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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영 Apr 11. 2024

잘 있지?

2014년 8월 기록

보냈다.


오프였던 터라 직접 보내주지는 못했지만.


그 아이 가족도, 나도, 그리고 다른 선생님들도 우리 모두 짧지 않은 시간을 갖고 마음 준비를 해왔던 터라 직접 보내주지는 못했어도 각자의 방식대로 마음을 썼을 것이라 생각한다.


데이 출근했을 때에는 이미 방이 비워진 상태였고, 아이를 직접 떠나보낸 내 동기가 홀로 방 정리를 하고 있었다. 허해진 마음을 붙들고서 방 정리를 도왔다.


아이는 깜깜한 새벽에 밤하늘의 별이 되었고, 별을 보낸 우리들은 말없이 서로 눈빛으로 다독였고 마저 방을 정리하였다.


여느 때처럼 아침 해는 밝았고, 엄마가 짐 정리를 하시려고 병동으로 돌아오셨을 때에는 우리 모두 뭐라 말을 잇지 못했다.


엄마도 그랬고,

나도 그랬고,

다들 그랬다.

그저 서로를 바라보면서 토닥일 뿐이었다.


아이를 보내기 며칠 전날 밤, 나이트 근무를 하면서 엄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Deep stupor 상태 혹은 semi coma 상태의 아이는 호흡기 장치를 달고 있었고, 매 라운딩마다 분비물이 호흡기 장치의 관을 막지 않도록 카테터로 suction을 해주어야 했다.


그렇게 suction을 해주는 동안, 엄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마 아이도 잠든 상태로 다 듣고 있었을 것이다.


엄마는 얼마나 아이가 착한 아이인지, 집안의 막내딸인 당신이 낳은 아들 중에서도 막내인 우리 아이가 집안에서 얼마나 귀한 막둥이인지 이야기하셨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맞장구를 쳤다. 엄마도, 아이도 가족들에게 사랑을 한가득 받고 있는 게 눈에 보인다고.


엄마는 우리에게 늘 깊은 신뢰를 갖고 계셨다. 다른 타과 의료진이 협진 진료를 보러 왔다가 조금이라도 서투른 질문을 하면 간호사 스테이션에 가서 우리에게 물어보라고 하곤 하셨다. 우리 만큼 아이를 잘 아는 사람들 없다며 말이다. 실은 협진 진료를 보러 온 의료진은 아이를 더 잘 이해하려면 깊이가 얕은 질문부터 물어볼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아들 간호 하시느라고 당신 식사는 거르고 간소히 하시면서, 꼭 우리 끼니 챙기라며 간식거리를 사다 주셨다. 그리고 늘 우리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그러면 나는 오히려 엄마와 아이에게 고맙고, 우리가 오히려 사랑을 배우고 사랑을 받고 있어 감사하다고 했다.


그렇게 그동안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기대면서 힘을 얻고 힘을 내어 왔다. 아이가 깊은 잠에 빠지고서는 엄마는 우리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으셨고, 더 많이 의지하셨다.


그런 엄마와 우리가 함께 아이를 보내주고서, 병실을 비우고 정리하고 있자니 지난 긴 여행이 끝난 건지, 이제 시작인 건지 헷갈렸다.


잘 있지?


/ 간호사 김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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