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우리가 만드는 시대정신

by 할수있다

세상이 하도 시끄러워서 기획의 방향을 쉽게 정하고 길을 내기가 어렵습니다. 세상의 일들이나 현상이 하나로 명료하게 나타난다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지만 세상사는 그렇게 단순하지도 않고 복잡합니다. 우리가 아는 많은 독재자들이 있습니다. 모두 민주주의라는 개념에서 비난을 받지만 그들이 이룬 경제적 성과는 칭송을 받기도 합니다. 히틀러, 후세인, 카다피, 푸틴, 박정희 등은 독재자로 비난을 받았지만 파탄이 난 국가의 경제를 재건했던 사람들이기도 했습니다.


서방의 관점에서 독재자였던 그들은 대부분 외세로부터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시킨 사람들이었습니다. 1차 서계대전 이후 갚을 수 없을 정도의 전쟁배상금으로 초인플레이션이 일어난 독일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운 히틀러, 서방 기업들이 사유화한 유전을 국유화로 전환시켜 국민의 삶을 개선시킨 후세인과 카다피, 그리고 러시아를 재건한 푸틴도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 시켰습니다.


진영논리로 나뉜 한국에서 박정희는 한 쪽 진영에서는 독재자라는 비난을, 다른 진영에서는 경제 발전의 공로자로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같은 사람이지만 진영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셈입니다. 관점의 바름과 그름을 떠나 한 인물에 대한 평가도 복잡성을 가집니다. 그러니 세상사에 대한 평가와 표현에 있어 어렵고 힘듦은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신헌법 제정 이전 직선제였던 6, 7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는 전라도에서 35%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윤석열은 12~14%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물론 80년 오월의 상흔, 경상도의 묻지마 지지에 따른 반응 등이 요인이 된 결과이기 때문에 직접 비교하기가 적절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주요 중공업의 경상도 유치 등에 따른 전라도 홀대에도 불구하고 박정희의 득표율이 높았다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극심한 지역, 진영에 따른 분열이 덜 했던 시기였습니다. 그 시절 전라도 사람들은 지역 이기를 떠나 섬이 많은 전라도의 지형상 중화학 공업을 유치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트럼프의 정책은 하나의 지구를 주장하던 세계화에 균열을 촉진시키고 있습니다. 세계화 정책의 하나였던 기후협약과 국제보건기구(WHO)를 탈퇴했고, 미국의 국제개발기구(USAID)도 폐쇄했습니다. 더 이상 세계화에 따른 질서를 유지하지 않겠다는 의도입니다. 이와함께 반서방국가들의 독자적인 움직임도 강해지고 있습니다. 세계화의 주자였던 서방 국가들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는 시기입니다. 우리에게 적용되고 있던 패러다임의 변경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제적 규칙이 아니라 자국의 이익이 중심이 되어야 할 중요한 시기임에도 둘로 나뉜 한국은 사대주의의 끝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친미를 해야한다 친중을 해야한다며 말입니다. 한국의 공장을 자국으로 가져가려는 미국과 우리의 영해를 제 집처럼 드나드는 중국입니다.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시 하는 그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요.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사대를 통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시켰던 엘리트들을 대신해 늘 외세에 저항한 사람은 민중들이었습니다. 동학농민운동의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론을 둘로 분열시킨 진영논리가 기승을 부리지만 80년 이전에는 지금보다 진영논리가 덜했습니다. 박정희의 득표율은 그것에 대한 작은 증명입니다. 80년 이후 두 정치세력이 해방 이후 진영논리가 우리 사회를 갈라놓고 서로 옳다 싸웠지만 우리 공동체의 삶은 질적으로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물질적 성장을 무시하면 삶의 질은 엘리트들의 말처럼 나아지지 않았으며 자랑했던 경제적 성과의 토대도 위태로운 시기를 맞았기 때문입니다.


좀 더 자주적이고,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었던 80년의 이야기는 과거를 통해서 미래를 고민해 볼 동인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절, 대기업의 독점도 덜했고, 경쟁보다는 서로 돕는 의식이 강했으며 개인의 독립보다는 함께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던 때였습니다. 엘리트들이 정의해 놓은 세상과 다르게 말입니다.


1984의 작가, 조지오웰은 승자의 역사를 비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기록은 파기되었거나 위조되었고, 모든 책은 고쳐서 다시 쓰였고, 모든 그림은 다시 그려졌고, 모든 조각, 거리, 건물들은 이름이 바뀌었으며, 모든 날짜는 변경되었다. 역사는 멈췄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준비하는 영화의 주인공은 보통 사람, 서민 대중입니다. 그는 영웅도 아니고,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우리들의 성정을 그대로 가진 사람이며, 약함으로 서로 도울 줄 아는 사람입니다. 80년으로 돌아간 그가 하찮은 민중으로 왜곡된 우리의 과거를 바로 잡아줄 것입니다. 엘리트들을 대신해 우리들의 현재를 지배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 내는 시대정신입니다.

keyword
이전 16화시대정신, 크렘린의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