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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그리고 윈스턴 처칠

by 할수있다

대통령의 계엄령으로 안그래도 불안하고 어지러운 세상이 더 혼란스러워졌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진영논리가 사람들을 갈라놓고 있는 세상이라 당분간 소란스러움은 가시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혼란스러움을 틈타 자기의 이익을 높이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정치인들이죠. 의회를 견제하고, 국민의 삶을 지켜야 할 대통령이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다보니 국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했습니다. 대통령의 지지율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렇다고 민의를 반영하고,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의원들이 국민에게 높은 신뢰를 주었는가를 생각해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국민의 기대와 믿음을 얻기 위해서 경쟁하는 여야의 정치세력은 누가 잘한다는 기준으로 경쟁하기보다는 누가 더 못하냐의 기준으로 경쟁을 해왔습니다. 계엄령에 관한 집권여당의 대통령의 실책도 못한다라는 기준이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겠다는 약속이나 선언은 여야를 막론하고, 거짓 약속에 가깝습니다. 지나온 우리들의 경제, 문화, 사회의 삶을 보면 그러합니다.


개헌을 통해 의원내각제를 꾀하는 세력이 있을 것이고, 대선을 당겨 정권을 창출하려는 세력이 있을 것입니다. 혼란스러운 탄핵 정국에서 정파 기관지의 역할을 하는 언론은 또 지지 세력을 대변하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변화하는 국제질서, 경기침체의 암울한 경제 환경에도 그들 무리들의 이익을 우선하는 태도를 보이겠죠. 국민들을 위한 결정이라며, 국민의 뜻이라는 공허한 구호와 함께 말입니다. 경제, 사회의 힘든 시기, 협력이 아니라 분열의 시간을 가져야 될 것 같습니다. 안타깝게도 말입니다.


올해 80년 계엄령의 소재로 흥행한 영화가 있었습니다. 서울의 봄, 혈압이 오르는 영화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대머리 권력자, 그에 대한 분노가 흥행의 대표적인 요인이 되었습니다. 여기 대머리 권력자가 하나 더 있습니다. 윈스턴 처칠. 이 사람 사악하기 그지없는데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대머리 권력자는 한국의 대머리 권력자와는 다르게 영웅으로 존경의 대상이 되었고, 영화의 선한 주인공이 되어 흥행을 이끌었습니다. 아카데미 등 영화제 관련 상을 무지하게 많이 받은 영화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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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아시다시피 영국은 전 세계 170개국 이상을 자유와 근대라는 이름으로 침략한 나라입니다. 최고의 함선 함포 기술을 가진 그들은 먼저 함포를 마구잡이로 피침략국에 쏘는 무력을 일삼았습니다. 2차 세계 대전 때 독일이 폴란드 침공했다고 정의의 이름으로 영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가했습니다. 자국이 남의 나라 짓밟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타국의 전쟁에 간섭하는 모습은 그리 바람직해 보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들의 침략에 대한 피해국들에게 제대로 된 사과나 배상은 전혀 없었습니다. 영국으로 인해 근대화되었다는 주장만 하며 말입니다.


더구나 병참에서 로스차일드, 록펠러의 대출로 우위에 있던 영국이었기에 1차, 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과 연합국의 승리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전쟁은 지속 가능한 병참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놓고 영국과 미국, 연합국의 병참에서의 승리가 아닌 정신의 승리였다고 개뻥을 치기도 했습니다. 처칠의 영화에 나오는 주장이기도 합니다.


그래요. 영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처칠은 위대한 정치가이자 영웅일 수 있겠지만 피침략국이나 식민지 국민들의 입장으로 보면 악마도 저런 악마가 없을 것이라 혀를 내두를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처칠이 보어 전쟁, 인도 전쟁, 2차 세계대전 등에서 수백만명을 직간접적으로 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웅으로 불리는 것일까요. 한 두명을 죽이면 살인자이지만 수백만 명을 죽이면 영웅이라고 말입니다. 처칠은 살육에 있어 민간인을 가리지 않았고, 살육 방법도 잔인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처칠을 위대한 정치인, 노벨문학상을 받은 감성적 작가로 배웠습니다. 서방 승자의 역사를 그대로 배워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방 영화의 개연성을 가지고 있는 내러티브, 배우의 연기, 음악, 미술 등의 요소를 통해서 그들의 본 모습이 아니라 가공된 모습을 받아들임으로써 서방에 대한 동경을 이어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서방의 제국주의를 흉내낸 일본은 그렇게 비난하면서도, 잔인했던 서방의 제국주의에 대해서 한없이 너그러운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서방 중심의 단극화가 무너지고 다극화가 진행되는 것이 지금의 전쟁과 갈등 구조가 아닐까 합니다. 브릭스가 G7의 생산성을 이미 앞섰고, 서방에 비해 지속 가능한 소비 시장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우리는 이런 세상의 변화를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승자의 관점이 아닌 패자의 관점을 함께 생각할 때 우리는 더 지혜로워질 수 있습니다.

지금의 위기를 헤쳐가는 것에도, 돈을 더 벌 수도, 삶의 가치를 깨닫는 것도, 스스로의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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