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보에티의 ‘자발적 복종’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1549년 19살이었던 보에티가가 시민 불복종에 관하여 쓴 글입니다. 우리나라 임진왜란 이전에 쓴 글이니까 굉장히 오래된 글입니다. 약관 스무살에도 미치지 못한 나이에 쓴 글이라는 것도 놀랍고, 그 시절에 독재자를 비판하고 민중의 어리석음을 꾸짖는 글이라는 것에도 놀라움을 느낍니다.
라보에티는 독재자 한 사람한테 수백만의 사람들이 비참하게 이용당하고 머리를 숙이며 참담하게 끌려다니는 것을 보면 참 놀랍다고 했습니다. 이게 권력에 강요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서 귀신에 홀린 듯이 복종하기 때문에 더 놀랍다고 했습니다. 복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주저하고 서로 분열한다고 했습니다. 수백만 명이 어찌 한 명을 못 이기냐고 한탄을 했습니다.
자유로운 인간들은 고결하게 투쟁하며 싸워 나가는 반면 노예들은 투쟁의 용기도 없고, 다른 모든 사람들의 안녕을 위한 살아있는 희생적 충동력도 없다고 했습니다. 노예들은 소심하고 나약하며, 위대하게 행동할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독재자들은 이를 분명히 꿰뚫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독재자들은 인민이 용기가 없고, 열정도 없고, 소심하고 뒤로 물러서 큰 행동도 하지 못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책에는 로마 시절 때부터 독재자에게 복종하는 시민들에 대한 예를 많이 들어주고 있습니다. 독재자들이 시민을 비겁하게 만들고, 나약하게 만들고, 자기들한테 종속하게 만들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다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라보티에가 살았던 시절 뿐만 아니라 로마 시대부터 독재자에게 복종하는 일은 인류의 역사 내내 있어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기록한 책이 바로 '자발적 복종'입니다.
최근 한국을 보면 자발적 복종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도 무분별하게 말입니다. 친중, 친미로 나뉘고, 좌와 우로 나뉘고, 남과 여로 나뉘어서 자발적으로 복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에게 실익이 없고 불편한데 누군가에게는 큰 이익을 안겨주며 말입니다. 탄핵 찬반으로 나뉘고, 국제 정세에 따른 의견으로 나뉘고, 진보와 보수로 나뉘고, 그렇게 나뉘고 갈려서 그렇게 엘리트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있습니다.
강대국의 권력에 순응하는 사대주의가 만연합니다. 그것도 친중, 친미로 갈라져서 말입니다. 자발적 순종의 또 하나의 모습입니다. 서양의 것이라 좋다고 받아들인 좌우의 진영논리를 불편의 진리인양 받아들이고, 진영을 나눠 싸우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상호공존의 미덕같은 중요한 것은 잊고, 눈 앞에 놓인 이익을 위해 권력에 기생합니다. 그리고 이런 자세가 진정으로 현실을 이해하고 있는 삶이라고 합니다. 권위와 권력에 맞서기보다는 복종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 편함이 어찌 상호공존의 미덕과 감수성을 가진 사람의 값진 삶이 될 수 있겠습니까.
라보에티는 책에서 엄청난 전쟁의 고통과 당면한 재난은 인민들의 비판력을 마비시킨다고 말했습니다. 세상이 어지럽고 두려울 때, 먹고 살 길이 막막할 때, 우리는 자유보다 생존에 마음이 더 끌릴 수 밖에 없습니다. 당연하게도 현재 우리들의 삶이 이런 상태입니다. 코로나 이후 돈풀기의 여파가 가시지 않았고, 경제적 자유라는 이름 아래 벌어졌던 무분별한 대출과 투자로 고통받고 있는 우리들은 각자도생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올 위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쉽게 엘리트들에게 기대하고, 그들에게 복종하려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물질적으로, 양적으로 부족했지만 서로가 서로를 돌본다는 삶의 방식에서 더 풍요로웠던 지난 날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한 시기라 생각합니다. 탄핵의 인용과 기각, 분열의 우리를 마주할 시간이 올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