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서 작성을 앞두고
우리들의 1980년을 이야기한다면 계엄령을 빼놓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1980년 내내 계엄령이 유지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준비하고 있는 영화는 계엄 치하의 소란과 소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주 우연의 일치이지만 준비하는 시나리오와 기획서를 작성하는 지금의 시기에도 계엄령의 여파를 경험하고 있기도 합니다. 좋은 징조라 여기고 싶은데 세상이 너무 시끄럽기만 하네요.
혼란스러운 시간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마치 세상의 사람들이 반반으로 나뉜 채 살아왔거나 살아가야할 것처럼 서로 으으렁대고 있으니 말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세상의 편가르기를 쉽게 받아들이며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살아오게 된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도 누군가 만들어 놓은 경험을 제 것인양 받아들이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좌와 우, 크게 두 개로 나눈 프레임. 그 속에 속하지 않으면 정상이 아니라는 불안감을 느끼면서 말입니다.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고 한 쪽으로 치우치지도 아니한 떳떳하며 변함이 없는 상태로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은 이상적인 자세인 중용을 덕목으로 살아온 우리임에도 좌우의 프레임 앞에서는 쉬이 중용의 미덕을 받아들이고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세상을 선과 악, 좋고 나쁨으로 나눠보려는 이분법적 사고에 우리들이 길들여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래서 우리들은 습관적으로 자신을 보수, 혹은 진보라고 구분지어 나누어 인식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의무 교육과 시험을 통해서 생각하기보다는 외우기를 강요받았습니다. 정보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빠른 정보처리를 위해 주어진 정보를 처리하는데 익숙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주어진 정보를 제공하는 전문가들을 맹종하는 습관이 생겨버렸습니다. 당연히 스스로 생각하고, 능동적으로 정보를 찾는 역량은 점점 더 감소하고 말았습니다.
달랑 지도 하나 들고 전국을 누비던 시절은 옛말이 되었습니다. 예전의 능동적 사고와 탐색의 능력은 네비게이션으로 인해 저하되어 네비없이는 감히 먼 길을 나서지 못하는 무능력자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해서 문제를 해결하던 능력 대신 정보 검색 능력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어느새인가 전문가 집단이 나타나 정보를 남발하고 있고, 우리는 그들이 만든 정보를 신뢰함으로써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을 퇴화시키고 있습니다.
스스로의 생각이 아니라 남의 사고와 생각을 받아들임으로써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갇혀 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정보화 시대, 빠른 의사결정을 위해서 단순화 시켜놓은 정보와 조작된 지식 속에 우리는 사고하는 인간의 능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계엄 소동이 진행되는 이 시간, 정치인들이 만들어 놓은 두 개의 큰 프레임에 우리들이 갇혀 있는 것을 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 보수 유투버, 진보 유튜버들에 엄청난 후원을 해대며 우리의 문제를 사고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진짜 그런 것 같습니다.
친미냐 반미냐, 친중이냐 반중이냐로 나뉘는 행태는 조선 시대 붕당 정치의 모습을 닮아 있습니다. 조선이 망한 지도 한세기를 훌쩍 넘었습니다. 그럼에도 친중 정치인이니 배격해야 한다, 친미 정치인이니 견제해야 한다며 선을 긋고 편가르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강대국인 미중 경쟁이 치열하면 반대로 약소국인 한국은 운신의 폭이 넓어질 수도 있습니다. 덩치 큰 두 놈이 싸우니 편들어 주는 놈이 고맙게 느껴지는 이치입니다. 평소에는 씨알도 안 먹힐 요구가 먹힐 수도 있는 것입니다. 덩치 큰 두 놈 모두 제 편이 필요한 시기이니까요.
민중의 삶에서 분쟁의 대응 방식은 편들기가 아니라 중재였습니다. 갈등의 상황에서 편을 가르는 게 아니라니라 상호 분쟁을 조정하는 일이었습니다. 때로 전쟁이라는 극단에 달한 시기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민중 공동체는 분쟁보다는 평화를 선호해 왔습니다. 민중의 삶에서 분쟁은 잃는 것이 많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아왔기 때문입니다.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마냥 지켜보고 등이 터질 노릇이 아닙니다.
친미 인사라면 한국의 상황을 미국에 이해시키고, 친중 인사라면 한국의 입장을 중국에 양해를 구하고 그러면서 한국이 더 나은 상황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편 갈라서 싸우는 대신 말입니다. 트럼프의 자국 우선주의처럼 우리도 그런 거 해야하는 거 아닐까요. 그런 거 하라고 머리좋은 사람들 우대해가며 정치인의 자리를 맡긴 것이니 말입니다.
약육강식과 투쟁사관이 인류의 존속을 이끌어 온 것이 아니라 상호부조를 통해 어려운 환경에서도 인류가 살아왔음을 믿고 말하고 싶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환경 속에 마음대로 안되는 세상을 이 악물고 버텨낸 민중의 삶이 세상의 근간이었다고, 그 삶들이 자연스러운 우리들의 삶이라고 말입니다.
기획은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고민의 함량을 높여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