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우전의 결말이 이상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들리던 전황과는 다르게 러우전의 종결에 관한 회담이 러시아와 미국, 양국의 회담과 협의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직도 국내 언론은 러우전이 지속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가 잘 싸우고 있다는 말들이 언론을 통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러우전 관련 러미 회담이 진행된 이후에는 논조를 조금 바꾼 말들이 나오고 있기는 합니다. 러우전에 관한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헷갈릴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한국은 러시아를 적으로 강조하거나 불곰이라 부르며 조롱과 멸시를 해왔습니다. 러시아를 적으로만 간주했던 국내 언론들이나 많은 한국 사람들이 헷갈릴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서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러시아에 대한 두려움, 루소포비아가 있는 것처럼 한국 사람들도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서방의 프레임으로 만들어진 러시아의 왜곡된 정보만 접했기 때문입니다.
바이든 정부 시절, 미국은 서유럽 국가들과 함게 젤렌스키의 우크라이나를 뒤에서 지원했습니다. 어차피 자국민들이 희생되는 것도 아니고 돈과 무기를 제공하면 우크라이나인들이 대신 싸워서 싸워줄 테니 말입니다. 혹시나 우크라이나가 서방의 지원으로 러시아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면 러시아의 천연자원 광물들을 차지할 수 있다는 욕심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욕심은 감추고, 제국주의 러시아의 위협을 막아야 한다는 핑계만 강조했습니다. 사회주의 종주국이었던 소련과 러시아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국가인데도 말입니다.
젤렌스키의 우크라이나는 친러시아 성향의 대통령을 몰아내고, 천만에 달하는 자국의 국민, 러시아인들을 학살하고 괴롭혔습니다. 우크라이나 국민 중 30%에 달하는 러시아인들이 푸틴에게 도움을 청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나토 가입을 천명하고, 나토와 함께 러시아를 자극하기도 했습니다. 냉전 종식 당시 나토는 단 1인치도 러시아로 동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나토의 동진은 계속되었고, 마침내 우크라이나까지 영향력을 넓혀왔습니다.
비극적인 전쟁을 일으킨 부분에서 푸티놔 러시아는 비난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전쟁의 배경에 대한 몰이해를 바탕으로 비난만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비난 이전에 잘잘못을 따져야 전쟁이라는 비극이 다시 세상에 나오지 못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유주의, 자본주의 국가라는 진영에 갇혀 세상 바로보기에 소홀한 것 같습니다. 러시아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택한 자본주의 국가임에도 아직도 사회주의 종주국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러시아를 적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진영 논리를 만들어내고, 같은 진영이 아니면 적으로 간주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지금의 시국이 어지러운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흔히 우리는 무슨 잘못을 했을 경우 핑계를 댑니다. 상황을 나쁘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을 합니다. 내가 이러는 것은 다른 나쁜 놈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지, 내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서방의 자유 진영은 늘 사회주의 국가들을 핑계로 삼았고, 제3국의 지도자들을 핑계로 삼아왔습니다. 우리는 그 말들을 믿었고, 서방 중심의 단극화된 세계를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살아와야 했습니다. 러우전은 그런 세상을 다극화로 이어주는 사건이 될 것입니다.
부계 유전자 분석을 통하면 R1a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은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슬라브족이고, R1b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은 서유럽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R1b의 유전자를 가진 서유럽 사람들은 대단히 호전적이며 주위의 사람들을 해치는 부분들 것에 크게 개념 개의치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 세계의 모든 나라들을 침략하는 제국주의를 수행하기가 수월치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들은 많은 곳에서 제노사이드 등 약소국의 민족들에게 엄청난 범죄와 잘못을 저질렀고, 승자의 관점으로 그것을 감춰왔습니다. 서방은 문명의 정원이고, 비서방은 야만이라 말하며 말입니다.
서방의 제국주의 시절, 아프리카 콩고로 간 벨기에 사람들은 아프리카 식민지 주민에게 하루 10kg의 고무를 고무 채취를 강요했습니다. 10kg의 목표량을 채우지 못하면 자식들의 손목을 자르거나 발목을 자르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손목이 잘린 자식에 발목까지 잘리게 할 수 없던 아프리카의 한 아버지는 삶에서 엄청난 고통을 맛봐야 했습니다. 서방의 제국주의 아래에서 고통을 받았던 피식민국가와 민족의 아픈 단면입니다.
러시아의 R1a 유전자는 비교적 온화하고, 상호협조가 잘 되는 특성을 가진 것으로 분류됩니다. 러시아가 시베리아를 포함한 광활한 영토를 병합, 확장하는 방법이 서유럽의 전쟁이 아니라 협상과 합의였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다른 진영, 적으로 분류되어 우리가 알지 않으려 했던 내용입니다. 서방 국가의 사람들보다 평화와 상호부조를 해왔던 더 바람직한 유전적 특성이 러시아 사람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는 다극화로 접어드는 세상에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입니다.
사람의 유전적 특성을 예의 없이 좋네 나쁘네 말하는 게 아니라고 반문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서방의 진화론은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동물이 살아남는다며 더 나은 유전자가 못난 유전자를 압도하고, 지배하는 과정이 자연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서양의 침략사를 정당화하는 방식의 얘기입니다. 반서방의 사람들에게는 그렇습니다. 유전자가 열등한 민족은 사라져야 한다, 그들의 자원도 유전자가 우월한 서방 사람들 중심으로 쓰여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인종주의, 인구감축론도 그런 논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유전자 차이를 말하며 상호부조의 인간사를 말하는 것이 그리 예의없는 행동이라 생각되지 않습니다. 모든 생물은 비록 이기적이지만 서로 돕는, 상호부조를 통해서 자신의 안전과 이기심을 충족한다는 상호부조론을 쓴 크로프트킨의 조국, 러시아를 진영논리를 떠나 이해할 시기가 되었습니다. 단극의 세계에서 다극화된 세계로의 전환 과정, 어렵고 힘들지만 희망이 있습니다. 서로 싸워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도우면서 스스로의 이기심을 채워 온 우리들의 삶을 확인하는 시간이 펼쳐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야무진 꿈이지만 서방의 프레임에 갇혔던 러시아 사람들에게도 준비하는 영화가 보여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의 삶이 서로 돕는 것에서 시작되었으며, 우리들의 욕심과 안전을 위하는 이기심도 서로 도우는 것으로 채워질 수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 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