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들은 대부분 엘리트들입니다. 특별히 엘리트라 불리지 못할 경우에도 신체적 능력이나 특별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인공들이니까 원래 그런 거 아니냐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러한 특별함을 통해 대중적이고, 큰 욕망이 없는 대다수는 세상을 끌어갈 힘이 없는 사람들로 묘사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대중을 위해서 특별함의 엘리트가 존재하고, 그들이 세상을 구하는 힘이라는 논리가 은연 중에 우리들의 영화 속에 있습니다.
사실 보통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는 재미가 없습니다. 나와 우리의 이야기이고, 큰 사건이 벌어지거나 주목할만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평온함이 가지는 하나의 특성입니다. 반면 엘리트들의 스토리는 동경할만한 무엇이 있고, 그래서 흥미롭습니다. 동경할 수 밖에 없는 힘과 능력, 그들의 환경이 영화 속에서 힘을 얻습니다. 평온함과 일상을 깨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장치들이 영화의 요소라는 것은 잘 알지만 잘나고 힘있는 사람들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인식을 갖게 만드는 것이 현실입니다. 잘나고 멋진 그들, 엘리트들이 뭔가 해주기를 바라게 만듭니다.
자발적 복종을 말씀드리면서 대중이 자발적으로 복종하도록 만들기 위해 엘리트들이 그 조건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엘리트들에 대한 믿음과 기대는 대중이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그 힘을 내려놓게 만듭니다. 일제 치하에서도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는 금지되지 않았고 오히려 장려되었습니다. 물론 이순신 장군과 함께 싸웠던 민중의 이야기는 쏙 빼고 말입니다. 조선인들은 이순신 장군같은 엘리트가 없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를 강조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제 이순신 장군같은 이가 없으니 자발적으로 복종해라는 의도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경쟁보다는 상호 협조를 통해 보편적인 삶을 살며, 만족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민중의 이야기는 엘리트들의 스토리에 묻혀 버렸습니다. 차고 넘치는 식량과 에너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으며, 일을 하면 돈이 생기는 자연스러운 경제 논리는 돈이 있어야 일이 생긴다는 억지스러운 경제 논리로 바뀌었습니다. 종잇장도 맞들면 낮다라고 어려움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협력이 필요한데 외려 각자도생을 외치는 세상입니다. 갖은 어려움에도 세상을 이어왔던 민중의 삶, 그들의 이야기 속 지혜를 찾아야 할 때임에도 말입니다.
지금 진영논리로 양분된 대한민국은 그렇지 않아도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더 힘들게 만들고 있습니다. 정해진 법에 따라 처리하면 될 일을 진영논리에 기대어 제 진영에 이롭게 만들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진보와 보수 모두 엘리트들이 끌고, 대중이 자발적으로 그들을 따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혼용되어 있는 현실 정치에서 서로의 이념을 물고 뜯어며 제 이익의 실현만 노리고 있습니다. 물론 엘리트들의 이야기입니다.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나뉘어 복종하고 따르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말입니다.
소설가 최인훈이 집필한 중편 소설로, 최인훈 필생의 역작으로 불리는 광장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해방 직후에서 6.25 전쟁 이후를 배경으로 남북한의 이념 대립과 그 사이에서 파멸해가는 '이명준'이라는 개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남북한 통일론에 대한 논의가 일시적으로 자유로워지면서 쓰여진 남북한 이념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한 최초의 소설입니다. 주인공 '이명준'은 남과 북의 체제에 실망했으며, 남한에서 빨갱이 취급받으며 괴롭힘 당할 게 뻔하고 북한으로 가면 남로당계인 아버지는 숙청당할 것이라는 이유로 중립국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죽음...
최인훈을 비난할 생각을 없지만 우리는 광장을 통해서 두 체제로 나뉘는 세상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분명 민중의 삶에서 또 다른 방법이 있었음에도 말입니다. 그리고 엘리트들이 양분한 세상을 복종하며 살고 있습니다. 150년 전 아나키스트였던 미하일 바쿠닌은 사회주의 없는 자유는 특권과 불의이며, 자유없는 사회주의는 노예제도와 참혹함이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진영논리로 나뉜 두 체제 모두를 비난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진영 논리에서 벗어난 지혜를 말하기도 했습니다. 단지 좌우의 엘리트들이 그의 말을 전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동경할 뭔가도 없고, 재미도 없지만 민중의 삶과 그들의 이야기에는 자연스럽게 우리를 이어온 지혜가 있습니다. 세상의 일들을 민중의 시선으로 이해하는 것, 그들의 삶 속에서 자연스러운 지혜를 찾는 것, 혼란스러운 이 시기에 해야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