티브의 구성을 위해 평범한,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우리 중 하나가 주인공이라는 설정을 보고드립니다. 우리는 늘 이겨왔고, 어떤 시간이 와도 이겨낼 것입니다. 엘리트들은 우리를 패자라 불렀지만 우리는 승자였고, 늘 승자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지면 역사의 반역자, 우민한 대중으로 몰리게 됩니다. 우리가 이겨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