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말하고 다짐하는데 굳이 나이를 들먹일 필요는 없습니다. 누구라도 자신의 삶에서 도전을 말하는데 나이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삶에서 소망, 그리고 꿈이라는 것은 질과 양을 상대적으로 비교할 수도 없는 것이라 나이를 따질 이유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나이를 언급하며 도전기를 이름한 것은 우리 세대, 50대의 마음가짐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대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50대는 한국 인구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 세기만 뒤로 가더라도 50대라는 나이는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는 나이이거니와 손자 세대에 밀려 대부분 할아버지로 불려야 하는 세대였는데 말입니다.
그래요. 지금 대한민국에는 50대가 가장 많이 살고 있습니다. 많은 수를 기반으로 무언가를 주장하려는 것은 이성적이지도 합당하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세상을 주도하기보단 뒤로 물러나야 하는 물리적인 나이라는 것을 부정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숫적 우세를 말해보는 것은 다른 어떤 세대보다 공감하고 응원해 줄 친구가 많은 세대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함께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왔던 시기가 그래도 좋았다는 말을 공감해 줄 사람이 대한민국의 어느 세대보다 많습니다. 우리 오십대는...
어느 세대나 고유의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 세대도 특별한 경험을 함께 했습니다. 경제적 부족함이 풍족함으로 바뀌는 순간을 경험했으며, 외환위기라는 고통도 함께 경험을 했습니다. 우리 세대에게 젊은 시절, 혼밥과 혼술은 계산적인 일본 사람이나 하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분명 같이 먹고 마셔야 더 맛있다는 것이 모두의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지금은 혼밥 혼술이 일반적이며,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지만 말입니다. 우리 젊은 시절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지금은 당연한 것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정이라는 것도 예전에 비해 많이 옅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나온 날들을 더 그리워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지하의 '오적'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엘리트라 불리는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을사오적에 빗대어 국민들의 적이라 표현한 풍자시입니다. 우리 젊은 시절에는 그들 엘리트들이 국민의 적으로 묘사되는 시를 읽으면서 엘리트들의 오만을 견제했으며, 그들의 특권의식들에 제약을 가했습니다. 속으로는 부러워했을 지언정 겉으로는 같은 대한민국인으로써 평등하고 동등함을 말했으며, 공공의 이익에 합당한 행동을 하지않는 그들에게 비웃음을 날릴 호기로움이 있었습니다.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생각, 다만 우리의 삶은 어느 정도 운명에 달렸다는 생각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덜 이기적이었습니다.
어느 때인가부터 그 시절 비난의 대상이었던 엘리트들이 한없이 존경받고 부러운 대상이 되었습니다. 공공의 이익 실현, 칭찬받을 역할과 책임은 없이 권리만 취함에도 그들은 추앙되었고, 그들 가족은 좋은 가문이 되어 사람들의 존경과 부러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의 아이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표현되며, 어린 소녀와 소년들에게 한없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런 세상을 조금이라도 힐난하려고 하면 세상을 삐딱하게 본다며 역으로 힐난을 받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 젊은 날, 지난 날이 정의롭고, 좋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지난 그 시간이 지금보다 더 자연스러웠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우리는 자연을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세계라고 배웠습니다. 동물의 세계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사냥의 선정성이 자연의 질서라고 자연스럽게 생각을 굳혀 왔습니다. 강한 육식동물의 사냥 장면이 오직 자연의 질서라는 믿음을 가지며 말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경제적 양극화에도 비교적 관대합니다. 그럼에도 우리 세대는 서로 돕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습니다. 서로 도울 줄도 알았습니다. 노랫말 그대로 그땐 그랬습니다. 자연계에서 사냥의 선정성은 흥미롭지만 자연의 시간 중 극히 일부입니다. 선정성만 벗어나면 훨씬 더 많은 장면과 감동의 이야기가 존재하는 것이 자연이고 자연스러움입니다.
사자에게 잡힌 동료를 구하기 위해 애쓰는 물소, 포식자이면서 피식자의 새끼를 돌보는 맹수, 먹이 행위가 끝나면 평화로운 시간을 공유하는 포식자와 피식자들. 먹고 먹히는 관계가 아닌 서로 돕는 것이 생태계의 생물들의 자연스러운 본능입니다. 그런 이유로 자연이 자연스럽게 유지되어 온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삶을 위해 자연을 말하면서도 부자연한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들이 배우고 익혀야 할 진리입니다. 서로 돕는 것이 인간을 포함한 자연계 모든 생물의 본성이라고. 그리고 지난 시간 우리는 지금보다 자연스러운 삶을 살아왔습니다.
과거에 비해 늘어난 삶의 시간으로 아직 50대는 살아계신 부모를 봉양해야 하며, 어려운 경제 여건 속의 자식들을 돌보아야 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가족 구성의 방식이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그 역할과 책임이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을 수행하는 방식만이 달라졌을 뿐입니다. 좋은 것은 이어내고, 부당한 것은 개선해 온 과정에서 축적된 인류의 지혜는 오십대에 절정을 이룹니다. 그래서 오십대가 희망의 세대가 될 수 있고 되어야 합니다. 어쩌면 남녀 갈등, 세대 갈등, 지역 갈등, 계층 갈등으로 부자연스럽고 불안한 세상의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세대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오십대가 보냈던 유년과 청소년의 시기, 그리고 한국 현대사에서 배놓을 수 없는 1980년. 준비하는 영화의 시대적 배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